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재난현장부터 일상까지 ‘임무 척척’
지난 2월 경북 예천에서 주민 367명이 대피하는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이때 ‘로젠바우어 판터’(Rosenbauer PANTHER)가 현장에 급히 투입됐다. 대당 가격이 18억원에 달하는 산불진압용 소방차다. 50t에 이르는 덩치에도 불구하고 시속 135㎞로 달리며 물을 뿌린다. 최대 1만9000ℓ의 물, 2000ℓ의 거품 화합물, 250㎏의 분말을 저장할 수 있다. 벽을 뚫고 물을 뿌리는 것도 가능하다. 화재 현장에 투입되는 만큼 소방대원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차량 내부에서 카메라를 보며 호스를 조정해 물을 뿌릴 수 있게 설계됐다. 지난해 3월 서울 면적의 41%에 달하는 2만4940㏊의 산림을 태운 경북 울진·강원 삼척 산불 때도 판터 5대가 현장에서 활약했다.
판터는 오스트리아 소방장비 전문업체 로젠바우어에서 1991년에 생산을 시작했다. 공항 화재 진압용으로 만들어졌지만 성능이 워낙 뛰어나 가스충전소나 주유소 같은 폭발 위험 시설에도 투입된다. 한국엔 소방청에 5대,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국제공항에 각 1대씩 총 7대 있다.
판터처럼 특수한 장비를 갖춰 특정 용도에 활용하는 차량을 특장차라고 한다. 소방차, 제설차, 탱크로리 등이 이에 해당한다. 트럭 등 양산차량을 목적에 맞게 개조하는 방식으로 생산한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특장 관련 업체는 500여 곳이다.
모든 화재 현장에 판터를 투입할 순 없다. 볼보트럭코리아와 소방특장업체 에프원텍은 지난 4월 소방차 ‘FM크루캡’을 출시했다. 고성능 소방펌프를 장착해 분당 최대 5000ℓ의 물을 쏠 수 있다. 소화용수 1만ℓ와 포 소화약제(화재 표면을 거품으로 덮어 불을 끄는 물질) 1000ℓ를 실을 수 있다. 대형 전면 유리, 후방거울, 조수석 쪽에 설치된 코너 카메라로 좁은 골목에서도 사각지대를 최소화했다. 다기능 방수총은 근거리와 원거리 화재 진압이 모두 가능하다. 야간 화재에 대응하기 위해 조명탑을 탑재했다.
폭설이 쏟아지면 어김없이 등장해 존재감을 발휘하는 특장차도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유니목(Unimog)이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은 업무용 차량으로 수입차를 거의 쓰지 않지만 제설작업 현장에서의 유니목은 예외다.
유니목은 1946년 농경용 차량으로 처음 개발됐다. 그러나 기능성이 워낙 뛰어나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타이어 공기압 조절 시스템(CTIS)으로 공기압을 낮추면 눈이 쌓인 산길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고 주행할 수 있다. 주요 부품에 방수처리가 돼 있고 공기흡입구가 운전석 높이에 배치돼 있어 수심 1.2m 강을 건널 수 있다. 한국엔 1973년부터 들어왔다. 적설량이 많은 제주시를 포함해 국토교통부, 강원도청, 국방부, 한국도로공사, 소방청,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유니목을 보유하고 있다. 유니목 U530 모델의 경우 최고 출력 299마력의 성능을 갖췄다. 시속 89㎞까지 달릴 수 있다. 가격은 특수 장비를 합쳐 4억원에 육박한다.
특장차는 화재나 폭설 같은 재난현장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특장차 산업도 친환경 차량으로 전환하는 추세다. 특장차 제조기업 리텍은 1t 전기 노면청소차를 자체 기술로 개발해 지난해 10월 출시했다. 전기 동력을 사용한 무공해 차량이다. 노면에 쌓인 이물질을 부양해 흡입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물질 양에 따른 블로워(송풍기) 엔진회전수(RPM) 자동 조절 시스템, 적외선카메라 렌즈 세척 기술 등을 적용해 청소 성능을 향상시켰다. 고성능 미세먼지 필터를 장착해 공기정화 기능을 구현했다. 연료비도 기존 경유 노면청소차의 10% 수준이다. 1회 충전으로 최대 6시간 작업이 가능하다. 좁은 골목길, 상가지역, 주거지역의 미세먼지와 분진을 청소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이런 성능을 인정받아 최근 조달청의 선정한 우수제품에 뽑혔다.
GS글로벌은 지난 4월 열린 국제물류산업대전에서 BYD의 전기트럭 T4K를 기반으로 만든 특장차 커피트럭과 콜드키퍼를 선보였다. 커피트럭은 T4K의 V2L(Vehicle to Load) 기능을 활용한다. V2L은 차량 배터리에 있는 전력을 외부로 빼내 사용하는 기능이다. 차량 배터리를 이용해 별도의 외부 전원 없이 커피머신, 냉장고, 상품 진열장, TV 등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콜드키퍼 역시 T4K의 대용량 배터리를 활용해 제작한 냉동탑차다. 다음 달에 공식 출시할 예정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친환경 특장차 개발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8월에 열린 수소산업 전시회 ‘H2 MEET’에서 수소연료전지 기반의 경찰버스, 청소차, 살수차 등 특장차를 대거 선보였다. 수소차는 전기차보다 뛰어난 성능을 갖췄다. 수소 경찰버스는 1회 충전으로 최대 550㎞ 주행이 가능하고 충전 시간도 20분이면 충분하다. 수소전기트럭을 기반으로 제작한 청소차는 쓰레기 부피를 줄이기 위해 압착 장치를 장착했다. 최대 1만300㎏의 적재 공간을 갖췄다. 수소 살수차에는 액체 6400ℓ를 실을 수 있는 탱크와 1분당 1000ℓ 용량으로 살수가 가능한 펌프가 탑재됐다. 현대차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소 청소차·살수차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다.
KG모빌리티는 지난 4월 특장차 사업 법인인 ‘KG S&C’를 설립하고 특장차 사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KG모빌리티 차량을 개조해 특장차로 만들어 판매할 계획이다. 어떤 용도의 특장차를 만들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한국에서 생산되는 특장차는 2021년 기준 1만5800대 정도다. 이런 특장차 산업에 위협 요인으로 대두되는 게 기아가 주력 사업으로 선언한 목적기반차량(PBV)이다. PBV는 택배차, 택시, 냉동탑차 등 특정 목적에 맞게 내·외부 디자인, 좌석 배치 등을 한 차량이다. PBV는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전용 플랫폼에 상부 차체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완성차 업체가 직접 제작한다. 기존 완성차를 비용과 시간을 들여 개조한 특장차보다 성능과 가격 경쟁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기아는 지난해 7월 ‘봉고Ⅲ EV 냉동탑차 출시’ 보도자료에 “외부 특장업체 차량 대비 350㎏ 향상된 1000kg의 적재중량을 제공한다”고 적었다. PBV의 경쟁상대로 기존 특장차 업체를 지목한 셈이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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