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은 꼭 난파선에서 올라탄 느낌... 실업급여는 구명조끼"

배운기 2023. 7. 2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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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와 개인회생·파산 신청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두 얼굴

[배운기 기자]

 지난 17일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실업급여 신청 창구가 분주하다.
ⓒ 연합뉴스
 
사회시스템에 관한 모든 논란에 정답은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외면하거나 모를 뿐이다. 칼 포퍼(Karl Popper, 철학자)의 말처럼 민주주의 자체는 이성을 제공하지 않는다. 정치하는 이들과 국민의 지적/도덕적 기준(수준)에 관한 문제는 상당한 정도로 개인적인 문제다. 결국 열린사회를 여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정치시스템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문제라는 얘기다.

실업급여가 '시럽급여'가 되는 사회

최근 비자발적 사유로 퇴직한 친구가 실업(구직)급여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 친구는 아직 학생인 자녀가 둘이나 있다. 현재 실업급여를 받으며 구직활동 중에 있다. 수급기간은 9개월로 본인이 재취업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음을 정기적으로 제출하고 있다.

"실직자가 되면 답이 없지. 여기저기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고 경력이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 그런데 이런 구직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비용인 실업급여가 많다느니 사치비용에 지출되느니 하는 것은 정책입안자들이 이런 상황을 절대로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일 거야."

"실업은 꼭 난파선에서 올라탄 느낌이지. 실업급여는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구명조끼와 같은 거지. 인터넷으로 신청도 가능하지만 막상 고용센터를 방문해보면 불편하기 짝이 없지. 그렇다고 우거지상을 하고 관공서를 방문할 수도 없잖아. 실직이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실업급여는 난데없는 '시럽급여'가 되어 뜨거운 감자가 됐다. 실업급여에 대한 정부 여당의 문제제기는 실직자를 모독했다는 범국민적 원성을 자아내고 있다. 극히 일부의 소비행태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은 고용보험과 실업자 구제정책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실업상황은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재난이다. 금수저층이 아닌 이상 일하고 받는 월급이 없으면 생계가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시럽급여'로 논란을 일으킨 국회의원의 월평균 수당은 1286만 원이다. 연봉이 1억 5000여 만 원인 그에게 실업은 그냥 남의 불행일 뿐이다.

실업급여는 최소한의 생계비이자 사회안전망, 재취업을 위한 준비자금이다. 극히 희소한 케이스를 일반화시켜 시럽급여라 희화화하는 것은 잘못된 계급적 시각에서 나온다. 실업급여로 해외여행을 가거나 샤넬 선글라스를 구입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 것인가? 말 그대로 편향적 뇌피셜이거나 탁상추정의 결과물일 것이다.

특히 '시럽급여'라는 모욕적 단어로 여성과 청년세대 전체를 모럴해저드를 가진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은 몰상식이다. 실업급여로 어떠한 소비를 하던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며 자유다. 실업급여의 현실적 문제는 부정수급과 정당하지 못한 재수급 등이다. 이를 바로잡지 못하면서 개인의 소비행태를 비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빈대 한 마리 때문에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보다 더 우스운 얘기다.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백서(2022년)가 밝힌 바와 같이 고용보험기금의 악화는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한 실업률 증가'가 주요 원인이다. 또한 성별, 연령대별, 산업별로 고용 중단 상황은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사회경제적 현상을 개인들(여성, 청년세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국가의 존재와 책임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2022년 OECD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고용보험 가입노동자는 48%에 그친다. 가입대상자이지만 가입하지 않거나 못한 집단이 14%, 가입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집단이 38%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의 고용보험을 통한 사각지대가 크다는 것을 증명한다. 실업급여의 하한액이 높은 것으로 보이는 것 또한 최저생계비의 인상을 통한 통계적인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누군가의 생존이 힘을 가진 이들에게 희화화 대상이 되거나 정치적 목적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비전문가적 지적과 비합리적 언행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들을 괴롭히는 이들이 많다. 시럽급여 논쟁이 특히 그렇다.

국가의 건전재정과 국민의 복지와 사회안전망은 동일한 차원의 문제가 아님에도 이를 혼동했을 때 국가의 책임과 국민의 생존은 분리된다. 특히 노동자 계층을 억압하고 부자감세와 법인세 인하를 주도하는 현 정부에서 노동자 계층의 소외는 비극적인 현실이다.

개인회생·파산 신청자가 늘어날 때 법원의 대처방법은?

