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했지만 이룬 것 없는 부부입니다, 저희 실패담 들어보실래요

월간 옥이네 2023. 7. 2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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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숨숨농장 권성민·백경록씨... 생명 숨쉬는 농장 꿈꾸며 매일의 실패를 딛고 일어서다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군 안남면 숨숨농장 권성민·백경록씨 부부
ⓒ 월간 옥이네
 
높은 천장의 하우스 안을 채운 하이베드 시설, 그리고 그 앞에 선 말끔한 차림의 농부.

최근 미디어가 그리는 '청년 농민'의 모습은 이렇다. 흙이 없는 '깨끗한' 스마트팜에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등 첨단 기술을 결합한 푸드테크, 여기에 귀농 청년이 결합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미디어와 농식품 분야를 노리는 거대 자본이 원하는 그림이 뚝딱 완성된다. 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농업, 대규모 시설 투자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농업이 우리 생태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일단 이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토록 흙과 땅을 멸시하는 시대, 농업과 농촌의 현실이 갈수록 어렵다고 하는 때에 '흙'이 좋아 귀농한 청년 부부가 있다. 어려서부터 막연히 '농사를 짓겠다'고 꿈꿨던 권성민씨와 '착취하지 않는 삶'을 좇고 싶던 백경록씨다.

충북 옥천군 안남면에서 유기농 포도 농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퍼머컬처를 시도해보고 싶다는 부부를 그들의 삶터이자 일터 '숨숨농장'에서 만났다.

농사를 짓고 싶던 사회학도, 성민씨 이야기
 

아직은 어린이 시절이던 1990년대 초반, 아버지는 생협(생활협동조합) 운동을 하셨다. 한국의 생협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던 때(1980년 후반~1990년대)이니 우리나라 생협 운동 1세대인 셈이다. 생협 일을 하며 자연스레 이어진 것인지, 전국귀농운동본부의 생태귀농학교 1기(1996년)를 수료한 아버지는 곧장 귀농을 결정한다. 그렇게 전북 진안으로 온 가족이 귀농하게 되는데, 돌이켜보면 이때가 성민씨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던 듯하다.

"경기도 성남에서 나고 자랐는데, 도시에서 살 때는 갈 데도 없고 놀 데도 없었어요. 그렇다고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기도 어려웠고요. 당시 어린이서점을 운영하셨던 부모님은 새벽에 나가 우유배달을 하시고 서점 일까지 모두 마친 후 밤 11시는 돼야 귀가하셨거든요. 형과 단둘이 집에서 보내야 했던 시간이 많았는데, 귀농 이후에는 오히려 친구들과 함께 밥도 먹고 하루가 모자라게 뛰어다니는 시간들이 좋았죠."

요즘이야 농촌 마을에서 어린이를 찾아보기 어렵다지만 그때는 한 동네에 또래 친구들이 열댓은 되던 시절이다. 산으로 들로 토끼를 쫓아 뛰어다니고 첨벙첨벙 냇가에 들어가 가재를 잡으며 놀던 시절. 부모님은 여전히 농사일로 바빴지만 귀농 후에는 오히려 그 공백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어릴 적부터 농촌의 자연 환경과 마을 공동체를 경험한 연유인지, 아니면 부모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인지 성인이 된 권성민씨는 자연스레 '농사'를 자신의 인생 경로에 넣게 된다.
ⓒ 월간 옥이네
 
그렇게 어릴 적부터 농촌의 자연 환경과 마을 공동체를 경험한 연유인지, 아니면 부모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인지 성인이 된 성민씨는 자연스레 '농사'를 자신의 인생 경로에 넣게 된다. 진안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충남 홍성에 있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 진학했는데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농사를 지어보겠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그가 스스로 '농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사회학을 공부했던 대학 때부터다.

"교수님이 나중에 뭐 할 거냐고 물으면 꼭 농사를 짓겠다고 대답했어요. 농사는 언젠가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대학교 재학 중에도 주말마다 부모님 농사를 돕곤 했는데, '정말 고된 일'이라고 느끼면서도 '이걸 어떻게 가능하게 할까' 생각했죠."

그런 막연한 꿈은 대전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지금의 아내 백경록씨와 만나게 되면서 구체적인 계획으로 실현되기 시작했다. 

대안적인 삶을 꿈꾸던 도시인, 경록씨 이야기

반면 서울에서 나고 자란 경록씨는 농촌과의 접점이 없던 이였다. 밤에도 환한 거리, 밀집한 주택가를 따라 조성된 공원과 상가, 하굣길 혹은 퇴근길에 만난 동네 친구들과 가벼운 수다로 하루를 마무리하던 생활. 그야말로 평범한 도시의 삶 속에 있던 그가 '농촌'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사회적경제 조직에서 일하면서부터다. 남편 성민씨와 직장동료로 처음 만나게 된 곳인데,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경제 활동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고.

