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침해, '법'으로 해결? 그것이야말로 교권 침해
[서부원 기자]
이쯤 되면 '갈라치기의 끝판왕'이라 불러야 할 성싶다. 정부와 여당은 교권이 침해받는 현실을 두고 학생인권조례 탓이라며 폐지를 부르대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과거 진보 성향 교육감과 전교조 등을 싸잡아 교권 침해의 원흉인 양 몰아세우려는 것이다.
교권과 학생의 인권마저 대립 항으로 인식하는 천박함에는 더 보탤 말이 없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지역의 교권 침해 사례는 어떻게 설명할 텐가. 정의당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2021년 교사 100명당 교권 침해 건수는 광역자치단체별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학생인권조례를 교권 침해 원인으로 규정했는데, 세부 조항을 한 번이라도 훑어보셨는지 여쭙고 싶다. 두발과 용모 규정을 없애고, 체벌과 차별 대우를 금지한 것이 교권을 침해했다는 건 난센스다.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생활지도가 한결 수월해졌다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에서, 학생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만든 법이다. 만약 이것에 교권 침해 요소가 있다고 여긴다면, 관련 조항을 제시하고 토론하면 된다. 학생인권조례 전체를 뭉뚱그려 교권 침해의 주범인 양 몰아세워선 곤란하다.
▲ 교실 |
ⓒ 픽사베이 |
갈라치기 뒤엔 전가의 보도처럼 '법 만능주의'가 따라붙는다. 정부와 여당은 교권 침해 사례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재하는 '교원지위법'과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학부모가 아동 학대로 고소하지 못하도록 하는 '아동 학대 범죄 처벌법' 등의 개정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단언컨대, 교권 침해는 학생인권조례를 없애고, 사례를 학생부에 기재하고, 일부 극성 학부모들의 입을 닫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교실 내 크고 작은 갈등을 법으로만 해결하려고 들면 교육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교실을 법적 분쟁의 장으로 내모는 행태야말로 교권 침해다.
학교폭력 사안을 학생부에 기재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했다가 게도 구럭도 다 잃어버린 경험을 기억해야 한다.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 외엔 이렇다 할 효과는커녕 부작용만 넘쳐났다. 법 적용에 있어 약자에겐 가혹하고, 강자에게 관대한 관행이 그대로 이어졌다.
언제부턴가 교실 내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담임교사가 중재하기를 꺼린다. 자칫 송사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담당 교사에게 이관한 뒤, 웬만하면 교육청의 학교폭력심의위원회에 처결을 맡긴다. 담임교사의 업무 부담을 경감시켜준다는 취지에서다.
따지고 보면, 이는 공동체 생활을 배워야 하는 학교의 역할을 방기하는 처사다. 학교폭력을 비롯한 갈등의 예방과 원만한 해결 등 생활지도가 담임교사의 주요 업무인데도, 이를 외부 기관의 손에 내맡기는 건 반교육적이다. 와중에 경찰이 학교에 상주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교사들은 이미 손써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교사에겐 학교폭력의 가해 학생이든 피해 학생이든 교권 침해의 관점에서 보면 둘 다 '어려운 숙제'다. 변호사를 대동하고 법 조항을 들이밀면 교사로선 당해낼 재간이 없다. 섣불리 나섰다간 교사에게 불똥이 튀는 게 다반사다.
공교육 붕괴로 가는 마지막 절차, 교권 침해
교권 침해는 공교육 붕괴로 가는 마지막 절차다. 이는 학교에서 더는 그 어떤 교육 행위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는 존재로 규정되어 있을 뿐, 실제론 교육을 통해 감화되는 일은 드물다. 공교육은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셈이다.
해마다 5월 스승의 날에 울려 퍼지는 <스승의 은혜>도 '부르라니까 부르는' 노래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아이들조차 '김영란법'을 들먹이는 모습은 스승의 날의 면구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말 많고 탈 많은 스승의 날을 아예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얼마 전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확고한 교권 없이는 우리 교육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교권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한 말이지만, 정부와 여당이 제시하는 해결 방안은 구태의연하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사달이 벌어질 때마다 즉흥적으로 만들고 없애는 법은 한계가 분명하다. 이현령비현령의 형용사가 난무하는 법이라면, 종국에 주상 같은 법의 권위마저 훼손한다. '정당한' 생활지도, '과도한' 교권 침해, '사회 통념상 도를 넘는', '무차별적인' 민원 등 기준조차 모호한 단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어디까지가 정당하고 과도한 것인지 누가 판단하는가. '사회 통념'과 '무차별적'이라고 인식하는 기준선은 누가 결정하는가. 학교폭력이든 교권 침해든 칼로 두부 자르듯 분명하게 구분되는 건 흔치 않다. 결국 사안마다 교문 울타리 너머 법적 잣대를 들이밀겠다는 뜻이다.
사사건건 법이 교문 안으로 들어오면 교육은 이내 황폐화한다. 교사는 교육 행위에 대한 교육적 효과보다는 법적 하자 여부에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교육에 애써야 한다는 당위보다 민원이 제기되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책임질 일도 없다'는 무사안일한 태도는 그렇게 몸에 밴다.
▲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 연합뉴스 |
학교폭력 사안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법이 통과되자, 교실은 수시로 법적 분쟁에 휘말렸고 교사는 시나브로 학교폭력에서 손을 뗐다. 하나 마나 한 학교폭력 예방 교육을 하는 걸로 교사의 역할은 끝났다고 여긴다. 관련 서류만 잘 챙겨놓으면, 법적으로 책임질 일은 없을 테다.
교권 침해 사례가 학생부에 기재된다고 하니, 이젠 더 '아무것도 하지 않을' 태세다. 학교폭력은 이따금 불똥이 튀긴 해도 어디까지나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학부모들끼리의 문제지만, 교권 침해는 교사 자신이 직접적 대상이 되는 사안이다.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것 자체가 교사로서 자존감에 생채기가 나는 일이다.
요컨대, 교권 침해를 막는 근본적인 해법은 교육의 본령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허구한 날 '법대로'를 외치고 있지만, 적어도 학교에서는 조자룡 헌 칼 쓰듯 법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섣부른 법의 칼날에 학생도 교사도 모두 쓰러지게 될 것이다.
학교는 가정교육의 부재를 탓하고, 학부모는 교사의 자질을 문제 삼는 상황에서 법이 전가의 보도일 순 없다. 교권을 침해하면 학생부에 기재한다고 을러대는 건, 온존한 학벌 구조에 기댄 낡은 방식이다. 초등학교조차 대입에 종속된 뒤틀린 현실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 교사는 스스로 계획한 교육 활동을 통해 성취감을 얻고, 그것을 자양분 삼아 교육자적 소명 의식을 키운다. 교육 활동에 대한 교사의 자발적 의지를 북돋우려면,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절실하다. 교권 침해는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의 사회가 가져온 또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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