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초임교사, 학부모 갑질 1순위"…약자가 더 당했다
서울 서이초에서 교사가 사망한 사건 이후 교권 침해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는 가운데, 현장에서는 사립학교 교사나 기간제 교사가 학부모 악성 민원에 더욱 취약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교육청은 26일 한 사립초등학교의 기간제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6개월 전 발생한 이 사건이 뒤늦게 알려진 것은 지난 24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교권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는 중이었다.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한 남성이 갑자기 “저희 딸도 6개월 전 그렇게 됐다. 같이 조사해달라”며 “서이초에는 조화가 놓이는데, 저희 딸은 꽃송이 하나 못 받고 죽었다”고 했다. 사립초에서 학교폭력 사건을 처리하던 교사가 학부모에게 폭언에 시달렸다는 주장이다. 조 교육감은 “상대적으로 사립에서 교원 권리나 인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은 기간제 교사가 근무한 것으로 알려진 지역의 교육지원청에 근조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사립학교 교사들은 “남 일 같지 않다”는 반응이다. 4~5년마다 근무지를 옮기는 공립 교사와 달리, 한 학교에서 오래 근무하는 사립 학교 교사들은 교권 침해를 당해도 이를 문제 삼기 어렵다. 교사들이 너도나도 피해 경험을 폭로하고 있지만 사립 교사는 ‘속앓이’밖에 할 수 없는 이유다.
“사립, 기간제는 학부모 갑질 1순위”
특히 교육청의 지도·관리를 받지 않는 사립초등학교는 피해 사례가 더욱 알려지지 않는다. 초등교사 커뮤니티에서 사립초에 근무한다고 밝힌 한 교사는 “사립초는 교장, 교감까지 학부모한테 ‘찍소리’도 못한다. 사립초에서 기간제, 초임, 여자는 학부모 갑질 1순위”라고 했다.
또 다른 교사는 “사립초에선 기간제(교사)한테 업무 몰아주기가 공공연하다. 어떤 학교에선 한 학년에서 학교폭력을 일으키는 등 문제 학생을 모두 기간제 교사의 반에 밀어 넣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교사는 “7개 학급 중 5개 학급을 기간제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다”며 “학급에서 문제가 생기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기간제 교사가 모든 책임을 지는 셈”이라고 했다.
사립학교 교사들은 교원단체나 노조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구조라고 주장한다.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 관계자는 “사립학교는 기간제 교사가 많고, 노조 가입률도 상대적으로 저조하다”고 말했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사립학교는 학생 모집에 어려움이 있고, 교사들도 공립보다 신분이 불안정해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사립 중학교 교사는 “최근 교사들이 카카오톡에 올리는 추모 프로필 사진조차 사립에서는 꿈도 못 꾼다”며 “폐쇄적인 사립의 특성을 고려해 교육지원청이 먼저 교사들의 신고를 받고 상담을 지원하는 등 보호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수·유아교육 사각지대…“아이 진술만으로 아동학대범 됐다”
익명을 요청한 한 공립 유치원 교사는 “유치원에선 아이의 진술만으로 아동학대범이 된다”며 “손을 들고 있었을 뿐인데, 아이가 때리려 했다는 진술을 해서 6개월째 수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공립유치원교사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아동학대법에 보호자의 의무와 교육적 조치에 대한 교권 보호 방안을 마련해달라”며 “법 제정에 있어 초·중등뿐 아니라 유아교육도 소외되지 않고 함께 보호하라”고 했다.
장애 학생 등 특수 학생을 상대하는 특수학급·특수학교도 교권 사각지대로 꼽힌다. 특수교사들은 학생한테 머리채 잡히고 폭행을 당해도 중재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말한다. 장은미 전국특수교사노조 위원장은 “특수교육 활동은 아이들과 팔짱을 끼고 이동하는 등 신체적 접촉이 많은데, 현행 아동학대법에서는 교사가 늘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사노조에 따르면 특수학교에서는 학생의 돌발 행동으로 교사가 피해를 입어도 제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특수교사는 수업 중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달려들어 때리려는 것을 막으려고 학생의 팔을 붙잡았다가 맞아 온몸에 멍이 들었는데, 학부모로부터 “아이의 팔에 멍이 들었다”며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사과해야 했다.
장 위원장은 “아이들이 돌발 행동을 했을 때 방어하는 것에도 많은 고민이 따른다. 다른 학생이 피해를 막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맞는 게 낫다는 교사가 태반이다”고 말했다. 이어 장 위원장은 “그동안 특수학생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이 생길까 봐 교사들이 나서지 못했지만 참는 것만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적어도 교사의 교육 활동이 아동학대 범위에서 제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호 “늦은 조치 안타깝고 죄송스럽다”
이날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서울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초등교사들과 만나 현장의 어려움을 들었다. 이 부총리는 “희생 이후 너무 늦은 조치를 하게 돼서 정말 안타깝고 죄송스럽다”며 “8월 말까지 교사의 학생 지도 범위 등을 명시한 고시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장윤서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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