 "여러 사회 문제를 접하고 또 생전 몰랐던 문제도 알게 되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내가 당장 어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건 아니어도 그런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그때 남편과 만나게 되면서 여러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는데, 공통된 관심이 '기후위기'였어요. 급격한 생태계 변화와 함께 우리의 삶 역시 위험한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 농사를 생각했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땅도 살리고 우리도 살려보자는 마음으로요. 그러려면 농촌으로 와야 했던 거고요."

그러나 농촌 생활에 처음부터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밤이면 더욱 깜깜한 마을, 띄엄띄엄 떨어진 농가와 그 사이로 넓게 펼쳐진 들판, 또래를 만나기 어려운 농촌은 경록씨에게 그저 막막한 공간이었다. 한동안은 울기도 했고 또 한동안은 잘 적응해 살아가는 다른 귀농 청년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이제는 "보고 또 봐도 좋은 농촌 풍경"에 매일이 즐겁지만 말이다. 
 
 그야말로 평범한 도시의 삶 속에 있던 백경록씨가 '농촌'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사회적경제 조직에서 일하면서부터다.
ⓒ 월간 옥이네
 
실패라고? 우리에겐 다음을 위한 계단

두 사람이 농촌 생활을 꿈꾸며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전북 완주군 고산면이다. 퍼머컬쳐 활동을 비롯해 다양한 지역 공동체 운동이 뿌리 깊은 이곳에서 두 사람은 지역 청년들과 공동 경작도 하고 마을 작은 책방 운영도 도우며 농촌에서의 삶을 조금씩 그려가기 시작했다.

"둘이서 무엇을 하며 살면 좋을지 고민을 하다가 둘만의 워크숍을 열었죠. 그때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고민하고 책도 함께 읽으면서 자연농, 퍼머컬처에 관심이 깊어졌거든요. 이걸 전업으로 하는 건 어려울 수 있어도 살림을 꾸리는 데 일정 정도 도움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완주를 선택한 건 그 때문이었죠. 농사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경제 활동과 마을 공동체가 있는 곳이라 저희도 좀 더 배우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했거든요."

'반농반X(반은 농사짓고 반은 다른 일을 하는 삶)'를 꿈꾸며 완주로 간 부부가 2년여 완주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옥천행을 택한 건 보다 주도적으로 자신들만의 농사를 짓고 싶어서다. 완주에서는 공동 경작 등을 하며 농사를 체험해볼 순 있었지만 자신의 철학을 기초로 한 농사 방식을 적용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던 것.

마침 옥천읍 한 친환경 포도 작목반과 연결되면서 수월하게 다음 목적지를 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연을 맺게 된 옥천살이 중 부부가 다시 안남면 연주리로 터를 옮긴 건 2022년 3월. 자연농, 퍼머컬처 방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픈 마음이 이들을 안남으로 이끌었다.

"여차저차 연고도, 정보도 없이 안남으로 와 무작정 땅을 빌려 자연농을 시도했죠. 800평 정도를 멀칭 하나 없이 완전히 자연농으로요. 작황이요? 완벽한 실패였죠(웃음)." (백경록씨)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아니 꺾였어도 계속 하는 마음이라고 했던가. 그런 대찬(!) 실패에도 부부는 올해 역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하반기 얻게 된 유기농 포도 하우스 '숨숨농장'이 새로운 실험장.
 
 지난해 하반기 얻게 된 유기농 포도 하우스 '숨숨농장'은 권성민·백경록씨 부부의 새로운 실험장.
ⓒ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군 안남면 숨숨농장 풍경
ⓒ 월간 옥이네
 
다양한 풀과 작물을 함께 기르는 초생재배를 시도하고 있는데 부부의 밝은 표정과 달리 주변의 걱정도 적지 않다. 유기농업을 하는 성민씨의 부모님과 형도 "일반 방식으로 절반이라도 하고 나머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보라"는 조언을 전하신다. 실제로 이제 막 영글어가는 숨숨농장 포도는 크기도 제각각에 듬성듬성 알도 빠져있다. 농사 선배들의 걱정과 우려가 얼핏 느껴지는 풍경이다.

"시민 개개인이 일상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실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책적 접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 부문의 전환이 최우선 돼야 하고, 농업도 마찬가지죠.

요즘 농업 분야 주요 정책은 디지털 농업, 스마트팜 이런 것들인데 반면 탄소중립과 관련해서는 실효성 있는 정책이나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 것 같아요. 농사라는 게 탄소를 축적하고 저장하면서 생태 순환을 만들어야 하는 건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잖아요. 그래서 현재 운영하고 있는 포도 하우스도 최대한 인위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자연의 힘으로 해보려고 노력 중이고요." (권성민씨)

실은 이만큼도 큰 타협의 결과다. 시설 재배가 아닌, 퇴비와 기계사용을 최소화하고 물과 전기를 인위적으로 끌어오지 않는 방식의 농사를 그려온 부부이기에 말이다.

누군가가 보기엔 실패가 뻔한 것을 계속 도전하는 부부가 신기하기도, 어떤 면에선 답답할 지도 모른다. 부부 역시 그걸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방식으로 땅을 일구는 것은 흙이 제 기능을 온전히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의지도 동력이 되고 있다.