만약, 사회경제적 위기가 장기화되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한계 채무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실업급여와 같은 엉뚱한 문제가 제기되면 어떻게 될까? 경제적 상황은 개인의 책임이므로 극히 제한적인 요건 하에서만 회생파산신청을 받도록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면 어떨까? 회생 파산 면책 받은 자가 그 이후에나 아니면 면책 이전에 고급차를 타거나 해외여행을 가기 때문에 면책해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

각급 회생법원에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이들의 수는 연간 14만여 명(2022. 7.~ 2023. 6.)에 이른다. 경제적 한계상황임에도 제도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있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한계채무자의 숫자는 헤아리기 쉽지 않다. 이는 개인이 견뎌야 할 자본주의적 삶이 녹록치 않음을 증명한다. 실직(혹은 부도)이 반복되고 경제적 상황이 악화되면 결국 기댈 곳은 회생법원밖에 없다.

최근 사법부는 지속적인 경제상황 악화로 회생법원의 설치를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3월에도 기존의 서울회생법원 외에 수원과 부산에 회생법원을 설치했다. 추가적으로 광주, 대전, 대구에 회생법원 설치를 요구하는 '각급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있다.

전국의 주요 지역에 회생법원을 추가로 설치하는 것은 경제적 한계상황에 있는 채무자의 일상 복귀를 돕자는 취지다. 신속한 채무자 구제와 경제적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전문법원인 회생법원을 늘리는 정책은 근본적으로 옳다. 각 지역 소재 기업이나 주민이 보다 신속하게 도산 사건과 관련한 전문적인 사법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회생파산 제도에 관한 다양한 찬반 논의에도 불구하고 회생파산제도의 정당성은 이제 고유한 가치를 가진다.

개인파산을 신청하고 신용교육을 위해 회생법원을 방문한 어느 채무자의 얘기다. 신용교육은 채무자의 채무조정 등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신용회복위원회와 회생법원이 연계하여 개인회생·파산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금융교육이다.

"나름 열심히 살려고 노력은 했죠. 돈 많이 벌고 부자 되는 게 마음대로 되었으면 아무런 걱정이 없었을 테죠. 그렇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맘대로 안 되잖아요. 뻔한 소득에 여기 빼서 저기 메꾸고 이리저리 땜빵하다 보면 빚만 늘게 되고..."

"정치하는 사람들 얘기처럼 해외여행이고 사치품이고 모두 별나라 사람들 얘기죠. 그야말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애들 학원비는 꿈도 못 꿔요. 어쩌다 치킨 사주면 잘 먹는 아이들 보면 부모로서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런 회생파산제도가 없었다면 어디 가서 사람 취급도 받기 힘든 세상이에요...."

개인회생/파산제도에 대해서는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늘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을 할 수밖에 없다. 또한 개인파산의 지속적 증가는 금융기관의 부실이나 국가경제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까닭에 법원에서는 개인회생파산제도를 채무자에게 우호적으로 운영하면서도 부정적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경제적 자기결정권과 국가와 제도의 사회적 책무를 다시 묻는다면?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개인은 자기능력과 자기결정권에 기반을 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대처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해서는 특정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국민의 삶과 관련된 사회경제적 문제에 답을 내는 것은 1차적으로 정치와 정부의 역할이라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사회는 실직자라는 상황과 파산자라는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파산제도의 원조 격인 미국에서는 파산제도가 원칙이고 회생제도가 예외인 반면, 우리나라는 회생신청이 주를 이루고 파산이 예외가 되는 역전현상을 보이는 것도 사회적 낙인을 두려워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실업급여에 관한 비판은 부정수급과 마땅히 받아야 할 이들이 못 받는 구조적 문제(사각지대)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이는 회생파산 신청에 대해서 법원이 정당한 신청은 신속히 처리하고 이를 악용하는 케이스는 엄격한 심사기준을 갖는 것과 같다. 국가와 각종 제도의 수혜를 받는 이들을 불합리한 이유로 비난하기보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보호받고 배려 받아야 할 이들이 소외되는 상황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국가의 정당한 책무가 아닐까?

실업급여와 개인회생/파산 제도는 사회안전망과 재출발기회 부여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사회나 개인에게 행복은 혼자서 오지 않지만, 불행 또한 마찬가지다. 사회적 상황과 결부된 경제적 약자의 갱생을 위해 우리 사회가 노력하지 않을 때 사회적 불행의 진면목을 계속 보게 되지 않을까!

여하튼, 우리는 사회경제적 제도가 개인의 삶을 억누르고 희생시키면서 사회 전체의 공익(?)을 도모하는 시도를 반대한다. 우리는 간섭과 통제에 의한 국가와 정부의 역할보다는 이성과 토론을 전제로 하는 열린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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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회생법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개인 브런치스토리에 중복 게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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