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트렌드 2023]친구는 내가 정한다 '인덱스 관계'
오픈채팅앱 등으로 익명 타인과 우연한 만남 즐겨
만남을 기회로 이을 혜안 필요
인간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잠시 나의 ‘베프(절친·best friend)’를 생각하며, 그를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려보자. 어떤 계기로 당신은 그와 친구가 됐는가?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우연한 기회에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같은 전공이어서, 같은 수업을 들어서, 동아리를 함께 해서, 회사 동기여서, 취미 모임을 나갔다가’ 등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 속 모임을 계기로 만남이 이루어진다. 반면 현대인의 관계는 더 이상 우연한 만남으로만 형성되지 않는다. 이제는 관계 맺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즉, 요즘의 관계 맺기란 노력에 의해 ‘목적별’로 형성된 수많은 인간관계에 각종 색인을 뗐다 붙였다 하며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관계 관리’에 더 가깝다는 뜻이다. 이를 인덱스 관계라 한다.
인덱스 관계 만들기의 첫 번째 유형은 ‘목적관계’다. 목적관계는 ‘OO를 하겠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상태에서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최근 동아리는 3.0 시대에 진입했다. ‘동아리’에서 ‘학회’로, ‘학회’에서 ‘창업’으로 점차 목적이 분명한 모임으로 관심사가 옮겨가고 있다. 과거 대학생들이 동아리 활동에 참여했던 이유는 다른 전공 친구들을 만나 서로 우정도 쌓고 취미활동도 즐기는 일종의 ‘친목’이었다. 이후 취업이 어려워지고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점차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 수는 줄고, 대신 취업 때 스펙(spec)이 되는 ‘학회’ 활동이 부상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서는 스타트업 회사를 세우는 ‘창업’처럼, 목적이 뚜렷한 활동에 학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가운데 인간관계가 확장되는 셈이다.
목적관계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영역은 ‘연애시장’이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 첫눈에 반했다"는 이야기는 부모님이 연애하던 시절에나 통하던 방식이다. 코로나19 이후 상당수의 대면 관계가 비대면 관계로 대체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덕분에 요즘 세대는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만나는 ‘자만추’ 대신 ‘인만추(인위적인 만남 추구)’를 낯설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연애를 하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는 사람끼리 만남을 추진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취미활동 영역에서도 ‘목적관계’가 적용된다. 동네 지인들을 불러 모아 조기축구회를 즐기던 부모님 세대와 달리, 요즘 젊은 세대는 등산·스노쿨링·전시·공연 등 관심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모임이 만들어진다. 프립(Frip)은 호스트(주최자)가 색다른 주제로 모임을 만들면 게스트(참가자)가 참여비를 내고 해당 활동에 참여하는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이다. ‘코딩배우기’ 같은 학습활동에서부터 ‘음악 들으며 등산하기’ ‘한양도성 산책하기’와 같은 취미활동까지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든다. 목적이 관계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인덱스 관계를 만드는 두 번째 유형은 ‘랜덤 관계’다. 랜덤 관계란 나와 교집합을 찾기 어려운 낯선 타인과의 우연한 만남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관계를 확장하는 방식이다. 랜덤 관계는 그 순간을 즐기는 데 초점이 있다. 따라서 타인과 인연을 오래 이어가기보다는 재미든, 정보든 순간 필요한 것만 얻고 금방 휘발해버리는 특징이 있다.
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랜덤채팅 ‘오메글(Omegle)’이 대표적인 사례다. 오메글은 2009년 미국에서 출시한 온라인 랜덤 화상채팅 플랫폼이다. 잊혀가던 이 플랫폼이 부활한 계기는 다름 아닌 ‘공통관심사를 찾아주는 기능’ 때문이다. 오메글에 접속해 관심 키워드를 입력한 후 채팅 버튼을 누르면 동일한 단어를 관심사로 설정한 다른 익명의 사람과 채팅이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오픈채팅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카카오톡이 대표적이다. 카카오는 ‘지인중심’ 소통 창구에서 ‘익명의 타인’과 소통하는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기능을 확장하는 추세다. ‘친구 추가’ 절차 없이 서로 모르지만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끼리 카톡방을 만들 수 있는 기능을 ‘오픈채팅’이라고 하는데, 카카오 발표에 따르면 2022년 오픈채팅 사용자 수는 2019년 대비 약 76% 증가해 전체 대화량의 약 40%를 차지한다. 카카오에서는 오픈채팅의 인기를 ‘다른 사람과 필요 이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요즘 세대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한다. Z세대들이 즐긴다는 ‘유튜브 반모방’도 인기다. ‘유튜브 반모방’은 유튜브 댓글창에서 서로 반말로 대화하는 채널이다. 특별한 주제도 없다. 아무 영상이나 띄워 놓고 댓글로 아무 이야기나 나눌 수 있다. 초대는 링크로만 이뤄지고 대화가 끝나면 그 방은 ‘폭파’된다.
인덱스 관계는 관계맺기 방식이 ‘나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현대인의 삶은 내가 우선이며 인간관계의 사소한 부분에 목매지 않는다. 예전에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관계라도 참고 견디며 잘 유지하는 편이 미덕이었지만, 요즘엔 그런 관계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인간관계’가 새로운 변화의 국면을 맞고 있다. 핵심은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는 인간관계가 무엇인가이다. 다양한 인간관계를 유연하게 맺고, 관리해나가는 인덱스 관계의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기회로 연결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한 때이다.
최지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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