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 애들 앞에서 "선생님 기간제잖아요"... 추락할 교권조차 없다
[김화빈 기자]
▲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곳곳에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는 메시지와 국화가 놓여있다. |
ⓒ 연합뉴스 |
"학부모가 교실로 찾아와 애들 앞에서 '선생님 기간제잖아요'라고 따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민원이 들어오면 학교를 옮기거나 아예 지역을 옮겨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24일 서울시교육청과 3개 교직단체의 기자회견 중 한 남성이 갑자기 나와 "제 딸이 기간제 교사인데"라며 울부짖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우리 딸은 꽃 한송이도 못 받고 죽었다"라며 "우리 딸도 똑같은 교사고 자랑스런 딸이다. 제 딸 억울한 사연도 좀 들어 달라. 제발 같이 조사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초등교사의 학내 사망 사건 후 교권 보호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 논의에서마저 소외돼 있는 기간제 교사들은 '추락할 교권마저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기간제 교사 6명은 하나 같이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교사 대우마저 받지 못한 사례'를 언급하며 "최소한의 보호 장치라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 지난 24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시교육청에서 열린 시교육청-교직 3단체 긴급 공동 기자회견에서 또 다른 사건 피해자 가족이 자신의 딸 사건 조사를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 연합뉴스 |
3년 차 기간제 교사인 A씨는 "학생·학부모와 문제가 생길 경우, 정교사는 본인이 원하면 교보위(학교교권보호위원회)라도 열 수라도 있지만 기간제 교사들은 쉽게 그럴 수 없다"라며 "학교는 민원이 들어오면 '(기간제 교사를) 자르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기간제 교사가 그만두면 '민원이 해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문제가 발생해도) 흘려버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기간제 교사들은 민원이 들어오거나 큰 민원이 터지면 학교를 옮기거나 아예 지역을 옮겨야 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10년 차 기간제 교사인 B씨도 "학부모가 교실로 찾아와 애들 앞에서 '선생님 기간제잖아요'라고 따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라며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기간제 선생님들은 계약 해지를 우려해 문제 제기조차 하지 못한다. '우린 안 될 거야. 소용 없을 거야'라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털어놨다.
5년 차 기간제 교사 C씨는 "사실상 서비스직으로 전락한 교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도 마련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현실은 서비스직인데 교사를 봉사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많다"며 "콜센터에선 '상담원은 우리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안내문구라도 내보내지 않나. 하다 못해 그런 안내문이라고 넣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개탄했다.
기간제 교사처럼 계약직인 방과후 교사들 또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방과후 교사 D씨는 지난해 학부모로부터 "일당이나 다름없는 월급 받으러 오셨으면 딱 그만큼만 하세요. (중략) 본인이 교육자인양 기고만장하지 마시고 계약직 교사면 계약직답게 행동하세요"라고 적힌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놀이활동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를 제지했다 겪은 위 사례를 떠올리며 "아직도 손이 떨린다"고 말한 그는 "학교교권보호위원회를 열려고 했는데 학교 측에서 '사과로 조용히 끝내자'고 해서 그렇게 그냥 끝냈다"라고 말했다.
지난 24일 '전국 기간제교사 모임' 인터넷 카페에는 재직 중 부당한 민원을 유형별로 나눠 투표에 붙이는 게시물도 올라왔다. 투표에 참여한 기간제 교사 61명(26일 오후 6시 기준)은 '우리 애 아빠가 많이 화났어요' '선생님은 애가 없어서 잘 모르시겠네요' '앞으로 교사 못 하게 만겠다' '선생님 저희 애 졸업할 때까진 결혼하지 마세요' 등의 표현에 표를 던지며 댓글로 공분을 이어갔다.
▲ 지난 24일 '전국 기간제교사 모임' 인터넷 카페에는 재직 중 당한 부당한 민원을 유형별로 나눠 투표에 붙이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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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과 교권, 제로섬 아냐"... 정부·여당 기조에 '싸늘'
교육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26일 오전 국회에서 '교권 보호 및 회복 방안' 관련 당정협의회를 열고 ▲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등 교권 보호 법률 개정 신속 추진 ▲학생 생활지도 고시안 8월 내 마련 ▲교사 요청 시 교보위 반드시 개최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특히 정부·여당은 사건 발생 후 줄곧 학생인권조례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날도 박대출 국민의 정책위의장은 "현재 7개 시·도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를 정비하지 않으면 교권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이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간제 교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올해 4년 차 기간제 교사인 E씨는 "학생인권조례는 과거에 썩 좋지 않았던 교육 방식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며 "학생인권조례를 실시하지 않는 지역에서도 교권 침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기간제 교사 노동조합에서도 정부·여당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했다. 박혜성 기간제교사노동조합 위원장은 "근본적 원인은 경쟁 교육체제 속 진학에 대한 학생들의 스트레스"라며 "(경쟁이 과열되면서) '똑바로 앉아라' '수업 열심히 듣자'와 같은 교사의 지도도 본인(학생)을 공격하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근본적 원인을 바꾸지 않고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거나 교권을 위한 법을 만드는 것으로 교권 침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라며 "(정부·여당의 해법대로 가면)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법대 법' 소송의 관계가 된다"고 우려했다.
▲ 당정협의회 참석한 이주호 부총리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권 보호 및 회복방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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