한소희와 만난 파리에서의 부쉐론
지난 7월, 우리는 유독 밝고 활기찬 무드의 방돔광장으로 향했다. 파리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 열리는 가운데 부쉐론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슈완과 함께 즐거움 가득한 하이 주얼리 ‘까르트 블랑슈(Carte Blanche)’ 컬렉션을 선보인 것.
특히 이번 컬렉션은 오랜 시간 지속된 록다운을 극복하고 낙천적인 분위기의 하이 주얼리를 선보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까르트 블량슈의 〈More is More〉 컬렉션은 눈을 사로잡는 비비드한 컬러와 압도적인 크기, 기하학적 디자인과 트롱프뢰유 기법을 활용한 착시 효과까지 기존 하이 주얼리의 전통에서 벗어난 실험 정신 가득한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컬렉션을 설명하기 위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슈완은 10대들이 꾸민 다이어리가 연상되는 무드보드를 꺼내 들었다. 팝 컬러와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표정들, 그들이 착용한 주얼리에는 구와 정육면체·면 등으로 꾸민 기하학적 디자인과 규칙에서 해방된 전혀 다른 주얼리 세계가 담겨 있었다. 거대한 리본 헤어 장식, 어깨를 덮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네크리스, 어떤 의상에도 착용할 수 있도록 만든 주얼 포켓, 10대들이 좋아할 법한 아이론 패치처럼 보이는 진귀한 스톤 패치, XXL 사이즈로 커진 콰트로 컬렉션 등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유니크한 하이 주얼리 세계에 부쉐론이 뛰어들었다.
또 무심하게 하이 주얼리 포켓 속에 손을 넣은 듯 보이는 ‘인 더 포켓(In the Pocket)’은 신축성 있는 원단에 3D로 프린트한 티타늄 요소를 더해 착용하는 사람의 옷감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제작했으며, 다이아몬드 세팅의 후디드 티 스트링 ‘풀 미(Pull Me)’는 롱 이어링으로 착용하거나 짧은 스터드 이어링으로도 착용할 수 있도록 유니크하게 디자인했다. 그런가 하면 어릴 적 가방이나 티셔츠에 다리미로 꾹꾹 눌러 붙이곤 했던 패브릭 패치에 귀한 스톤을 담아 놀라움을 안겨준 ‘두 낫 아이론!(Do Not Iron!)’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론 패치처럼 재미있고, 하이 주얼리 브로치처럼 진귀한 가치를 충족시키며 이번 〈More is More〉 컬렉션의 의도를 완벽하게 보여준 예다.
부쉐론의 까르트 블랑슈 컬렉션 〈More is More〉를 보니 주얼리를 만드는 이들의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고, 이런 컬렉션을 책임지는 이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아무런 제약 없이 순수한 감정으로 오직 아름다움을 위해 노력하는 부쉐론의 비결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슈완에게 물었다.
Q : 주얼리 디자이너를 인터뷰할 때면 으레 디자이너의 데일리 주얼리가 궁금하다
A : 나는 에지에 다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다르게 말하면 모두 착용하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착용하지 않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 년 중 포르투갈에서 지낼 땐 그 어떤 주얼리도 착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파리에 있을 땐 주얼리 없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콰트로 링과 잭 드 부쉐론 콤보 그리고 수국 플뢰르 에테르넬 링처럼 내 소중한 작품을 번갈아가며 착용하고 있다.
Q : 까르트 블랑슈 컬렉션 〈More is More〉 미디어 자료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이번 컬렉션에 대해 설명해 준다면
A : 극도로 고통스러웠던 팬데믹 이후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즐거움을 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More is More〉라는 까르트 블랑슈 컬렉션은 공과 큐브처럼 과장된 형태와 크기, 생동감 있는 색상 등을 담고 있다.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고 착시 효과를 주는 등 기존 하이 주얼리에선 볼 수 없던 생경한 방법으로 다양한 자극을 주고 있다. 동시에 부쉐론의 하이 주얼리 비전을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Q : 크기와 모양, 소재 등 모든 것이 기존 하이 주얼리 틀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다. 이것은 부쉐론이기에 할 수 있는 모험일까?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이와 같은 컬렉션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A : 이번 컬렉션을 구상할 때는 어떤 제약도 두고 싶지 않았다. 나와 우리 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컬렉션을 만들고 싶었다. 컬렉션 자체가 하이 주얼리처럼 보이지 않는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가 느끼는 ‘재미있는’ 디자인을 착용하고 싶도록, 착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적 수단을 찾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상상한 대로 작품을 만들어냈다.
