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 생활]산낙지 질식사, 끝나지 않은 아쉬움

2023. 7. 2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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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여자와 연인관계였다.

보험 수익자 변경을 한 후 15일 정도가 지나 남자는 여자와 주점에서 술을 마신 후 인근 횟집에서 낙지를 샀다.

남자는 모텔 종업원에게 "여자친구가 낙지를 먹다가 숨을 쉬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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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여자와 연인관계였다. 여자는 부모의 이혼으로 인천에서 외조부모, 여동생과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고 사회 경험이 많지 않아 순진했다. 남자는 고모를 통해 여자에게 보험 가입을 요구했다. 사망 보험금은 2억원. 최초 보험 수익자는 가족, 즉 상속인이었으나 가입 한 달 후 보험금 수령인을 남자로 변경했다. 보험 수익자 변경을 한 후 15일 정도가 지나 남자는 여자와 주점에서 술을 마신 후 인근 횟집에서 낙지를 샀다. 산낙지 2마리는 물이 담긴 봉지에 통째로 넣고 나머지 2마리는 잘라달라고 주문했다. 여자와 남자는 인근 편의점에 이어 모텔까지 술자리를 이어갔다. 모텔에서 갑자기 여자의 호흡이 정지되고 의식이 소실되었다. 남자는 모텔 종업원에게 "여자친구가 낙지를 먹다가 숨을 쉬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여자는 평온한 표정으로 잠을 자듯 하늘을 향해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모텔 객실에는 술잔과 잘린 낙지가 들어있는 일회용 용기, 통낙지 한 마리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 작은 수건이 있었다. 피해자 근처에는 큰 수건과 통낙지 한 마리가 떨어져 있었다. 술자리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였다. 여자는 산소 부족으로 인한 뇌 손상으로 약 보름 후에 사망했다. 여자를 치료했던 병원 의료진은 갑작스러운 심장 정지는 질식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피해자의 연령, 건강 상태나 치료 전력 등에 비추어 피해자가 갑작스러운 심폐기능 정지 상태에 이를 만한 다른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만취 상태에서 낙지를 먹다가 사망했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여자의 장례가 치러졌다.

보험금 2억원을 남자가 수령한 사실을 여자 가족이 알게 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경찰은 보험금을 노린 살인 사건으로 의심해 수사했고, 검찰은 법의학자들의 답변을 토대로 살인으로 기소했다. 1심에서는 유죄가 선고되었으나 항소심과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무죄였다. 당시 2명의 법의학자는 질식의 원인은 이물질이 기도를 막아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기도폐색, 코와 입이 강제로 막혀 숨을 쉴 수 없게 되는 비구폐색, 목이 조이거나 눌려 숨을 쉬지 못하는 경부압박이 있다고 발언했다. 당시 처음에는 여자의 입 안에서 산낙지가 보이지 않아 빼내지 못했는데 모텔 종업원이 온 뒤 손가락을 넣어 산낙지를 빼냈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필자의 스승님을 포함한 법의학자 2명은 모두 음식물을 밀어 내리는 연하작용을 감안할 때 위와 같은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고등법원과 대법원은 남자는 여자가 낙지를 입에 넣었다가 숨이 막힌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코와 입을 막은 질식의 흔적이 없고 여자가 술에 만취한 상태라고 하지만 별다른 상처 없고 낙지를 자의에 의해 먹은 것인지 타의에 의해 주입된 것인지도 구별을 할 객관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살인죄 판단이 불가하다고 보았다.

이 건에서 아쉬운 점은 부검이 없었고 사망 15일 전에 발생한 당시 상황에서 의료진은 치료에 몰두하다 신체적 증거의 수집이 불충분하였다는 점이다. 법의학자의 의견이 재판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많은 법의학자들이 아쉬워하는 사건이다.

두 명의 사람이 한 공간에서 있다 한 명이 사망한 경우 부검의 여부와 사망자의 당시 상황에 따라 결과가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유족은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혹시 같이 있었다가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사회적 낙인이 작용할 수 있다. 임상 법의학과 같은 새로운 방법을 고심할 필요가 있다.

유성호 법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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