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세상' 눈앞에 펼쳐졌다…2년반만에 돌아온 용눈이오름
눈앞에 거대한 초록 세상이 펼쳐졌다. 곶자왈 깊은 숲속에서나 보던 검푸른 색이었다. 어른 키보다 큰 억새 숲 사이로 구불구불 탐방로가 나 있었다. 제초 작업을 막 마쳤는지 길에서 풀 냄새가 확 끼쳤다. 뚜벅뚜벅 20여 분을 오르니 능선에 다다랐다. 능선은 바람이 모질었다. 두서없이 사방에서 몰아치는 제주 중산간 바람. 마침 제주 산간지역에 강풍 경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한참을 초록 능선 위에 서서 바람을 맞았다. 그래, 이 바람이었다. 2년 6개월 만에 다시 맞은 용눈이오름의 바람. 반가웠고 고마웠다. 지난 14일 용눈이오름에 올랐다. 2년 6개월 동안의 자연휴식년제가 해제됐다는 소식을 듣고서 작정한 용눈이오름 트레킹이었다.
문을 닫다
용눈이오름은 최소 세 번 이상의 분화 활동 끝에 탄생했다. 하여 여느 오름과 달리 다양하고 복잡한 곡선을 지닌 언덕의 모습으로 누워 있을 수 있었다. 이 매혹적인 곡선에 홀려 18년간 오름을 촬영하다 간 사람이 사진작가 고(故) 김영갑(1957∼2005)이다.
높고 험하지 않아서 용눈이오름은 인기가 많았다. 바로 옆의 다랑쉬오름은 잘생긴 오름이지만 가파른 계단을 40분이나 올라야 한다. 용눈이오름은 어린아이도 쉽게 오를 수 있었다. 하여 탐방객으로 늘 붐볐다. 제주도청은 어름 어귀에 주차장을 들이고 매점과 화장실도 설치했었다.
너무 잦은 발길이 끝내 화를 불렀다. 용눈이오름은 하루가 다르게 망가졌다. 탐방로가 있었지만, 탐방객은 탐방로를 무시하고 아무 데나 길을 냈다.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에 나왔고, 단체관광객이 긴 줄을 그리며 올라갔다. 풀이 죽고 흙이 파이고 쓰레기가 쌓였다. 제주도는 끝내 용눈이오름을 닫았다. 2021년 2월부터 2년간 자연휴식년제를 실시했다.
다시 문을 열다
일부 사유지는 출입을 막았다. 이제 굼부리(분화구) 따라 능선을 한 바퀴 도는 용눈이오름 트레킹은 불가능하게 됐다. 그래도 정상까지는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오르니 예의 탁 트인 전망이 펼쳐졌다. 눈앞에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이 나란히 서 있었고, 왼편으로 손자봉과 동거문이오름, 백약이오름이 차례로 드러났다. 주차장에서 정상을 올랐다가 내려오는데 1시간 정도 걸렸다.
가장 달라진 건 색깔이었다. 다시 풀이 돋아나 용눈이오름은 전체가 짙은 초록색이었다. 패이고 파였던 흙길이 얼추 메워졌고, 오름 비탈의 나무도 제법 키가 커졌다. 오름 주변 산담(무덤)도 많이 정비됐다. 오름 한쪽 구석에 산담 이장하고 난 뒤 남은 돌을 모아둔 머체(돌무더기)가 눈에 띄었다.
용눈이오름 옆의 제주 4·3 유적지 ‘다랑쉬굴’도 진입로 공사가 끝난 상태였다. 다랑쉬굴은 1948년 주민 11명이 토벌대를 피해 숨어들었다가 발각돼 집단 희생당한 현장이다. 긴 세월 잊혀 있었다가 1991년 발견됐다. 주민들이 숨어 지냈던 다랑쉬굴 내부 모습이 제주 4·3 평화기념관에 복원 전시돼 있다. 이 깊은 중산간 초원에도 4·3의 흔적은 어김없이 남아 있었다.
제주도 환경정책과 양희재 주무관이 오름 탐방 수칙을 꼭 알려주면 좋겠다고 말해 인용한다. 쓰레기 되가져가기, 탐방로로만 걷기, 자연 훼손하지 않기, 사유지와 경작지 침범하지 않기, 단체보다 소규모로 탐방하기. 귀찮고 불편해도 지켜주시기 당부한다. 용눈이오름을 다시 못 오르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일 테니.
제주도=글ㆍ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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