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김범 '바위가 되는법'

김희윤 2023. 7. 2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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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김범 개인전 '바위가 되는법'
회화·설치 등 70여점 전시
일상을 '다르게 보기' 제안
상상력 통해 현실 전복하는 작품세계

바다가 없다고 교육받는 배, 자신이 새라고 교육받는 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사물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은 고정관념을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작가 김범(60)은 그런 의미에서 개념 미술 작가로, 또 젊은 작가들의 우상으로 떠올랐지만, 과작(寡作) 행보에 대중이 그를 만날 기회는 극히 드물었다. 리움미술관은 그런 그의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의 작품활동을 망라한 최대 규모 전시 ‘바위가 되는 법’을 27일 개막해 12월 3일까지 진행한다.

벽을 뚫고 나온 개를 표현한 ‘두려움 없는 두려움’ [사진제공 = 리움미술관]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7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2010년 아트선재센터 전시 이후 13년 만의 개인전이다. 보이는 것과 실체 간의 간극을 통해 '새롭게 보기'를 제안하는 작가의 작품세계는 "당신이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농담처럼 관객에게 이미지를 통해 질문을 건네는 작가는 ‘철망 통닭 #1’(1993)을 통해 찢어진 캔버스 중앙에 펼쳐진 닭 튀기는 철망 모양에서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통닭을 형상화한 작품은 이내 ‘기도하는 통닭’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서사로 이어진다.

‘두려움 없는 두려움’(1991)과 ‘하나의 가정’(1995)은 마치 벽을 뚫고 나온 사나운 개, 그리고 어느 난폭한 주인의 집에 초대받은 상황을 연상시키는 연출로 관객의 인지 작용과 더불어 상상과 현실이 중첩된 중간 지대를 펼치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캔버스에 미로 퍼즐을 그린 ‘친숙한 고통’ 연작은 미로 이미지를 통해 일상 속 크고 작은 난관을 은유하는 한편, 실제로 관객 앞에 등장한 일종의 문제가 되어 그것을 해결하려는 본능을 자극한다.

생명이 없는 사물을 마치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물활론(物活論)적 사고방식은 김범의 작품세계에 중요한 테마로 전시 후반부를 관통한다.

임신한 망치, 1995, 목재, ?, 5 × 27 × 7cm. [사진제공 = 리움미술관]

망치라는 공구가 지닌 생산적 기능성을 동물적 생명력과 연결한 '임신한 망치'(1995)는 허를 찌르는 해학을 선사한다. 돌에게 정지용의 시를 낭송해주는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2010), 모형 배에게 지구가 육지로만 되어있다고 가르치는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2010) 등의 ‘교육된 사물들’ 연작은 교육과정의 맹점과 교육된 현실의 ‘부조리’를 작가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주며 우리는 어떻게 교육되고 있는지, 교육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뒤돌아보게 한다.

‘무제(제조 #1 내부/외부)’는 가면을 벗고 해부된 사자 인형을 전시한 것처럼 연출된 작품이다. 내면, 그리고 실체의 간격을 표현한 작품으로 다소 조악하고 허술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정교한 설계도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작가는 이러한 모순과 해학을 통해 흥미로운 상상으로 그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관습과 체제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 2010, [사진제공 = 리움미술관]

‘보고 읽는’ 상상화인 ‘청사진과 조감도’ 연작은 언뜻 보면 학교나 등대와 같이 일반적인 구조를 제시하지만, 자세히 보면 비관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2016년부터 진행한 ‘폭군을 위한 인테리어 소품’ 프로젝트는 불의한 권력자를 위한 인테리어 및 생활 소품을 제작, 판매하고 수익금을 기부하는 실제적인 순환을 만들어낸다.

다양한 매체와 주제를 가로지르는 김범의 작품세계는 예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반성한다.

노란 비명 그리기'(2012)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 중 하나다. 힘껏 소리를 지르며 한 획씩 추상화 그리는 법을 가르치는 튜토리얼 영상을 보며 관객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해학적인 상황을 마주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이상과 관념을 포착하는 불가능한 과업에 기꺼이 매진하는 예술가의 애환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청사진과 조감도 연작, 2009. [사진제공 = 리움미술관]

전시의 제목 '바위가 되는 법'은 김범의 아티스트 북 '변신술'(1997)에 수록된 글의 제목이다. 이 책은 생존을 위한 자기 변화와 가변적인 인간의 모습을 주제 삼아 독자에게 다양한 생물이나 사물이 되는 법을 지시하고 있다. 그 중 ‘바위가 되는 법’은 가공된 정보와 시청각 자극으로 포화한 일상 속 현대인에게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13년간 국내에서 그의 작업을 볼 기회가 없었기에 이번 전시는 좋은 만남이 될 것" 이라며 "김범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작가고, 미술이라는 허구의 세계를 어떤 형식으로 가져올지를 가장 많이 고민하고 가장 적게 보여주는 작가다"라고 설명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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