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오는 순간 죽음" 30년차 산림기술자의 경고

노광준 2023. 7. 2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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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맞게 산사태 위험지역 기준 조정하고, 더 넓은 지역에 예방대책 마련해야

[노광준 기자]

 집중 호우로 산사태가 나 토사가 흘러내린 경북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 계곡을 가로지르는 길이 무너져 있다.
ⓒ 조정훈
 
"토사는 아무리 작은 붕괴 현장이라도 밀려오는 순간 죽음입니다."

지난 주말 보고되지 않은 작은 산사태 현장에서 작업을 하다 온 산림기술자의 말이다. 그가 일한 현장은 경기도 평야 지대에 있는 조그만 산지, 그러나 이런 말을 했다. 아무리 작은 산이라도 순식간에 생명을 앗아가는 게 산사태라고.

궁금했다. 그는 산사태 현장에서 무얼 봤을까. 그리고 경북 예천 사고를 비롯해 큰 피해를 남긴 산사태 발생 원인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와의 대화 내용을 정리했다.

물보다 더 무서운 게 흙과 돌덩이가 섞인 토사

왜 토사가 밀려 내려오는 게 무서운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을 했다.

"엄밀하게 말해 산사태는 두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산의 사방이 무너져 붕괴되는 현상으로서의 산사태가 있고, 기존의 불어난 계곡물에 토사가 섞이면서 거대한 흙탕물이 밀려 내려오는 '토석류'가 있어요." (30년 경력 산림기술자 K씨)

토석류(土石流, Debris flow)는 산이 무너지면서 생긴 토사와 계곡물 바닥에 쌓인 흙, 돌, 바위 등이 물과 함께 시속 20~40km의 속도로 흘려내려오는, 한마디로 토사가 쓸려 내려오는 현상을 말한다.

"예천 같은 경우도 토석류가 개입된 거죠. 흙과 모래가 많으니까 그게 내려와서 덥치면 사람이 못 움직이는 거죠, 묻히면. 흙탕물 속에서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거예요. (개인적인 생각에는) 물이 그나마 약한 거고, 눈사태, 그리고 토석류..."

단지 흙만 있는 게 아니다. 돌들이 섞여 내려와 치명타를 줄 수 있다.

"문제는 돌멩이도 같이 내려온다는 거예요. 돌 맞으면 그냥 죽잖아요. 그런 게 추가위협요소가 되는 거죠."

이렇게 '토사'가 무섭기에 산사태 예방대책에서 사방공사를 할 때에도 토사를 막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산지사방이라고 해서 산에 나무를 심고 흙담, 마대산 같은 것을 만들고 사방댐도 그렇고 대부분 물을 막는 게 아니라 토사를 막는 거예요. 토사가 흘러 내려올 때 댐이 한번 막아주는 거죠."

산사태 위험지역 기준이 흔들린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산사태 예방 쪽으로 흘러갔다. 산림청은 전문가들의 현장실사를 통해 산사태 위험지역을 등급별로 표시하고 전국화된 지도를 만들어 관리한다. 위험등급이 높을 수록 사방댐 등 예방대책이 먼저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산사태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산사태 지도상 위험등급이 높은 지역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위험등급 점수를 매겨봤는데 '어 이거 너무 위험하다'라고 하면 사방사업을 하는 거죠. 그런데 거기(예천 지역) 같은 경우 아무 시설도 없었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덜 위험한 곳이었다는 거죠. 몇 가지 요인을 따져보며 점수를 매기는데 덜 위험한 곳으로 분류됐다는 거죠."

산사태 위험 등급의 경우 경사도, 토심, 숲의 상태, 주변 민가 현황 등 크게 8가지 인자를 조사해 각각의 점수를 매긴 뒤 합계점수를 통해 분류한다. 문제는 조사하는 항목 8가지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각 기준에 부여되는 가중치 점수가 몇 차례 논의 끝에 달라져왔다는 점이다. 가장 큰 논란 지점은 주변에 민가 등 보호대상이 얼마나 많은지를 판단하는 '보호대상'에 대한 가중치 부여 점수 논란이었다.

"판단기준이 몇 번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보호대상'에 대한 점수가 너무 컸어요. 그러다 보니 산이 있고 그 밑에 아파트가 있다면, 그 지역이 '위험지역'이 될 공산이 컸어요. 보호대상 점수가 너무 크니까. 그러다가 이건 좀 합리적이지 못한 것 같다는 논의가 일었어요. 산의 객관적인 상태가 중요한 거지 밑에 민가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산사태 위험등급을 올리는 건 더 위험한 곳에 대한 대책이 소홀해질 수 있다는 논의가 일면서 점수기준을 조정한 거죠."

실제로 과거 기준과 최근 기준을 보면 민가 등 '보호대상'에 대한 점수가 1/5가량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호대상'보다는 객관적 산의 상태를 중시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문제는 기후변화로 국지성 호우가 많아지는 요즘같은 시기에는 어디도 산사태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없어졌다는 점에 있다.

인간이 자연재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지난 13일부터 내린 집중 호우로 산사태가 나면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의 한 집이 무너져 있다.
ⓒ 조정훈
 
"요즘처럼 한 곳에 계속 집중호우가 내려버리면 차라리 옛날 기준(민가중심의)이 맞는 게 돼버리는 거죠. 무조건 근처에 집이 많다고 위험하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판단했었는데, 기후가 변하다 보니 오히려 그 생각이 맞았구나 하는 거죠."

이처럼 기준이 흔들리는 기후위기의 시대, 끔찍한 사태를 겪으면서 산사태 위험지역의 범위를 넓히고 예방대책을 좀 더 많은 곳에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금은 산사태 위험등급 1-5등급 중 1, 2등급 위주로 대책공사가 들어가는데 앞으로는 더 넓혀야겠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에게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귀에 퍽퍽 꽂히는 이야기가 나왔다.

"저희처럼 산림조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도 산사태나 산불 현장에 나가게 되면 사람이 피폐해져요. 무섭거든요. 처참하고... 너무 무서운 거예요. 그런데 인간이 자연재해를 막을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는 우리 노력에 따라서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잖아요. 그런 걸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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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30년차 산림기술자 K씨와의 인터뷰는 2023년 7월26일(목) 오후에 진행되었고, 그의 요청으로 이름과 직함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 내용은 OBS 라디오의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 (매일 오전 11시~12시)를 통해 방송됐으며 방송 내용 다시보기는 OBS 라디오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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