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 류승완 감독 "대본 본 김혜수-염정아, 감동한 줄 알았는데..."

이선필 2023. 7. 2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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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밀수> 류승완 감독

[이선필 기자]

 
 영화 <밀수>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
ⓒ (주)외유내강
 

두 해녀와 밀수, 그리고 1970년. 26일 개봉한 영화 <밀수>를 관통하는 세 키워드다. 액션과 코미디 활극 장르에서 독보적인 자기 세계를 구축해 온 류승완 감독에게도 어쩌면 낯설 수 있는 소재일 것이다. 개봉 하루 전인 26일 류승완 감독을 만났다. 대본을 든 순간 망설임 없이 배우 김혜수와 염정아를 떠올렸다던 그에게 영화 관련 이야기를 제법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밀수>는 군천이라는 가상의 어촌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케이퍼 액션물이다. 군천 토박이 진숙(염정아)과 떠돌이 출신이던 춘자(김혜수)의 갈등과 우정을 중심으로 국내 최고 밀수꾼 권 상사(조인성)와 어촌 사람들이 대거 엮이며 사건이 진행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전라북도 군산 내 지역박물관에서 우연히 본 단 한 줄의 글귀였다고 한다.

단순했던 아이디어

"70년대에 해녀들 밀수가 횡행했다는 내용이었다. <시동>이라는 영화를 제작할 때 우리 회사(제작사 외유내강) 부사장이 그걸 보고 영화로 개발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그보다 전에 전 한 잡지에서 곽재식 작가가 쓴 단편을 읽은 적이 있는데 여성 밀수단의 이야기였다. 지금의 <밀수>는 이 두 가지가 합쳐진 셈이지. 처음엔 연출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모가디슈> 후반 작업 때 대본 초고가 나와서 보니까 좋더라. 해녀들이 바다에서 활극을 벌인다? 어디서도 못 본 이야긴데 내가 연출하면 안 되겠냐고 먼저 물어봤다."

한국 상업 영화, 특히 성수기 때 여성 주연의 영화는 전무 하다시피 했다. 복기하면 2014년 1월 개봉한 하지원, 강예원, 가인 주연의 액션 <조선미녀삼총사>라는 영화가 있었으나 50만 관객을 채 동원하지 못하며 참패했다. 제작사나 투자사 입장에서 부담일 수 있는 지점이었다. 류승완 감독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이 대목에서 본인의 초기작 <피도 눈물도 없이>를 언급했다.

"오래 전 여성 배우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어봤다. 물론 흥행은 못 했지만, 전 하고 싶으면 한다. 흥행도 중요하긴 하지만, 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면 하는 거다. <모가디슈>도 아프리카에서 탈출하는 건데 거기에 흥행 요소가 뭐 있었겠나. 언젠가부터 우연찮게 흥행 영화를 만드는 감독처럼 됐는데 전 숫자보다 관객분들 한 사람마다의 반응, 마음에 얼마나 각인되는지가 중요하다. 당시엔 흥행 못 해도 좋은 영화라면 언젠가는 평가를 받기에 그걸 보고 간다.

<밀수>는 두 여성이 이끄는 영화는 맞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진숙을 축으로 주변 사람들이 변하고 성장하는 영화다. 군상 활극에 가깝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다만 해녀가 주인공이라 여성이 중심에 나와야 하는 것이지. 게다가 김혜수, 염정아가 주인공이다. 안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 여성을 투톱으로 한 걸 모험적 선택이라 좋게 봐주시는 분도 있는데 제가 그리 모험심 강한 사람은 아니다. 적당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지(웃음)"
  
 영화 <밀수> 스틸컷
ⓒ (주)NEW
 
난도 높은 액션, 기상천외한 구도와 활력을 스크린에 담아 왔던 류승완 감독은 GC나 특수효과보단 현실감과 실재감을 중시하는 편이다. 전작들이 그래왔고, <밀수>도 비록 바다가 배경이었지만, 세트를 만들더라도 실제로 배우들을 물에 빠뜨렸고 액션 연기를 지시했다. 남해 해상국립공원, 그리고 경기도 고양 인근에 거대 수조 세트를 만들어 배를 띄워 놓고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나름 날씨와 기후 영향은 최소화하면서 현실적인 액션 연기를 담기 위한 방편이었다.

