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틴 남편 살해’ 사건 파기환송… 대법원이 달리 본 이유는?(종합)
대법원이 남편의 재산과 사망보험금 등을 노리고 니코틴 원액이 섞인 음식과 물을 먹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아내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2심 판결을 27일 파기환송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아내가 티코틴을 먹여 남편을 살해했다는 점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고, 아내의 살인 동기도 의심이 간다는 이유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이날 살인 및 컴퓨터등사용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2심 무죄 부분에 대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 반면, A씨의 상고를 받아들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살인의 공소사실 중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니코틴 원액을 탄 찬물을 건네주고 이를 마시도록 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유죄 부분에 대해 제시된 간접증거들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증거로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유죄로 확신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의문점들이 남아 있으며 그에 대해 추가적으로 심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이는 이상 원심의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하급심과 달리 사망한 남편의 부검결과나 감정의견 등은 피해자의 사인이 급성 니코틴 중독이라는 점과 남편이 응급진료센터를 다녀온 후 과량의 니코틴이 입으로 투여됐음을 추정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증거방법으로서 의미가 있을 뿐, 'A씨가 찬물에 니코틴 원액을 타서 남편으로 하여금 마시게 했다'는 공소사실이 증명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 살인 동기에 대해서도 내연관계 유지나 경제적 목적이 충분한 살인 동기가 됐다고 볼 정도인지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봤다.
A씨는 2021년 5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남편 B씨에게 니코틴 원액이 섞인 미숫가루 음료와 흰죽, 물 등을 먹여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남편이 사망한 뒤 내연남과 함께 살 집의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남편 명의의 휴대전화를 이용, 300만원을 대출받은 혐의도 있다.
A씨는 2008년 수원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던 B씨를 만나 2010년 5월 결혼했고, 2014년 아들을 출산했다. 2015년부터 화성에서 남편, 아들과 함께 살았던 A씨는 2018년 봉사단체 모임에서 만난 C씨와 교제하기 시작해 사건 당시까지 내연 관계를 유지했다.
A씨는 2020년 무렵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C씨가 숙식을 하며 지내도록 했고, 함께 3번이나 일본에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사건이 불거진 뒤 A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한 결과 2019년 5월 9일부터 2021년 8월 2일까지 하루 평균 194건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살해되기 두 달 전인 2021년 3월 14일경 아내와 C씨의 내연 관계를 알고 아내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자살소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A씨는 내연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다.
검찰에 따르면 평소 전자담배를 피웠던 A씨는 2020년 8월부터 2021년 5월 사이 한 담배제품 판매점에서 5번에 걸쳐 40만7000원을 결제했다. 수사 과정에서 가게 주인은 A씨가 처음에는 플라스틱 용기에 든 액상 니코틴을 구입했다가 나중에는 상자에 든 AP 니코틴 제품을 주로 구입했다고 진술했다. 또 A씨의 요청으로 불법이지만 니코틴 원액을 5방울 정도 추가로 첨가해줬다고도 했다.
전자담배에 사용되는 니코틴 용액은 니코틴 원액을 희석시켜 만드는데, 니코틴 원액은 매우 강력한 독성물질이다. 시중에 유통 중인 액상 니코틴의 경우 니코틴 함량이 2%(20mg/ml)이하이며, 궐련 담배의 니코틴 함량은 통상 1.6~2%(16~20mg/ml) 정도 수준이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불법 경로로 유통되는 니코틴 원액은 순도 99% 이상으로 990mg/ml의 니코틴을 함유하고 있다.
A씨는 2021년 5월 26일 아침 출근하려는 B씨에게 미숫가루에 꿀과 우유를 섞은 음료와 햄버거를 먹였다. 출근한 B씨가 전화해 복통을 호소하자 미숫가루에 탄 꿀이 상하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꿀의 유통기한이 2016년도까지였다. 미안하다'는 식으로 예기해 상한 꿀 때문에 배탈이 난 것처럼 A씨를 안심시켰다.
