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니코틴 남편 살해' 사건 파기환송… "증명 부족·살인 동기도 의심"

최석진 2023. 7. 2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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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남편의 재산과 사망보험금 등을 노리고 니코틴 원액이 섞인 음식과 물을 먹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아내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2심 판결을 27일 파기환송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아내가 티코틴을 먹여 남편을 살해했다는 점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고, 아내의 살인 동기도 의심이 간다는 이유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이날 살인 및 컴퓨터등사용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2심 무죄 부분에 대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 반면, A씨의 상고를 받아들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재판부는 "살인의 공소사실 중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니코틴 원액을 탄 찬물을 건네주고 이를 마시도록 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유죄 부분에 대해 제시된 간접증거들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증거로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유죄로 확신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의문점들이 남아 있으며 그에 대해 추가적으로 심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이는 이상 원심의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하급심과 달리 사망한 남편의 부검결과나 감정의견 등은 피해자의 사인이 급성 니코틴 중독이라는 점과 남편이 응급진료센터를 다녀온 후 과량의 니코틴이 입으로 투여됐음을 추정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증거방법으로서 의미가 있을 뿐, 'A씨가 찬물에 니코틴 원액을 타서 남편으로 하여금 마시게 했다'는 공소사실이 증명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 살인 동기에 대해서도 내연관계 유지나 경제적 목적이 충분한 살인 동기가 됐다고 볼 정도인지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봤다.

A씨는 2021년 5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남편 B씨에게 니코틴 원액이 섞인 미숫가루 음료와 흰죽, 물 등을 먹여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남편이 사망한 뒤 내연남과 함께 살 집의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남편 명의의 휴대전화를 이용, 300만원을 대출받은 혐의도 있다.

A씨는 2008년 수원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던 B씨를 만나 2010년 5월 결혼했고, 2014년 아들을 출산했다. 2015년부터 화성에서 남편, 아들과 함께 살았던 A씨는 2018년 봉사단체 모임에서 만난 C씨와 교제하기 시작해 사건 당시까지 내연 관계를 유지했다.

A씨는 2020년 무렵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C씨가 숙식을 하며 지내도록 했고, 함께 3번이나 일본에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사건이 불거진 뒤 A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한 결과 2019년 5월 9일부터 2021년 8월 2일까지 하루 평균 194건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살해되기 두 달 전인 2021년 3월 14일경 아내와 C씨의 내연 관계를 알고 아내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자살소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A씨는 내연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다.

검찰에 따르면 평소 전자담배를 피웠던 A씨는 2020년 8월부터 2021년 5월 사이 한 담배제품 판매점에서 5번에 걸쳐 40만7000원을 결제했다. 수사 과정에서 가게 주인은 A씨가 처음에는 플라스틱 용기에 든 액상 니코틴을 구입했다가 나중에는 상자에 든 AP 니코틴 제품을 주로 구입했다고 진술했다. 또 A씨의 요청으로 불법이지만 니코틴 원액을 5방울 정도 추가로 첨가해줬다고도 했다.

전자담배에 사용되는 니코틴 용액은 니코틴 원액을 희석시켜 만드는데, 니코틴 원액은 매우 강력한 독성물질이다. 시중에 유통 중인 액상 니코틴의 경우 니코틴 함량이 2%(20mg/ml)이하이며, 궐련 담배의 니코틴 함량은 통상 1.6~2%(16~20mg/ml) 정도 수준이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불법 경로로 유통되는 니코틴 원액은 순도 99% 이상으로 990mg/ml의 니코틴을 함유하고 있다.

A씨는 2021년 5월 26일 아침 출근하려는 B씨에게 미숫가루에 꿀과 우유를 섞은 음료와 햄버거를 먹였다. 출근한 B씨가 전화해 복통을 호소하자 미숫가루에 탄 꿀이 상하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꿀의 유통기한이 2016년도까지였다. 미안하다'는 식으로 예기해 상한 꿀 때문에 배탈이 난 것처럼 A씨를 안심시켰다.

검찰은 A씨가 미숫가루 음료에 니코틴 원액을 타서 먹였는데도 B씨가 속쓰림 증세만 보이고 사망하지 않자, 같은 날 저녁 속이 좋지 않아 식사를 거부한 B씨에게 흰죽을 만들어 주면서 니코틴 원액을 넣어 먹게 했고, 그래도 B씨가 사망하지 않자 다음날인 2021년 5월 27일 새벽 1시30분부터 2시 사이 다량의 니코틴 원액을 탄 찬물을 마시도록 해 살해했다고 판단해 기소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B씨의 사망 원인을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감정했는데, 부검 결과 B씨의 위 속 내용물에서 많은 양의 니코틴이 검출됐고, B씨의 혈중 니코틴 함량이 치사농도로 확인됐다. 국과수는 B씨의 사망시각이 2021년 5월 27일 새벽 2시30분에서 3시30분 사이로 추정된다는 감정의견을 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판단해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A씨가 C씨와의 내연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자살소동까지 벌인 남편 B씨가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보이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던 점에 비춰 B씨의 재산, 사망보험금 등 경제적 목적이 충분한 범행동기로 인정되며, 아들 출산 이후 담배를 끊었던 B씨의 몸에서 다량의 니코틴 성분이 발견된 원인은 니코틴이 입으로 투입됐을 가능성 외에 다른 원인을 찾기 힘들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A씨는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하며 B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3회에 걸쳐 건네 준 음식에 니코틴이 들어있었고, 피해자는 피고인이 마지막으로 건네 준 찬물에 든 니코틴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양형과 관련해서는 ▲A씨가 배우자가 있음에도 다른 남자와의 내연 관계를 유지하면서 남편의 사망으로 인한 사망보험금 등을 취득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니코틴 원액이 담긴 음식을 먹여 살해한 뒤 사망한 남편의 명의로 대출을 받아 대출금을 편취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대단히 불량하고 비난가능성이 높다는 점 ▲사망한 남편은 A씨의 대출금 채무를 대신 갚아주거나 추가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성실하게 생활했는데 A씨의 계획적인 범행으로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생을 마감하게 된 점 ▲한때 가족이었던 A씨의 손에 아들을 잃은 B씨의 아버지는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범행으로 아버지를 잃게 된 어린 아들이 향후 성장 과정에서 마주할 충격과 고통 역시 쉽게 짐작조차 되지 않는 점 등을 지적하며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에 대해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된 상태에서 진심으로 참회하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함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2심은 1심이 유죄로 인정한 공소사실 중 니코틴 원액이 든 미숫가루 음료와 흰죽을 먹게 한 부분은 무죄로 보고 1심 판결을 파기했지만, 찬물에 니코틴 원액을 타서 먹여 살해한 혐의는 1심 유죄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며 1심과 같은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양형과 관련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지적한 위 양형 사유들을 그대로 언급하며 "그럼에도 피고인은 당심에 이르기까지 살인범행을 부인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에 대해서는 중형을 선고함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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