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NL 3위' 일본 남자배구, 한국과의 차이점 3가지

박진철 2023. 7. 2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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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공격수 전원 '해외 빅리그' 활약... 외국인 감독 효과도

[박진철 기자]

 
 ?2023 VNL 일본 남자배구 '공격 쌍포'.. 이사카와(왼쪽)-란 선수
ⓒ 국제배구연맹
 
일본 남자배구가 지난 24일 종료된 2023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국내 배구팬들에게도 부러움과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특히 과거에는 대등했던 일본과 한국 남자배구가 오늘날 엄청난 격차가 벌어졌다는 점에서 놀라워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일본 남자배구가 한국보다 많이 앞서가고 있었지만, 이번처럼 다가오지는 않았다.

일본 남녀 배구는 중요한 대회마다 단신 군단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16강 또는 8강에서 탈락했다. 실제로 2021년 도쿄 올림픽과 지난해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까지도 그랬다.

그런데 이번 VNL에서 일본 남녀 배구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여자배구가 여전히 단신 배구의 한계를 절감한 반면, 남자배구는 그 고비를 넘어선 모습을 보였다. 

물론 VNL 결과만 가지고 단정하긴 이르다. VNL은 일부 강호들이 주전 멤버들에게 휴식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의 진짜 전력은 모든 팀이 최상의 멤버로 총력을 다하는 10월 파리 올림픽 예선전에서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경기력과 자신감에서 세계 상위권 팀들과 대등한 경쟁을 하는 수준으로 올라선 건 분명하다.

공격 쌍포, 일본 리그서 뛴 적도 없다... 바로 '해외 도전'

특히 일본 남자배구가 현재 잘나가는 핵심 이유 중 첫 손에 꼽을 수 있는 건 주전 공격수 전원과 주전 세터가 '해외 빅리그'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는 최근 일부 선수가 해외 리그에 진출하기 시작한 일본 여자배구 대표팀, 단 한 명도 해외파가 없는 한국 남녀 배구 대표팀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현재 일본 남자배구 대표팀은 주전 공격수 4명과 주전 세터까지 무려 5명이 남자배구 세계 최고 리그인 이탈리아와 폴란드 리그에서 현재도 활약하고 있거나 경험이 있는 선수다.

이번 VNL에서 공격 쌍포 역할을 한 아웃사이드 히터 이시카와(28·192cm)와 란(22·188cm), 주전 아포짓을 번갈아 맡고 있는 니시다(23·187cm)와 미야우라(24·190cm), 그리고 주전 세터 세키타(30·175cm)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세계 최고 리그에서 최정상급 선수들을 상대로 살아남은 선수들이란 점이다. 때문에 국제대회에서 강팀들을 만나도 장신의 탄탄한 블로킹을 뜷어낼 기술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배구 흐름에 맞는 플레이 패턴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능력이 있다. 

특히 이시카와의 성장세가 단연 눈에 띈다. 그는 현재 일본 대표팀의 최고 공격수이자 수비에서도 핵심 선수다. 이번 VNL에서도 월드클래스급 공격력과 수비력을 선보였다.

그런데 이시카와는 일본 프로 리그가 배출한 선수가 아니다. 일본 리그에서 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2014-2015시즌에 곧바로 이탈리아 1부 리그에 도전장을 던졌다. 물론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낸 건 아니었다. 이탈리아 리그에서 초반 두 시즌은 선발 출전한 경기가 고작 2~3경기에 불과했다. 그러다 2018-2019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꾸준히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란도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 리그로 가지 않고 이탈리아 리그로 진출했다. 지난 2021-2022시즌부터 2022-2023시즌까지 두 시즌 동안 이탈리아 1부 리그 파도바 팀에서 활약했다. 란 역시 첫 시즌에는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했지만, 지난 시즌에는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로 맹활약하며 이탈리아 리그 득점 부문 13위를 기록했다. 이시카와(21위)보다 순위가 더 높았다. 란은 올 시즌부터 이탈리아 몬차 팀에서 뛴다.

외국인 감독·센터 장신화... 일본 여자배구와도 차별화
 
 ?필립 블랑 일본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
ⓒ 국제배구연맹
 
외국인 감독 효과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현재 일본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은 2001~2012년까지 프랑스 대표팀 감독으로서 역량이 검증된 필립 블랑(63) 감독이다. 이 또한 일본 여자배구와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과 다른 점이다.

