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잠입한 '조폭', 공부과정이 엄청났다

양형석 2023. 7. 2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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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경찰이 된 조직폭력배 이야기 <미스터 소크라테스>

[양형석 기자]

2022년 3월 <사랑의 불시착>에 함께 출연했던 손예진과 결혼한 배우 현빈은 2020년대 들어 영화 <공조2>와 <교섭> 출연을 제외하면 활동이 비교적 뜸한 편이다. 오는 8월 2일 신작 <비공식작전> 개봉을 앞두고 있는 하정우도 2020년대에 선보인 작품은 영화 <클로젯>과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뿐이다. 사실 현빈이나 하정우처럼 더 이상 이름을 알리는 것이 무의미한 스타배우들은 다작을 하기 보다는 신중하게 작품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

영화 <해바라기>와 <프리즌>, 드라마 <펀치> <닥터스>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김래원도 마찬가지. 김래원은 2020년대 들어 드라마 <루카: 더 비기닝>과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영화 <데시벨> 정도 밖에 출연하지 않았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세 편의 영화와 5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대중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킨 1981년생 동갑내기 배우 박해수와 비교하면 확실히 김래원의 최근 활동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김래원도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1년에 2~3편의 작품을 선보였던 '다작배우' 중 한 명이었다. 이 기간 동안 공개된 작품 중에는 현재까지 김래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 <해바라기>와 드라마 <눈사람> <옥탑방 고양이> 등도 있었다. 그리고 2005년에는 다작을 하던 김래원이 드라마 출연 없이 유일하게 영화 한 편만을 선보였는데 바로 경찰이 되는 조직폭력배의 이야기였던 범죄액션영화 <미스터 소크라테스>였다.
 
 <해바라기>보다 1년 먼저 개봉한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김래원의 첫 번째 '단독주연' 영화다.
ⓒ (주)롯데엔터테인먼트
 
목적달성을 위해 형사가 되는 주인공들

사실 경찰들의 이야기만큼 영화에서 다루기 좋은 소재도 드물다. 경찰들은 범죄자들을 상대하는 게 직업이기 때문에 액션과 코미디, 누아르, 버디무비 등 대중들이 좋아하는 여러 장르로 풀어내기 용이하다. 형사가 수사를 위해 학생(<도학위룡> <잠복근무>)이나 치킨집 사장(<극한직업>) 등 다른 직업으로 변신하는 영화들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개인 또는 조직의 목적을 위해 형사로 잠입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도 적지 않게 만들어지고 있다.

경찰에 잠입한 조직폭력배의 이야기를 다룬 대표적인 영화는 역시 '홍콩 누아르의 부활'을 알렸다고 평가 받은 영화 <무간도>다. 조직의 명령을 받고 경찰학교에 들어간 삼합회 조직원 유건명(유덕화 분)과 상부의 명령을 받고 삼합회의 스파이로 잠입한 경찰 진영인(양조위 분)은 서로에게서 알 수 없는 공통점과 동질감을 발견한다. 아시아 관객들을 중심으로 큰 사랑을 받은 <무간도>는 3편까지 제작됐지만 2, 3편은 1편만큼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지난 2021년 공개돼 1억 9400만 시간의 누적시청시간을 기록한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 네임>에서도 주인공 지우(한소희 분)가 아버지를 죽인 범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오혜진이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위장해 경찰이 된다. <부부의 세계>에서 매혹적인 불룬녀 여다경을 연기했던 한소희는 <마이 네임>을 위해 몸무게를 10kg이나 증량하고 고난도의 액션연기들을 직접 소화하며 시청자들의 극찬을 받았다. 

배우들의 열연 속에 '한국형 누아르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신세계>는 폭력조직원이 경찰이 되는 이야기가 아닌 경찰인 이자성(이정재 분)이 폭력조직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경찰의 본분과 조직에서 친형제처럼 가까워진 정청(황정민 분)과의 의리 사이에서 고민하던 이자성은 정청의 죽음 후 이중구(박성웅 분)와 장수기(최일화 분) 등 남은 연적들을 차례로 제거하고 골드문의 회장자리에 앉게 된다. 

<무간도>와 <마이 네임> <신세계>가 무거운 분위기를 앞세운 누아르 장르의 영화였다면 1999년에 개봉한 <경찰서를 털어라>는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다. <경찰서를 털어라>는 경찰서가 되는 신축건물에 숨겨둔 보석을 되찾기 위해 경찰로 잠입하는 절도범 마일즈(마틴 로렌스 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마일스는 가짜경찰임에도 오랜 도둑 경험을 바탕으로 범죄자들의 심리를 완벽히 파악하며 경찰로서 높은 실적을 쌓는다. 