검찰은 A씨가 미숫가루 음료에 니코틴 원액을 타서 먹였는데도 B씨가 속쓰림 증세만 보이고 사망하지 않자, 같은 날 저녁 속이 좋지 않아 식사를 거부한 B씨에게 흰죽을 만들어 주면서 니코틴 원액을 넣어 먹게 했고, 그래도 B씨가 사망하지 않자 다음날인 2021년 5월 27일 새벽 1시30분부터 2시 사이 다량의 니코틴 원액을 탄 찬물을 마시도록 해 살해했다고 판단해 기소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B씨의 사망 원인을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감정했는데, 부검 결과 B씨의 위 속 내용물에서 많은 양의 니코틴이 검출됐고, B씨의 혈중 니코틴 함량이 치사농도로 확인됐다. 국과수는 B씨의 사망시각이 2021년 5월 27일 새벽 2시30분에서 3시30분 사이로 추정된다는 감정의견을 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판단해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A씨가 C씨와의 내연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자살소동까지 벌인 남편 B씨가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보이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던 점에 비춰 B씨의 재산, 사망보험금 등 경제적 목적이 충분한 범행동기로 인정되며, 아들 출산 이후 담배를 끊었던 B씨의 몸에서 다량의 니코틴 성분이 발견된 원인은 니코틴이 입으로 투입됐을 가능성 외에 다른 원인을 찾기 힘들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A씨는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하며 B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3회에 걸쳐 건네준 음식에 니코틴이 들어있었고, 피해자는 피고인이 마지막으로 건네 준 찬물에 든 니코틴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양형과 관련해서는 ▲A씨가 배우자가 있음에도 다른 남자와의 내연 관계를 유지하면서 남편의 사망으로 인한 사망보험금 등을 취득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니코틴 원액이 담긴 음식을 먹여 살해한 뒤 사망한 남편의 명의로 대출을 받아 대출금을 편취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대단히 불량하고 비난가능성이 높다는 점 ▲사망한 남편은 A씨의 대출금 채무를 대신 갚아주거나 추가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성실하게 생활했는데 A씨의 계획적인 범행으로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생을 마감하게 된 점 ▲한때 가족이었던 A씨의 손에 아들을 잃은 B씨의 아버지는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범행으로 아버지를 잃게 된 어린 아들이 향후 성장 과정에서 마주할 충격과 고통 역시 쉽게 짐작조차 되지 않는 점 등을 지적하며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에 대해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된 상태에서 진심으로 참회하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함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2심은 1심이 유죄로 인정한 공소사실 중 니코틴 원액이 든 미숫가루 음료와 흰죽을 먹게 한 부분은 무죄로 보고 1심 판결을 파기했지만, 찬물에 니코틴 원액을 타서 먹여 살해한 혐의는 1심 유죄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며 1심과 같은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양형과 관련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지적한 위 양형 사유들을 그대로 언급하며 "그럼에도 피고인은 당심에 이르기까지 살인범행을 부인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에 대해서는 중형을 선고함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대법원 "범행동기, 범행수법, 범행 후 정황 등 모두 의심스러워"대법원은 "피고인의 살인 동기, 범행 준비 정황이나 범행 방법, 사건 당시 상황 등에 대한 본질적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먼저 재판부는 A씨가 남편에게 니코틴 원액을 탄 찬물을 마시게 해 살해했다는 점이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에 의해 합리적인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님편 B씨는 A씨와 아들만 있는 집안 현관에서 엎드려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고, 사인이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판명됐는데, B씨의 신체에서는 주사바늘 자국이나 패치를 붙인 자국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입을 통해 니코틴 원액이나 니코틴 원액이 포함된 무언가를 먹거나 마셨을 수밖에 없는데, 검찰이나 하급심 재판부는 증상이 호전됐던 B씨가 다시 니코틴을 섭취한 것은 A씨가 건네준 찬물을 마실 때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전제했을 때만 타당하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피고인 A씨가 일관되게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B씨의 사망 경위나 A씨의 범행 준비나 실행을 입증할 직접증거가 없어 간접증거로 혐의 유무를 판단해야 하는 만큼, 하나하나의 간접사실이 상호 모순 또는 저촉되지 않아야 함은 물론 논리와 경험칙, 과학법칙에 따라 엄격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기준에서 볼 때 A씨가 건넨 찬물 외에 다른 경위로 B씨가 니코틴을 섭취하게 됐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 같은 판단에는 만일 A씨가 준 찬물 안에 치사량의 니코틴 원액이 들어가 있었을 때 B씨가 보였어야 할 구토, 설사 등 니코틴 노출로 인한 초기 증상이 일정한 시간 내에 없었다는 점도 참고가 됐다. 통상 입을 통해 니코틴을 마셨을 때 최고 농도에 이르는 시간은 약 30~66분인데, 해당 시간에 B씨는 그 같은 증상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 시간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가상화폐 시세 호가창 등을 캡처한 사실이 포렌식 결과 드러났다.