일본 배구협회는 도쿄 올림픽 실패 직후인 2021년 10월, 남녀 배구 모두 대표팀 감독을 교체했다. 남자배구 대표팀은 외국인 감독인 필립 블랑을, 여자배구 대표팀은 자국 감독인 마나베(60)를 다시 발탁했다.

필립 감독이 지휘한 지난 시즌과 올 시즌 2년 동안, 국제대회 성적과 플레이 패턴 등에서 여자배구 대표팀보다 확연하게 발전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그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일본 배구협회는 필립 감독에게 오랜 기간 일본 남자배구를 성장시킬 기회를 부여했다. 그는 이미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일본 남자배구 대표팀의 수석 코치를 역임했다. 일부 대회에서는 나카가이치 감독을 대신해 감독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러다 도쿄 올림픽 이후 대표팀 감독으로 승격시킨 것이다.

일본 대표팀 급성장의 3번째 요인은 배구에서 신장이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미들블로커에서 장신화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세계 정상급 공격수들을 상대로 리딩 블로킹과 유효 블로킹을 만들어내는 능력, 속공의 빠르기와 파워 등에서 과거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이번 VNL에서 일본 대표팀의 주전 미들블로커 3인방은 야마우치(30·204cm), 오노데라(27·201cm), 켄타로(28·202cm)다. 모두 200cm가 넘는다. 

KOVO, '유망주 해외 진출' 장려... 더 과감해야

이처럼 일본 남자배구가 승승장구하는 핵심 요인 3가지는 한국 남자배구와 엄청난 격차를 만든 요인이자, 한국 남자배구가 다시 국제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본받아야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배구연맹(KOVO, 총재 조원태)은 향후 추진 과제로 '프로 3년 차 이내의 유망주 중에서 경기 출전이 가능한 해외 리그로 임대해서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언론에 공표한 바 있다. 그러나 어린 유망주가 실질적으로 해외 리그에 도전할 수 있으려면, 해외 진출에 발목을 잡고 있는 제도들부터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시급한 건, 신인 유망주 발굴·육성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일이다. 더 이상 학교 배구에만 일임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행 신인 드래프트 제도도 사실상 폐지하거나 대폭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있는 유망주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는 시스템에서는 선수 숫자가 아무리 늘어난들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보다 인구가 훨씬 적은 국가가 세계랭킹이 더 높은 경우도 많다.

지금처럼 신인들의 기량이 계속 하락한다면, 신인 드래프트의 목적인 '팀간 전력 균형' 기능도 사라지게 된다. 실제로 남자배구에서 대한항공은 최근 3년 연속 신인 드래프트에서 최하위 순번이었지만, 팀 성적은 3시즌 연속 통합 우승이라는 V리그 역사상 대기록을 달성했다. 구단의 적극적인 투자, 감독의 지도력 등이 선수들의 기량을 최상으로 발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유망주 육성 부분에서 신인 드래프트 제도의 역효과가 더 커지고 있다. 기량이 좋은 유망주가 육성 여건이 불리한 하위권 팀에 사실상 강제로 배정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한국 배구 유일한 살길은

또한 배구, 농구처럼 장신 유망주를 제대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신체 구조의 균형, 식단, 부상 관리 등을 어릴 때부터 관리해야 한다. 꾸준하고 체계적인 지원이 없이는, 대표팀은커녕 프로 선수도 되기 어렵다.

결국 좋은 신인 선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프로구단들이 직접 초중고 팀을 창단하거나 기존 팀과 협약을 통해 직접 운영하면서 유망주 발굴·육성을 전담하는 '유럽식 클럽 시스템'으로 하루빨리 전환하는 게, 현재로선 한국 남녀 배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프로구단 소속 초중고 팀 출신 선수 중 최소 1~2명은 해당 프로구단이 우선 지명할 수 있어야 한다.

클럽 시스템은 이미 전 세계 대부분의 배구 리그에서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유럽·남미 배구에서 한국 나이로 중·고등학생에 불과한 16~18세의 유망주들이 프로 리그는 물론 대표팀에서도 주전 멤버로 맹활약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것도 클럽 시스템이 잘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세계 배구의 현실이 이러함에도 V리그 남녀 구단들은 추가 투자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클럽 시스템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투자는 싫고 외국인 선수 늘리기, 귀화 등 쉬운 길만 찾다 보면, 한국 배구의 미래는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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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레이크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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