Q : 이번 컬렉션을 완성하는 데 참고한 아카이브가 있다면
A : 몇 가지 있다. ‘원스 어 블루 문(Once a Blue Moon)’은 1889년 플라워 퀘스천 마크 네크리스에서 영감받아 2D 느낌으로 재해석했고, 세트로 선보인 퍼퓸 링 또한 1988년 130주년을 맞아 처음 선보인 부쉐론 향수에서 영감을 받았다. 또 ‘두 낫 아이론!’ 브로치 또한 메종 아카이브에서 힌트를 얻었다. 호쿠사이의 파도를 그린 시카다는 1910년 아르누보 티아라에서 영감을 받았다.
Q : 메종의 시그너처 아이템인 콰트로 컬렉션이 XXL 사이즈의 ‘푸이상스 콰트로’ 커프로 탄생했다. 금을 대체하는 소재로 알루미늄을 선택한 점도 특이하다
A : 대담한 크기의 디자인을 착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벼운 소재가 필요했다. 알루미늄은 골드보다 8배나 가볍다. 알루미늄은 세팅 과정에서 갈고리 한 개가 부러지면 처음부터 디자인을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보석 세팅에 잘 쓰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도전했고, 마침내 이뤘다. 결국 착용하기 쉬운 거대한 XXL 사이즈의 팝 콰트로 커프가 탄생했다.
Q : 하이 주얼리에 트롱프뢰유 기법을 사용했다
A : 이번 컬렉션의 기본 원칙은 ‘간단함’이다. 기쁨은 아주 단순하다. 트롱프뢰유 효과는 놀라움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기법이다. 사실 이 컨셉트를 팀에게 설명하는 건 생각보다 복잡했다. “2D지만 3D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켜야 하고, 그렇지만 그것은 여전히 2D여야 해요”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Q : 제일 만들기 까다로웠던 주얼리는
A : ‘타이 더 노트’는 정말 어려웠다. 거대한 헤어 리본을 만들기 위해 이전에 사용해 보지 않은 마그네슘을 적용했다. 마그네슘은 탄성이 뛰어나고, 골드보다 10배 가벼워 항공우주산업이나 의학 분야에 널리 사용되는 소재다. 하지만 하이 주얼리에서는 단 한번도 사용된 적 없었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마그네슘 갈래 역시 한번 부러지면 다시 고칠 수 없다. 그래서 보석을 세팅하는 과정이 골드보다 적게는 수 십 배 복잡하게 느껴졌다.
Q : 특유의 기하학적 디테일로 대담하고 우아한 매력을 뽐내는 부쉐론이 메종의 유산을 반영하는 동시에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비결은
A : 부쉐론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 메종의 철학을 철저하게 이해하기 위해 아카이브 전체를 살펴보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리고 곧 부쉐론의 철학이 주얼리를 착용하는 여성에게 자유로움을 주기 위해 기술과 소재 그리고 테마까지 다양한 측면을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대담한 주얼리 착용법을 찾아내 익숙하지 않은 소재를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주얼리를 디자인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것이 까르트 블랑슈 컬렉션이 오늘처럼 전통과 혁신이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Q :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메종 부쉐론이 165년 동안 변함없이 지켜온 핵심 가치는
A : 혁신과 자유가 아닐까.
Q : 그런 핵심 가치와 철학을 대표하는 컬렉션을 꼽는다면
A : 메종 설립자인 프레데릭 부쉐론은 매우 혁신적이고 비전 있는 주얼러였다. 1879년 그가 제작한 퀘스천 마크(Point d’Interrogation) 네크리스는 브랜드의 미적·기술적 혁신을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금속 요소들이 나사로 연결될 수 있도록 스프링 스트립 시스템을 발명했다. 이 기술은 실제로 고객들이 주얼리를 보다 자유롭게 착용할 수 있도록 만든 간단하면서도 혁신적인 방법이었다. 143년 전에도, 지금도 놀라운 컬렉션이다.
Q : 주얼러로서 어떤 이상을 가지고 있는가
A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현실에 안주하거나 멈추고 싶지 않다. 계속 탐구하고, 혁신하고, 창작물을 통해 계속해서 내 감정을 전달하고 싶다. 컬렉션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겪어내며 또 배우고 있다. 그렇게 완성한 작품을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나에게 큰 기쁨이기 때문이다.
Q : 다음엔 어떤 컬렉션을 기대하면 좋을까
A :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면서 영감받은 컬렉션을 선보일 것 같다. 나에게 중요한 자연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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