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만을 위한 세계화에 제동을 걸다 [홍기훈의 ‘세계를 바꾼 경제학 고전’] (10)

2023. 7. 27. 21:5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계화와 그 불만
조지프 스티글리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책의 저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미국 경제학자다. 그는 정보의 비대칭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공헌한 바를 인정받아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에서 경제 정책을 자문했으며, 세계은행 부총재를 역임했다. 스티글리츠는 이 경험을 살려 실용보다는 이념에 치중한 국제금융기구의 경제 정책을 비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국가 간 경제적 연결이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이를 위해 1944년에 여러 국제협력기구가 만들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그리고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가 대표적인 기구다. GATT는 1947년 미국을 포함한 23개 국가가 참여해 관세장벽과 수출입 제한을 줄이고, 국제 무역과 물자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제네바에서 체결된 국제 무역 협정이다. 제네바 관세 협정이라고도 불린다. 국제법상 임시 협정이었던 GATT는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로 재탄생해 무역 자유화 확대와 공정한 국제 무역 질서를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시장만능주의를 기반으로 한 세계화가 초래한 부작용을 목격하다

이후 세계 각국은 평화와 번영을 위해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며 경제적 세계화를 추구했다. IMF는 위기 국가에 자금 지원을, 세계은행은 빈곤 퇴치를 목표로 했으며, GATT(후에 WTO)는 자유무역을 통한 세계 번영 증진을 추구했다. 1980년대에는 신자유주의 사상이 주류가 돼 정부 개입을 제한하고 시장에 자원 배분을 맡기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1989년, IMF는 글로벌 경제 동향에 맞춰 ‘워싱턴 컨센서스’를 채택했다. 이는 세계은행, IMF 그리고 미국 재무부가 주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었다. 당시 남미 국가들은 방종한 재정 정책과 지나친 정부 지출로 인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이런 국가를 구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됐다. 이 정책은 실제로 남미 국가들의 경제 위기 해결에 효과적이었다고 평가받았다.

문제는 이후 워싱턴 컨센서스가 강요하는 정책으로 변질된 것이다. IMF와 세계은행은 남미 이외 많은 개발도상국에도 이 정책을 일괄적으로 적용한다. 이런 세계 경제 통합과 신자유주의는 국제 경제 질서의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 시대적 배경에서, 스티글리츠는 미국 정부와 세계은행의 경제 정책 자문을 맡아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직접 워싱턴 컨센서스 기반 국제 금융기관의 일관된 경제 정책이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예로 그는 세계은행 자문역으로 모로코에 갔는데, 당시 정부는 농촌에 병아리를 나눠 주고 있었다. 농촌 여성들은 병아리를 싼값에 사다 키워 시장에 팔아 생계에 보탰다. 이는 농민의 직능을 살리면서도 빈농을 구제하는 정책이었다. 이를 인지한 세계은행은 병아리를 나눠 주는 정책을 중지시켰다. 시장이 알아서 병아리를 공급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농촌 여성들이 병아리를 키워 자활하는 풍경은 즉시 사라졌다. 애초에 시장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정부가 대신하던 것임을 세계은행이 간과한 것이다. 현지 정책과 문화와 산업 요건을 고려하지도 않고 내린 정책 결정은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더불어, 스티글리츠는 대한민국이나 태국, 러시아가 국제금융기구 실책으로 불필요한 경제적 고난을 겪는 것을 지켜봤다고 이야기한다. 스티글리츠가 생각하기에, 국제금융기구가 순서, 시기, 강도를 고려하지 않은 냉혹한 시장만능주의 정책이 초래한 가장 큰 실책은 바로 사회 질서의 붕괴였다. 갑작스러운 ‘충격 요법’으로 경제가 제 기능을 멈추면, 사회의 질서와 평화가 깨지며 수많은 사람이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낼 수 있다는 진단이다.

스티글리츠가 세계화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세계화가 지구촌 모두를 번영하게 해줄 강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계화 정책의 문제점들을 진단해야 했다. 이를 위해 그는 미국 경제 자문이자 세계은행 부총재였던 자신의 경험을 살려 ‘세계화와 그 불만’을 출간했다.

국제금융기구 역할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열다

스티글리츠가 저술한 ‘세계화와 그 불만’은 세계 경제 체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의견을 제시했다. 국제금융기구 역할에 대해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논의의 시발점이 된 책으로, 호평을 받았다.

세계화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다룬 이 책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세계적으로 반세계화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IMF의 시장근본주의적 정책과 WTO의 자유무역에 대한 비판이 대두됐다. 이는 제3세계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나타났다. 1999년 시애틀에서 일어난 WTO 반대 시위는 이 문제를 고발하는 역할을 하면서 ‘반세계화’라는 용어를 정립했다.

반세계화 열풍이 한창일 무렵 등장한 ‘세계화와 그 불만’은 큰 관심을 받았다. 스티글리츠는 책을 통해 세계화가 인류의 물질적 풍요를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발전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집행 과정에서 민주성 부족과 분배의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IMF의 정책 집행 방식을 두고 강력히 비판했다. IMF의 잘못된 정책과 불투명한 집행 방식이 세계화 반대 목소리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세계화는 20세기 후반에 걸쳐 세계 경제와 금융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와 함께 많은 문제점을 양산했다. 특히, 선진국이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개도국에 정책을 강요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국제통화기금 등 주요 기관은 가난한 나라의 이익보다 금융권과 선진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책은 세계화의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그 집행 과정에서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다뤘다. 동시에 세계 경제 체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의견을 제안했다. 스티글리츠는 “세계화 자체는 긍정적인 발전이지만, 세계화 운영 방식에 따른 부작용이 개발도상국 경제와 빈민층을 황폐화시킨다”고 강조했다. 세계화의 문제점으로 민주성 부족과 분배 불균형을 지적하면서, IMF 등 국제기관의 불투명한 정책 집행과 가난한 나라의 이익보다 금융권과 선진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세계기구가 위기에 처한 국가에 정책을 강요하는 것은 나쁜 관행이며, 해당 국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즉 개선 방안으로 해당 국가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개발도상국 경제와 빈민층의 이익을 고려하는 정책을 적용하도록 제안한 것이다.

책이 나온 시기의 시대상도 엿볼 수 있다. 전 세계적인 개발 계획의 운영과 경제 위기, 옛 소련 연방 공화국들의 경제 체제 전환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했다. 또한 세계 경제와 금융에 대한 다양한 통찰을 제공하면서, 세계화에 대한 비판과 개선 방안을 소개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경제학 박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9호 (2023.07.26~2023.08.01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