"<탑건> <캐리비안의 해적> 등을 제작한 제리 브룩하이머를 미국에서 만난 적이 있다. 다음 영화가 바다 배경인데 노하우를 알려달라 했더니 씩 웃으면서 가급적 바다에 안 가는 게 제일 좋다고 하더라. 그 말을 이제 알 것 같다. 되게 위험하기도 하고, 날씨 영향을 많이 받아 1년에 촬영 가능한 날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배가 움직이는 장면은 실제 바다에서 다 찍었다. 나머지 수면이나 수중 신은 수조 세트를 활용했지. 포크레인을 활용해 파도를 만들기도 했다. 모든 과정이 사실 산 넘어 산이었다. 저랑 여러 작품을 찍은 촬영 오퍼레이터는 어느 날 제가 스카이다이빙 훈련을 지시하는 꿈을 꿨을 정도라고 했다(웃음)."

배우들의 헌신

관건은 수중 액션이었다. 촬영 전까지 배우 김혜수가 물 공포증이 있었고, 염정아는 아예 수영을 못하던 상태였음은 꽤 알려진 사실이다. 류승완 감독은 두 배우의 헌신과 함께 동료 해녀로 출연했던 배우 김재화, 박혜경, 주보비 등 배우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공로를 돌렸다.

"처음부터 김혜수, 염정아였기에 두 분을 사무실로 모셨다. 대본만 드리기 좀 그래서 우리가 준비한 것들을 다 보여드렸는데 제가 보기에 두 분 모두 감동을 먹은 표정이더라. 근데 알고 보니 혜수 선배는 해녀 영상 보고 물 공황이 온 거였고, 정아 배우는 수영을 아예 못해서 걱정하고 있었던 거였다. 어렵게 출연을 결정하셨는데 정아 배우는 쿨하잖나.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3개월간 수중 훈련을 받았다. 혜수 선배는 공황이 심해서 훈련 때도 잘 못 들어가셨는데 당시 코치님이 심리적으로 잘 잡아주셨고, 결정적으로 해녀 배우들이 응원해주고 해서 어느 순간 물속에서 연기를 하시더라. 정말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박경혜씨나 주보비 배우 등은 <모가디슈> 때도 참여했는데 제가 연락했을 때 주 배우도 물 공포가 있는 상태였고, 박경혜 배우는 본인을 물개라고 해놓고 알고 보니 아예 처음부터 수영을 배워서 온 거였다. 전 몰랐는데 배우들은 서로 그 사실을 알고 있더라. 촬영 때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만 봐서 몰랐었다. 그 얘길 나중에 듣고 너무 고마웠다."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단연 액션이다. 류승완 감독 입장에서 처음 시도한 수중 격투, 그리고 배우 조인성과 박정민을 위시한 상반된 액션 분위기도 공들인 촬영이었다.
 
 영화 <밀수> 스틸컷
ⓒ (주)NEW
  
"권 상사 액션은 장르적 멋과 쾌감이 넘쳤으면 했다. 제 영화에서 가상 도시를 주요 배경으로 설정한 게 <짝패>랑 이 영화다. 그만큼 실제 현실을 빗대기보다 장르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었다는 뜻이다. 액션이 아무리 화려해도 인물에 몰입 안 되면 소용없다. 권 상사만의 품의는 조인성 배우가 잘 채워줬다. 반대로 박정민의 장도리는 아주 달랐다. 처절한 몸부림, 활어의 파닥거리는 맛이 있었으면 했다. 후자는 사실 부상 위험이 크거든. 근데 제 생각보다 훨씬 훌륭하게 정민 배우가 해냈다.

권 상사의 액션 동력은 일종의 기사도였다. 지금은 사라져 가는 가치지. 남성이 여성을 보호한다는 게 지금은 뭐 대수냐 그럴 수 있는데, 그래서 일부러 영화 속에서 춘자와 권 상사 로맨스를 안 만든 것이다. 남녀 관계가 아닌 동료로서 권 상사의 패가 더 유리하니까 춘자를 숨겨주는 것이다. 로맨스보다 그게 더 큰 가치라고 본다. 성별을 뛰어 넘은 의리의 감정이라는 게 두 캐릭터 사이에 있었다.

