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칼부림' 후 호신용품 구매했지만… 정당방위는 불가능?
그런데 한 편에선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어차피 한국은 정당방위 인정 요건이 좁기 때문에 호신용품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내 딴에는 정당방위라 할지라도 쌍방폭행으로 고소당해 송사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므로 도망가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사실일까? 변호사에게 물어봤다.
◇칼 들고 위협받아도 정당방위 못 한다?
국내 형법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려면 다음 3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지금 부당한 침해가 발생했을 것 ▲침해의 정도가 상당할 것 ▲자신 또는 타인의 법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행위일 것 등이다. 법원은 이 요건을 기준으로 정당방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한다.
그런데 요건이 지나치게 모호하다. 특히 침해의 정도가 상당해야 한다는 ‘상당성’은 상황별로 주관적일 수박에 없다. 부당한 침해가 ‘언제’ 발생했는지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더라도 상당성은 상황의 위급함이나 가해자의 흉기 소지 여부, 성별 등을 반영해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필요 이상으로 대응하면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법률사무소 태린 김지혁 변호사는 “정당방위 요건은 법률적인 개념을 정립하기 위한 것이고 실제 판결에서는 개별적인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본다”며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 사례를 보면 대부분 정당방위가 필요하다는 상황을 이용해 적극적인 공격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호신용품 종류보다는 방어 수준 중요, “삼단봉은 위험”
호신용품을 사용했더라도 마찬가지다. 법원은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사람이 어떤 수단을 사용했는지 보다는 과잉방위를 한 건 아닌지, 보복심리가 있었던 건 아닌지에 집중한다. 법무법인 한일 추선희 변호사는 “예컨대 상대가 취해서 주먹으로 때리고 있는데 쇠파이프로 반격한다면 상당성이 결여됐다고 비칠 수 있다”며 “어떤 호신용품은 정당방위가 인정되고 어떤 건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단순 시비상황에서는 상대방이 흉기를 들고 있었더라도 마찬가지다. 방어 행위가 과격하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흉기를 들고 덤빈 사람에게 팔을 찔린 뒤 주먹으로 전치 5주의 상해를 입혀 제압한 뒤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인정되지 않은 사례가 있다. 당시 재판관은 “가해자가 흉기로 배를 겨냥했고 결국 상해를 입었던 점을 보면 정당방위 주장이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간다”면서도 “흉기를 놓친 가해자를 폭행했고, 강도가 세서 과잉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런 점에서 삼단봉은 특히 위험할 수 있다. 과잉방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지혁 변호사는 “호신용품 중에서도 후추 스프레이는 정당방위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지만 삼단봉은 논란이 있다”며 “위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호신 목적으로 소지했더라도 피해에 따라 법원에서는 가해나 보복을 의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쌍방 고소당하면 최소 6개월, “솔직히 도망이 최선”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송사다. 가해자가 때린 건 맞지만 본인도 맞았다고 주장하며 쌍방으로 고소하면 피의자가 된다. 경찰 선에서 100% 정당방위를 인정해 고소를 각하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추선희 변호사는 “쌍방으로 고소를 당하면 일단 폭행은 성립한 것이고 위법성을 조각할 사유로 정당방위 여부를 따지게 된다”며 “이런 과정이 최소 6개월이다 보니 일반인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망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설사 송사에 휘말리더라도 상황을 피하려고 노력했다면 유리하게 판단될 여지가 있다. 반대로 호전적으로 대응하면 상황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킨 걸로 간주될 수 있다. 도망갈 수 없는 상황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사건이 야간에 벌어지거나, 위협·폭행으로 극도의 공포·불안·흥분 상태에 휩싸였다고 판단된다면 적극적인 공격도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있다.
김지혁 변호사는 “솔직히 일단 상황 자체를 피하는 게 개인이나 법적인 차원에서 가장 최선”이라며 “드물긴 하지만 불가벌적 과잉방위라고 해서 적극적인 공격이 어쩔 수 없었다고 간주됐던 판례들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최근에 발생하는 ‘묻지가 흉기 사건’ 등에서는 정당방위 인정 폭이 넓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당방위가 나 자신만 보호하기 위한 게 아니라 타인의 법익도 지키기 위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법익 중에 가장 중요하다. 김지혁 변호사는 “최근 사건을 가정한다면 범인의 흉기가 내가 아니라 타인을 향하고 있더라도 적극적인 공격이 정당방위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범인의 두 번째, 세 번째 범행을 예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도 첫 번째 피해자의 법익을 위한다는 걸 법원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정당방위 인정 폭도 최근엔 넓어지는 추세다. 비유를 하자면 과거에는 상대방이 칼을 썼을 때 총을 쓰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었는데 점점 깨지고 있다. 최근 3~4년 전부터는 정당방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유의미한 판결들이 나오고 있다. 추선희 변호사는 “묻지마 폭행 같은 경우에는 길가다가 갑자기 발생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유발하는데 사법시스템은 국민정서의 영향을 받는다”며 “안타깝게도 비슷한 사건이 늘어난다면 정당방위 인정 폭은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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