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스스로를 탄핵했다

오동석 2023. 7. 2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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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행안부장관 탄핵 기각이 의미하는 것... 무책임 정부의 '카르텔' 협력자가 되다

[오동석]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 공동취재사진
 
지난 25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이 일치한 의견으로 이태원 참사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와 모든 기관은 해당 직무를 수행하거나 하지 않을 때마다 심판대에 오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관련 공직자들이 주권자 국민에게 그 존재 이유를 입증한다. 이번 탄핵 심판 결과는 행안부장관 이상민에 대한 헌법적 심판이기도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존재 이유를 묻는 사건이다. 

이태원 참사는 159명의 사망자와 32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행안부장관은 안전과 재난 관련 총괄 책임자로서 책임을 지고 진상규명과 국가 책임 인정 그리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한 다음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국정을 총괄하는 대통령이 나서 행안부장관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어 해임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니 국회가 해임 건의를 의결했다. 대통령은 헌법적 근거를 가진 국회의 의사를 무시했다. 이제 제도적으로 남은 일은 탄핵 심판이었다.

시민 한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겨야 할 국가의 막중한 책무를 고려하면, 국가의 존재 이유가 달린 문제였다. 향후 사회적 참사의 방지와 사후 대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이었다. 이미 사회적 참사를 여러 번 겪은 한국 사회에서 시민들이 계속해서 국가를 신뢰할 수 있는지 마지막 시험대였다. 헌재가 국민을 대신해서 헌법적 심판을 하고 있는지 헌재 역시 심판대에 함께 오른 것이다. 그런데 헌재는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지 못했다. 

휴짓조각이 돼버린 헌법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심판 선고에서 재판관 전원 만장일치로 '기각' 결정이 내려지자, 대심판정을 나서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헌재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 안전을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국가가 아무런 보호조치를 하지 않거나 적절하고 효율적인 보호조치가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를 하지 않았음이 명백한 경우만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헌법 제10조제2문)를 위반'한 것이라는 낡은 공식을 고집했다. 21세기에 그런 국가가 과연 입헌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권력분립은 국가기관 간의 그런 '짬짜미'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헌재는 명색이 헌법을 재판하는 기관인데 헌법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헌법 또는 법률을 위배했는지를 판단해야 하는데(헌법 제65조제1항), 주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만 기준으로 삼았다. 헌법재판이 아니라 법원도 할 수 있는 법률 차원의 재판이었다. 헌법은 법관에게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심판하도록 명령하고 있는데도(헌법 제103조), 헌법을 삭제했다.

헌재가 말했듯이 탄핵 심판은 고위공직자의 헌법위반이나 법률 위반에 대해 헌법위반을 경고하고 사전에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 헌재는 법률조항을 파편화해 미분함으로써 총체적인 법률적 책임조차 수많은 작은 조각으로 해체했다. 헌재처럼 꼼꼼한 법률 해석과 적용을 유지하면, 탄핵을 통해 파면될 공직자는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도 어찌 보면 헌재가 국민의 압박에 떠밀려 헌재 자신을 구명한 것뿐이다. 

헌재는 가장 중요한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가 무엇인지를 해석하고, 특히 고위공직자가 어떤 헌법적 책임으로서 국정 운영에 임해야 하는지를 밝혀야 했다.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가 헌재에 제출한 의견서는 국민의 생명권 보호 관련해 유럽인권재판소의 기준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중 대표적인 예를 들면, 국가 또는 국가기관의 생명권 보호를 위한 조치 의무는 당국이 알고 있었거나 알아야 했던 생명에 대한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위험을 피하는 데 필요한 것을 모두 해야 하는 것이고, 만약 당국에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모든 조치를 하지 않았음이 드러나면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탄핵 심판은 이상민을 형사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행안부장관의 그 직을 계속 유지하게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안전과 재난의 총괄적인 책임을 그에게 계속 맡길 수 있는지 국민의 신뢰 여부를 헌법적으로 판단할 일이지 구체적인 재난안전법 위반 여부를 중심에 놓고 상세하게 따질 일이 아니다. 국정은 국민 전체와 관련된 사안이므로 국가공무원법상의 성실의무와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축소할 일도 아니다.

이러한 의무 위반을 인정한 재판관 세 사람의 별개 의견조차 안전과 재난 관련해 대통령 다음의 책임자인 행안부장관을 면책할 뿐이다. '단 한 사람도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않았으니 잘못이 없고 자신의 권한도 아니라는 아이히만'은 대한민국 헌재를 통해 이상민 행안부장관과 함께 좀비가 돼 살아났다.

잃어버린 신뢰
 
▲ 직무 복귀, 수해 현장 찾은 이상민 장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청구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5일 오후 충남 청양군 인양리 지천 제방 복구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가는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 관련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하는 헌법적 책무가 있다. 되풀이되는 사회적 참사, 노동 현장에서의 안전사고 등 산업재해, 사회구조적인 원인으로 인한 자살, 자연재해로 인한 참사 등은 모두 국가가 다양한 방식으로 책임져야 한다. 국가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헌법전문)을 위해 존재하고, 헌법 제34조제6항에서는 재해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의무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헌재의 이상민 탄핵 기각 결정이 있기 열흘 전쯤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는 14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유가족들은 협의회를 구성해서 무책임한 국가를 향한 고된 여정을 시작했다. 이상민 장관이 업무에 복귀해 수해 현장부터 갔다지만, 수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자 구제 그리고 재발 방지 대책을 제대로 수행할지 신뢰할 수 없다.

장관은 탄핵 기각 관련 의견을 밝히면서, 6개월간 고심했다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내용은 없었고, 행안부를 지지하고 격려한 국민에게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대통령실은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야당이 탄핵소추권을 남용했다는 입장이다.

헌재는 이상민 행안부장관을 면책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헌재는 주권자인 국민과 헌법의 인권 규범의 편에 서지 않고 무책임한 정부와 '카르텔' 협력자가 됐다.

헌재는 이상민을 탄핵하지 않는 대신 헌재 자신을 탄핵한 것이다. 입헌 민주주의 국가의 부재 상황에서 한반도 남쪽에 살고 있는 주권자 인민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할 기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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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오동석씨는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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