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한 명뿐인 하이다이버 최병화 "꼴찌도 괜찮다, 나는 살아 있으니까"

배영은 2023. 7. 2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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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화(31·인천광역시수영연맹)는 27m 아래 까마득한 수면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리고 조용히 몸을 돌려 눈을 감고 호흡을 골랐다. 공중으로 솟구쳐 오른 그가 물 아래로 가라앉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단 3초. 그 찰나의 순간 그는 또 한 번 '살아 있음'을 느꼈다.

최병화가 27일 일본 후쿠오카 모모치 시사이드 파크에서 열린 2023 세계수영선수권 하이다이빙 남자부 경기에서 연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병화는 한국에 단 한 명뿐인 '하이다이버'다. 하이다이빙은 아파트 10층 높이인 27m(여자 선수는 20m) 위에서 물속으로 몸을 던지는 종목이다. 워낙 부상 위험이 커 상체가 아닌 하체로 입수한다. 시속 90㎞의 속도로 낙하한 선수의 몸이 수면에 닿을 땐 천둥 번개가 치는 듯한 굉음이 들리고 거대한 물보라가 인다. 그만큼 몸 전체에 전해지는 충격이 엄청나다. 모든 선수가 '목숨을 걸고' 다이빙 플랫폼에 선다.

최병화는 27일 일본 후쿠오카 모모치 시사이드 파크에서 끝난 2023 세계수영선수권 하이다이빙 남자부 경기에서 1~4차 시기 합계 187.50점을 얻었다. 지난 25일 1·2차 시기에서 74.40점을 받았고, 이날 3·4차 시기에서 113.10점을 추가했다. 개인 최고 점수였지만 순위는 23명 중 최하위. 그래도 그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네 번의 다이빙을 무사히 마친 것만으로도 정말 만족스럽다. 나는 아직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라며 밝게 웃었다.

최병화가 27일 일본 후쿠오카 모모치 시사이드 파크에서 열린 2023 세계수영선수권 하이다이빙 남자부 경기에서 연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이다이빙 선수가 느끼는 가장 큰 공포는 '죽음' 그 자체다. 최병화는 "높이로 인한 본능적인 두려움은 훈련과 명상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선수 생활을 하면 할수록 더 큰 두려움이 생긴다"며 "내가 다쳐봤던 기술, 다쳐봤던 높이, 정신을 잃고 물속으로 가라앉는 동료들의 모습이 마음에 더 큰 공포를 심는다. 그걸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하이다이빙 선수 대기실 풍경은 다른 종목과 많이 다르다. 처음 만나는 선수들끼리 포옹을 나누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서로의 '안전'을 빌어준다. 최병화는 "우리는 경쟁자의 실수를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 실수를 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한 번 입수할 때마다 몸에 무리가 가니, 훈련도 여러 번 할 수 없다. 늘 몸이 보내는 신호에 신경 쓰고, 긴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병화는 어릴 때부터 물과 친숙했다. 초등학교 땐 경영을 했고, 대학 땐 조정을 했다. 군 복무도 해병대에서 마쳤다. 2014년 처음 다이빙의 즐거움을 깨달은 뒤 2016년 본격적으로 하이다이빙에 입문했다. 그러나 세계선수권으로 향하는 길은 고난과 외로움 그 자체였다. 한국에선 도약 훈련만 가능했고, 가장 가까운 경기장은 중국에 있었다. 더 좋은 시설을 찾으려면 자비로 미국이나 유럽까지 가야 했다. 그는 "꿈이 있고, 그 꿈을 향해 노력하려는 의지도 있는데, 여건과 환경 문제로 한계에 부딪히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이번 후쿠오카 대회는 최병화 홀로 분투했던 지난 7년의 결실이다. 대한수영연맹이 마침내 그에게 세계선수권에 참가할 수 있는 와일드카드를 줬다. 그는 출전이 확정됐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울컥 솟구치는 눈물을 간신히 참아냈다. 최병화는 "내가 한국의 첫 번째 하이다이버이고, 이곳에 처음으로 태극기가 걸려 있다는 건 충분히 영광스러운 일"이라면서도 "일부러 '최초'가 되려던 건 아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했는데, 그걸 먼저 한 선배들이 없었을 뿐"이라며 몸을 낮췄다. 또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한국에 또 다른 선수가 나타난다면, 내가 배우고 깨달은 모든 걸 알려 주고 싶다"며 웃었다.

최병화가 27일 일본 후쿠오카 모모치 시사이드 파크에서 열린 2023 세계수영선수권 하이다이빙 남자부 경기에서 연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병화의 몸 곳곳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인생에 의미 있는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씩 그려넣었다. 그중 왼쪽 허벅지에는 영문으로 "올림픽에서 중요한 건 이기는 게 아니라 참가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승리의 환희가 아니라 투쟁이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남긴 명언이다. 그는 "올림피언이셨던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알려주신 이야기"라고 했다.

최병화의 할아버지는 고(故) 최윤칠 대한육상연맹 고문이다. 최 고문은 1948년 런던 올림픽 마라톤에서 38㎞ 지점까지 선두로 달리다 결승선 3㎞ 앞에서 근육 경련으로 기권했던 '비운의 마라토너'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 3위에 올랐고, 1954년 마닐라 아시안게임 육상 1500m에서 한국에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겼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권유로 처음 수영장을 찾았던 손자는 "내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그저 늘 사랑만 주셨다"고 기억했다.

최병화가 27일 일본 후쿠오카 모모치 시사이드 파크에서 열린 2023 세계수영선수권 하이다이빙 남자부 3차 시기를 앞두고 관중에게 밝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병화는 하이다이버로서 아직 갈 길이 멀다. 코치도, 동료도 없이 홀로 찾은 후쿠오카에서 뒤늦게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내 기술이 다른 나라 선수들보다 투박해 보여도 상관 없다. 그 모습이 전국, 전 세계에 생중계돼 조금 창피해지더라도 괜찮다"며 "더 성장하기 위해 이곳에 왔고, 지난 5월 하이다이빙 월드컵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렇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경쟁력 있는 하이다이빙 선수가 되지 않을까"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최병화는 그렇게 첫 값진 경험을 마쳤고, "네 번이나 낭떠러지 끝에 섰고, 이렇게 여기 무사히 서 있는" 스스로를 자축했다. 그는 "이제 숙소로 돌아가 맛있는 걸 먹고 푹 쉬겠다"고 했다. 벼랑 끝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후쿠오카=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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