재판부는 A씨가 준 찬물에 치사량이 넘는 니코틴이 들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사건 발생 이후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찬물이 담긴 컵이 현장에 그대로 놓여져 있었던 점도 A씨를 물에 니코틴 원액을 섞어 B씨를 살해한 범인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라고 밝혔다. 사건 현장에는 문제의 찬물이 담긴 컵에 3분의 2 정도 물이 남아있었다는 점에서 과연 그 정도 용량의 물에 섞인 니코틴으로 사람을 살해할 수 있는지도 따져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 과정에서 심리에 참여한 의학교수들은 '일반적으로 의식 있는 사람에게 몰래 니코틴 원액을 음용하게 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점에 대해 공통된 의견을 보였다. 수사·재판 기록 중에는 '니코틴 원액보다 70배 이상 낮은 농도의 니코틴 용액을 혀에 살짝 대는 정도로 대보았을 뿐인데도 타는 맛이 나며 혀를 찌르는 듯한 자극적인 감이 오래도록 지속됐다'는 진술과 '니코틴 원액을 1%로 희석한 용액도 역겹고 타는 맛이 나 섭취하기 쉽지 않다'는 진술이 포함돼 있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할 때 A씨가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 찬물에 니코틴 원액을 타서 A씨에게 마시헤 하는 살해 방법을 선택한다는 것은 경험칙상 납득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 검찰과 하급심은 A씨가 가게에서 40만원 정도의 제품을 구매한 기록을 살인을 준비한 정황 증거로 제시했지만, 대법원은 평소 전자담배를 피웠던 A씨가 액상 니코틴 제품을 구매·사용했다는 점에서 액상 니코틴 용액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이를 살해 수단으로 준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밖에 검찰이 A씨의 휴대전화와 주거지 압수수색 등을 통해 범행 계획이나 준비와 관련된 단서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전에 범행을 준비했거나 계획했다고 볼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점도 지적했다.
대법원은 하급심이 인정한 '내연관계 유지와 경제적 목적'이라는 범행 동기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사건 발생 두 달 전인 2013년 3월 중순 A씨가 자신 몰래 대출을 받은 사실과 A씨가 아들을 데리고 내연남 C씨와 함께 여행을 간 사실을 알고 B씨가 자살을 시도하는 등 부부관계가 매우 악화되긴 했지만, 이후 부부 사이의 대화 내용을 보면 이전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고, 서로 크게 다투거나 갈등을 겪고 있는 모습은 확인되지 않는 등 부부관계가 다소나마 회복돼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B씨가 사망하기 직전인 2021년 5월 22일~23일 두 사람이 결혼기념일을 맞아 아들을 데리고 함께 여행을 다녀온 사실도 부부생활에 대한 불만이나 증오가 A씨가 B씨를 살해하는 동기가 됐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라고 밝혔다.
또 대법원은 하급심이 A씨의 범행 동기로 인정한 B씨의 재산이나 사망보험금 등에 대한 경제적 목적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당시 A씨의 경제적 상황이 매우 안 좋았던 건 사실이지만, 만 6세의 어린 아들을 두고 가정생활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살일을 감행할 정도였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하게 살펴봤어야 된다는 취지다. B씨가 사망할 당시 미납된 채무 누적 액수가 부부가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는지 분명하지 않은 데다가 재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사채나 악성 부채를 부담하고 있었던 사정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A씨는 자신의 명의로 공방 가게 보증금, 부동산, 콘도 회원권 등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고, B씨가 사망한 뒤 어머니로부터 돈을 빌려 채무 변제 등에 사용하는 등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지도 충분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 A씨가 경제적 이유로 남편을 살해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봤다. B씨 사망 직후 A씨가 적극적으로 사망보험금 지급 절차를 알아보거나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았다는 보험 담당자의 진술도 이 같은 판단에 고려됐다.
마지막으로 범죄 후 정황과 관련 대법원은 A씨가 남편 사망 직후 스스로 수사기관에 부검을 원한다고 진술해 구체적인 사망원인이나 경위를 확인할 수 있게 한 점, 경찰이 도착하기까지 증거를 인멸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찬물이 담긴 컵을 그대로 책상 위에 놓아둔 점, 수사기관이 불법적으로 니코틴 원액을 추가했다고 주장하는 제품을 그대로 갖고 있었던 점 등은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행동으로 보기에 석연치 않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는 이상 피고인의 소명에 타당성이 부족하거나 피고인이 일부 의문점을 해소해 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인 증거와 이에 기초한 치밀한 논증의 뒷받침 없이 살인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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