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 최초 참전 부대 발자취 따라…아리랑도 함께 한 정전 70주년 기념식
27일 열린 ‘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은 유엔군 첫 참전의 발자취로 시작해 아리랑이 어우러지는 한 편의 공연으로 치러졌다. 동맹국 연대의 기억을 소환한다는 행사 취지에 걸맞게 관련 장치들을 곳곳에 마련했다고 정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행사가 열린 부산 영화의 전당부터 유엔군의 참전 역사를 상징하고 있다. 이곳은 1950년 7월 1일 미 스미스 특수임무부대(Task Force Smith)를 태운 C-54 수송기가 착륙한 옛 수영비행장 터다. 유엔군 최초의 6·25 전쟁 참전부대인 스미스 특임대는 부산에 도착한 지 불과 나흘 만에 경기도 오산까지 진격한 후 죽미령 일대에서 첫 전투를 벌였다. 5000여 명의 북한군에 맞서 540명의 스미스 부대원들이 치열하게 싸운 결과 낙동강 방어선과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개회 공연 ‘그날의 기억’은 이 스미스 특임대를 재조명하는 내용으로 꾸려졌다. 비행기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당시 C-54 수송기가 부산에 내리는 과정이 영상으로 나왔다. 미군 역의 재연배우가 등장해 부산에 도착한 스미스 특임대의 상황과 대한민국의 첫인상, 그리고 참전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한국인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어린이 합창단이 그의 발언 중간에 무대에 나와 ‘오빠 생각’을 불렀다. 아련한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에 관객석에선 눈물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70년 전 대한민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외면하지 않고 자유 수호를 위해 달려온 유엔군의 위대한 헌신을 재구성하려 했다”고 말했다.
국민의례에선 남수단 한빛부대에 소속돼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경력이 있는 부대원 4명이 낭독을 맡았다. 올해 해외파병 10주년을 맞은 한빛부대를 통해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던 나라가 이제는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성장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유엔군 참전용사를 위한 특별 포상도 이뤄졌다. 18살 나이에 기관총병으로 참전한 도널드 리드 미군 참전용사는 국민포장을 받았다. 리드 씨는 미국 한국전 참전기념비재단 재무국장을 역임하며 기념비 건립에 개인으로서는 최고 금액인 3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양국 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마찬가지로 18살에 소총수로 참전한 호주 출신의 고(故) 토마스 콘론 파킨슨 씨에게는 국민훈장 석류장이 수여됐다. 호주 한국전 참전용사 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파킨슨 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참전 용사 지원 방안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행사는 아리랑이 울러 퍼지는 기념 공연으로 절정에 달했다. 2019년 영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의 최고령 참가자이자 우승자인 참전용사 콜린 새커리(93) 씨는 아리랑을 부르는 참전용사들의 영상과 함께 무대에서 이 곡을 불렀다. 이어 등장한 어린이 합창단원 100명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참전용사 앞에 서 손을 맞잡고 아리랑을 부른 뒤 영어로 힘차게 “감사합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외쳤다. 몇몇 참전용사는 전장에서 국군과 함께 불렀던 아리랑을 추억하는 듯 지그시 눈을 감았고, 일부는 따라 불렀다. 이날 아리랑에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도 삽입돼 참전용사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아리랑은 정전협정 직후 유엔대표단이 사열을 받을 때 흘러나온 곡으로 ‘협정의 마침표’를 의미한다고 보훈부는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행사가 시작할 때 무대에서 10분간 유엔군 참전 용사 62명을 박수로 일일이 맞이하더니 아리랑이 끝난 후에도 자리에 앉은 참전용사들에게 다가가 악수와 감사인사를 올렸다. 정부 관계자는 “참전용사들이 자부심과 명예를 느낄 수 있도록 최고의 예우를 다하겠다는 의미”고 말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헌신으로 이룬 대한민국 70년간의 번영과 자유의 가치가 동맹과 공유돼 더욱 확고한 연대로 미래 70년을 함께 만들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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