여기에 더해 수중 액션은 김희진 싱크로나이즈 코치 도움이 컸다. 무술 감독과 둘이었으면 그런 액션을 못 만들었을 것이다. 제가 지상에서는 칼싸움도 총싸움도 맨몸도 다 해봤잖나. 물에서는 중력 제약 없이 자유로운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물의 저항이 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멋있게 보이려 슬로우모션을 일부러 걸기도 하잖나. 서스펜스를 수중 액션으로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패로부터 배운 용기

액션과 해녀와 함께 <밀수>에서 또다른 주인공은 바로 시대성이다. 처음 접했던 역사 자료가 1970년대 해녀라고 해도 굳이 현재 관객에게 거리가 먼 당대를 소환한 이유가 있었을 터. 류승완 감독은 "그때의 밀수와 지금의 밀수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가 너무도 달라진 것 같다"며 운을 뗐다.

"70년대 밀수품이라봐야 미제 카라멜, 담배, 바나나, 일제 전축과 워크맨 정도였다. 저도 들은 얘긴데 양담배 단속반이 다방에서 꽁초 색깔로 잡았다고 하더라. 007가방에 담아 팔곤 했던 라이방 선글라스, 잡지들도 다 밀수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왜 밀수품이지 싶은데 그만큼 우린 개발 도상국이었다. 우리 산업이 약하니까 밀수품을 막아서 자국 산업을 보호한 것이지. 지금에야 밀수라고 하면 마약, 금괴 등 아주 센 거잖나.

밀수라는 게 지금처럼 큰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시절. 먹고 살기 위해 조금씩 선을 넘다가 스스로 위험으로 몰아가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더불어 70년대 패션과 음악을 좋아했다. 복고풍이라고 하면 촌스럽게만 생각하는데 제가 기억하는 70년대는 되게 멋있는 세상이었거든. 부모님 옛날 사진을 봐도 나팔바지에 자유로운 헤어스타일이더라. 그때 미니스커트는 줄자로 재고, 장발도 단속하던 때잖나. 사회적 금기를 강요당하고, 개인은 반대로 벗어나려 하는 그런 에너지가 흥미로웠다."

류승완이 중견 감독인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부담과 압박도 커질 법한데 정작 류승완은 "제가 했던 것에서 가급적 멀리 가고픈 욕망이 있다"고 고백했다.

"영화를 열 편 넘게 만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류승완은 이럴 것이다 선입견이 생기잖나. <베테랑>을 좋아하는 분이 많긴 하지만, <다찌마와리>도 있고, <주먹이 운다>를 좋아하는 분도 계신다. 한때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싶었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취지다. 최근에 <베테랑> 속편을 찍긴 했지만 의도적으로 속편 제작을 피하던 때도 있다. 균형이 중요하다. 관객이 요구하는 익숙함과 제가 원하는 새로움 사이에서 균형을 얼마나 맞출 것인가. 너무 낯설면 당황하시고, 공식대로 하면 서서히 침몰하겠지. 저도 매번 새로운 걸 하기가 두렵다. 근데 구력이 쌓이고 실패도 해보니, 뭐 안되면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류승완 감독은 본인을 옛날 사람이라 표현했다. OTT 플랫폼 급성장으로 그 또한 해당 콘텐츠 연출 제안을 받았던 사실을 전하며, "<모래시계>나 <여명의 눈동자>처럼 2시간 안에 못담는 이야기라면 해볼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의 극장 상영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옛날 사람을 바꿔 말하면 곧 극장주의자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그의 말대로 <밀수>는 올 여름을 노린 체험형 극장 콘텐츠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1970년대 음악을 실컷 들을 수도 있고, 수중 액션으로 시원함을 느낄 수도 있다. "11곡의 삽입곡 중 단 한 곡이라도 귀에 들어오는 게 있을 것이라 믿는다"며 그가 웃어 보였다.

"음악은 일부러 과잉으로 했다. 이 영화가 아주 매끄럽기보단 개성 넘치길 원했거든. 매끄러운 데 개성 없는 것과 거칠지만 개성 있는 영화라면 난 후자가 좋다. 제가 극장 관람을 부탁드리는 것은 만든 사람 입장이다. 대형 스크린과 스피커 기준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대 관객은 어린 시절부터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고 자랐고, 코로나19가 지나면서 영화라는 개념이 바뀌는 것 같긴 하다. 그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 다만 가급적 만든 사람의 의도가 잘 담길 수 있는 매체로 봤으면 하는 거지. 물론 아예 안 보는 것보단 감사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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