아무리 영화지만 너무 쉽게 경찰이 되는 주인공
 
 폭력조직의 말단 조직원이었던 김래원(왼쪽)은 경찰이 된 후 '개과천선'해 문제아 동생까지 경찰로 만들었다.
ⓒ (주)롯데엔터테인먼트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조직폭력배나 깡패라기 보다는 양아치, 망나니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폭력조직의 말단 조직원 구동혁(김래원 분)이 조직에게 낙점돼 경찰로 잠입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경찰에 잠입한 조직폭력배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무간도>를 연상케 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무간도>나 <신세계> 같은 누아르 영화들에 비해 훨씬 가볍고 경쾌한 흐름으로 진행된다. 

김래원은 2000년대 초·중반 로맨틱 코미디 < …ing >와 <어린 신부>, 액션 장르인 <미스터 소크라테스>와 <해바라기>에 잇따라 출연했다.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액션 장면이 많은 <해바라기>와 비교됐는데 흥행에서는 <미스터 소크라테스>가 126만으로 154만의 <해바라기>와 큰 차이가 없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오늘날 김래원의 대표작이 된 <해바라기>에 비해 <미스터 소크라테스>를 기억하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다.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주인공 구동혁부터 장태춘 조직의 폭력배들, 신태섭 반장(이종혁 분)을 중심으로 한 서울지방경찰청의 형사들, 그리고 조·단역으로 출연하는 캐릭터들까지 모두 남자배우 일색이다. 실제로 지나가는 행인을 제외하고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캐릭터는 탈주범 백창규(박철민 분)의 내연녀로 보이는 여성과 인질극 당시 백창규의 인질로 잡혀 있는 단역 여성까지 단 두 명 정도 밖에 없다(그나마 인질 역의 배우는 대사도 없다).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는 구동표가 공부를 시작해 검정고시에 합격하기까지의 과정은 꽤 자세히 보여주지만 구동표가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과정은 점프컷을 통해 짧게 보여주고 지나간다. 하지만 실제로 경찰공무원이 되는 과정은 훨씬 어렵다. 물론 2000년대 중반과 현재는 경쟁률이 달랐겠지만 올해 제2차 경찰공무원 공채의 경쟁률은 무려 남자 15:1, 여자 29:1이었다(경찰청 통계 기준).

<미스터 소크리테스>를 연출한 최진원 감독은 1993년 드라마 작가로 데뷔해 1998년 안재욱, 김희선 주연의 의학드라마 <해바라기>를 공동 집필했다. 2002년 코미디영화 <패밀리>를 통해 충무로에 데뷔한 최진원 감독은 <미스터 소크라테스> 이후 3번째 영화 <대한이, 민국씨>가 21만 관객에 그치며 영화감독으로서의 커리어를 짧게 마감했다. 작가로 돌아온 최진원 감독은 2020년과 작년 손현주 주연의 jtbc드라마 <모범형사> 시리즈의 각본을 썼다.

선도부장에서 정의로운 강력반 반장으로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악역인 선도부장을 연기한 이종혁(오른쪽)은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 정의로운 형사반장으로 변신했다.
ⓒ (주)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공공의 적> 시리즈와 <실미도>, 드라마 < 추적자 THE CHASER > <나쁜 녀석들> <태양의 후예> 등에서 안정된 연기를 선보였던 강신일은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 해병대 부사관 출신의 조폭 범표를 연기했다. 구동혁이 공부를 할 때 담임 선생님 역할을 했던 인물로 자신보다 어린 상대에게도 어지간하면 존댓말을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영화 속에서 구동표가 진심으로 선생님으로 느끼고 존경심을 표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선도부장 역할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이종혁은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 서울지방경찰청의 정의로운 강력반장 역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탈주범을 잡아 강력반으로 오게 된 구동혁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지만 구동혁이 능력을 보여주자 나중엔 구동혁과 파트너처럼 함께 다닌다. 마지막에는 (방탄복을 입은) 자신에게 총을 쏜 구동혁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진술서 쓰는 요령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드라마 <왕초>의 맨발 역으로 주목 받은 윤태영은 2000년대 중반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악역변신에 도전했는데 그중 한 편이 바로 <미스터 소크라테스>의 조대수였다(나머지 한 편은 <강력3반>의 서태두). 조대수는 구동혁 이전에 장태춘 조직에서 키워낸 조직의 2인자이자 장태춘(정욱 분)의 전속 변호사다. 하지만 영화 후반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조수석에 탔다가 구동혁이 고의로 중앙선 가드레일을 들이박는 사고를 내면서 차 밖으로 튕겨 나간다.

2006년 김래원이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영화 <해바라기>에서 오태식의 관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부패경찰을 연기했던 박성웅은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도 범표 밑에 있는 김한두 역을 맡았다. 구동혁이 폐교에서 공부할 때 학생주임 역할을 하면서 구동혁에게 각종 구타와 가혹행위를 자행했다. <신세계>의 이중구 같은 카리스마 있는 건달연기를 기대하고 <미스터 소크라테스>를 본다면 찌질한 박성웅의 캐릭터에 크게 실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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