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세계 170개국서 식량 수입하는 이유[위기의 식량안보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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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인의 ‘식탁’이 위협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이상기후의 만연, 에너지 가격과 비료값 등 연일 치솟는 물가, 미·중 전략경쟁으로 인한 공급망 분절 등 중증 복합 위기에 빠졌다. 100%가 넘는 식량자급률을 자랑하던 유럽 주요국들조차 폭등하는 빵값에 살충제 사용을 줄이는 친환경 정책을 보류할 정도로 상황은 급박해졌다. 중국은 녹지를 경작지로 갈아엎기 시작했고, 일본은 주식 반열에 든 밀 생산을 서둘러 늘리겠다는 태세다. 한국인의 ‘밥상’에도 위기는 닥쳤다.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한 지구촌의 총성 없는 식량 전쟁 현장을 들여다봤다.
」
한국보다 열악한 사정에도 식량안보 강화에 성공한 나라도 많다. 사막에 위치한 걸프 지역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은 전체 면적의 2%만 경작하고 식량의 85%를 수입한다. 아라비아 반도에서도 가장 건조한 지역이라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부족해 대규모 농업에 적합하지 않은 조건이다. 미국 CNN 방송은 “걸프 국가들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식량안보를 확보할 전략을 세우고 수십 년간 자원을 투입했다”며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생 이후 벌어진 국제적인 식량위기를 잘 견디고 있다”고 평가했다.
금융위기에 놀란 UAE, 식량안보 전담 부처 설치
걸프 국가들은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수입 물가가 치솟고 일부 식량 수출국이 자국 식량 확보를 위해 수출을 금지해 위기를 겪었다. 이후 이들 국가들은 에너지 효율성을 높인 담수화 시설, 물을 절약하는 농법, 수경 재배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식량 자급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다.
UAE는 2018년 발표한 국가식량안보전략에 따라 식량안보를 전담하는 정부 부처를 두고 있으며 염분 저항성을 높인 '슈퍼푸드'를 사막에서 재배했다. 하루 400t의 우유와 요구르트를 사우디 국경을 통해 들여왔던 카타르도 지난 2017년 사우디가 주도한 단교 사태로 주변국으로부터 수입을 봉쇄당하자 우유를 자체 생산하려고 사막에 낙농업을 육성하고 있다. 지난해 GFSI 순위가 41위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단·케냐·에티오피아 등지에 농지를 구매해 해외 경작지를 늘리는 방법으로 안정적인 식량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싱가포르, 170개국서 식량 공수
도시국가 싱가포르도 식량위기에 잘 대비하는 사례로 꼽힌다. 경작지가 전체 국토의 1% 불과하고 소비하는 식량의 90%를 수입에 의존한 상황에서도 지난해 GFSI 28위 올랐다.
식량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싱가포르 식품청(SFA)은 3가지 대책을 실행했다. 먼저 수입처의 다양화다. SFA는 싱가포르의 식량 수입처를 170개국으로 늘렸다. 식량 수입 의존국으로서 단일 공급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대체 공급원을 마련해 식량 수급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면서도 2030년까지 국내 식량 생산 비중을 30%까지 높인다는 ‘30 by 30’ 정책을 세웠다. 이를 위해 건물의 공간을 농지로 활용하는 도시농업 등에 집중 투자 중이다. 또한 국내 재배를 할 수 없는 농작물은 해외 경작지에서 직접 재배해 확보하려 노력하고 있다.
걸프만 국가나 싱가포르의 정책을 경제 규모와 환경이 다른 우리나라에 곧바로 접목하긴 어렵다. UAE와 싱가포르는 자국의 뛰어난 구매력을 식량안보에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곡물 수입과 관련 규제를 거의 하지 않는데, 국내 농가 보호를 위한 정책과 규제 필요성이 존재하는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식량수입 대안으로 이들 국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식량 안보는 국내 생산만으론 한계가 있어 해외 조달 능력이 함께 이뤄져야 안정될 수 있다”며 “UAE와 싱가포르 사례 등을 살펴 식량 수입 방안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상진·임주리·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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