"농법을 완전히 바꾼 첫 해는 원래 작황이 좋지 않대요. 작물도 당황스러운 거죠. 저희도 원래 이만한 하우스에서 나오는 수확량을 기대하지 못하는 마음이 쓰디쓰지만, 그래도 저희의 방식을 믿고 있어요. 다만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는 거죠. 아직은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경험도 축적되지 않아 시행착오를 겪는 것뿐이고요." (권성민씨)

사람만 행복한 게 아니라 비인간 생명도 즐겁게 살 수 있는 농법이 작물도 땅도 건강하게 회복시킨다는 믿음. 그것이 자연히 건강한 삶을 만들 것이라는 확신이 숨숨농장에 조용히 흐른다.

"그래서 그런지, 야생동물도 하우스 안에 많이 들어와요. 참새도, 두더지도 엄청 들어오고요. 야생동물 때문에 저희 집 개도 2주일 간 하우스로 출장을 나왔어요. 하루는 두더지인지 누군가가 나무 밑을 엄청 파놓았길래 '야, 너희 진짜 너무 하지 않냐' 하는 말도 절로 나오긴 했지요(웃음)." (백경록씨) 

그래도 괜찮다는 용기를 전하며
 
 "농사라는 게 탄소를 축적하고 저장하면서 생태 순환을 만들어야 하는 건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잖아요. 그래서 현재 운영하고 있는 포도 하우스도 최대한 인위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자연의 힘으로 해보려고 노력 중이고요."
ⓒ 월간 옥이네
 
3살이 된 아들 새봄이 육아에, 이것저것 손 갈 일이 끝이 없는 농사에 부부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다. 그래도 시간을 내 새봄이와 마을을 산책한다. 길을 걷다 만나는 풀꽃, 마당에서 보는 저녁노을에 대한 감탄도 빠지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일상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과 실패를 견디게 하는 매일의 실천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는 부부는 요즘 부쩍 '뿌리 내리는 삶'을 향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집을 구하는 일이 당장 코앞에 닥친 걱정이다. 현재 살고 있는 안남면 지수리 귀농인의 집을 올해 11월이면 비워줘야 하기 때문. 귀농인의 집 운영 규정 상 1년까지만 거주가 허용되는데,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농촌 현실에서 기반 없이 농촌에 내려온 이들에게 다소 가혹한 것이 사실이다. 어린 자녀 양육에 도움이 될 만한 서비스가 거의 없다는 것도 하루를 팍팍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래도 서로가 있어 의지가 되고 힘을 낼 수 있다는 부부. 두 사람은 자신들의 모습이 다른 이에게 약간의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한다.

"저희 정말 돈도 없이, 어떤 연고나 지지 기반도 없이 귀농했거든요. 그래서 사실 이런 인터뷰도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지금껏 이룬 것도 없고 번듯하게 자랑할 만한 것도 없어서요. 하지만 오히려 이런 이야기가 어떤 분들께는 힘이 될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어딜 봐도 온통 성공한 사람들, 잘 자리 잡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잖아요.

물론 그들 역시 많은 실패와 노력 끝에 이룬 것이겠지만요... 저희처럼 실패의 과정에 있는, 어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모습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가 지금은 '잘 되고 있다'는 말보다 '힘들다', '어렵다'는 말을 더 많이 하지만(웃음),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솔직하게 남기는 것도 좋을 거 같았고요. 나름 용기 내서 이야기를 했는데, 다른 분들께서는 어떻게 느낄지 궁금해요." (백경록씨)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얼굴, 흙먼지 묻은 신발과 땀에 젖은 옷차림이지만 그 모습이 빛나는 이유를 백경록 씨의 말에서 찾았다. 완벽한 하루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그런 하루를 향해 가는 일상, 실수하고 쓰러져도 함께 걷는 길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자기 확신, 실패는 끝이 아니라 목표를 향한 과정에 필수라는 믿음.

각종 허브와 풀이 포도나무와 함께 쑥쑥 커가고, 그 뒤엔 마을 어린이들과 함께 토종씨앗으로 만든 생태텃밭이 자리한 숨숨농장. 여러 생명이 함께 숨 쉬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이름 지었다는 숨숨농장의 하루는 또 이렇게 지나간다. 고양이의 숨숨집처럼 그 가치를 알아차릴 사람만이 찾아낼 보물창고로, 그런 삶을 향해 또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부부와 함께 말이다.
 
 권성민·백경록씨 부부는 마을 공동체와 함께 어린이 생태텃밭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텃밭에 오는 어린이 전용 장화.
ⓒ 월간 옥이네
 
 권성민·백경록씨 부부는 마을 공동체와 함께 어린이 생태텃밭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어린이들이 직접 팻말을 만들어 세운 텃밭 풍경.
ⓒ 월간 옥이네
 
월간 옥이네 통권 73호 (2023년 7월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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