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멤피스’, 블랙페이스 없이도 관객은 이해한다

장지영 2023. 7.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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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흑백분리 유지되던 미국 멤피스 배경
백인 DJ 휴이와 흑인 여가수 펠리샤의 꿈과 사랑 그려
1950년대 흑인 음악을 사랑하는 백인 DJ 휴이와 클럽에서 노래하는 흑인 여가수 펠리샤의 꿈과 사랑을 그린 뮤지컬 ‘멤피스’의 한 장면. ㈜쇼노트

1950~1960년대 미국은 흑인 민권운동으로 뜨거웠다. 남북전쟁으로 노예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인종차별인 흑백분리를 용인해 온 것에 대한 흑인들의 저항이 거셌기 때문이다. 마침내 1964년 흑인 차별을 금지한 민권법에 이어 1965년 흑인 투표권을 보장하는 투표권법 제정으로 흑백 차별법들은 사라지게 됐다.

뮤지컬 ‘멤피스’는 1950년대 흑백분리 정책이 유지되던 테네시주 멤피스를 배경으로 흑인 음악을 사랑하는 백인 DJ 휴이와 클럽에서 노래하는 흑인 여가수 펠리샤의 꿈과 사랑을 그렸다. 조 디피에트로가 대본·작사, 데이비드 브라이언이 작곡·작사를 맡은 이 작품은 당시 흑인 음악으로 여겨지던 로큰롤을 세상에 알린 전설적인 DJ 듀이 필립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을 처음 알린 인물이 바로 필립스다.

2009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멤피스’는 이듬해 토니상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작품상·대본상·음악상·편곡상 등 4개를 받은 수작이다. 지난 20일부터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국내 초연이 이뤄지고 있다. 휴이 역의 박강현 고은성 이창섭, 펠리샤 역의 정선아 유리아 손승연 등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배우들 덕분에 공연 내내 귀가 즐겁다.

뮤지컬 ‘멤피스’에서 백인 DJ 휴이 역의 박강현 고은성 이창섭(위 왼쪽부터)과 흑인 여가수 펠리샤 역의 정선아 유리아 손승연(아래 왼쪽부터). ‘멤피스’의 국내 프로덕션은 흑백 인종과 상관없이 기존의 피부색을 드러낸다. ㈜쇼노트

‘멤피스’의 국내 프로덕션에서 돋보이는 것은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블랙페이스(blackface)’의 배제다. 블랙페이스는 흑인이 아닌 인종이 흑인 흉내를 위해 얼굴을 검게 칠하는 무대 분장을 말한다. 미국에 노예제가 존재하던 19세기 백인 배우가 흑인 분장을 한 채 흑인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던 민스트럴쇼에서 유래한다. 블랙페이스는 흑인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 확산에 기여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이 등장하면서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인종적 다양성이 적거나 흑인 노예제의 역사가 없는 국가에서는 블랙페이스를 인종차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2020년 8월 의정부고의 관짝소년단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당시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가 학생들의 블랙페이스를 비판했다가 집단 공격을 받고 사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리스트와 미투 운동 이후 PC(정치적 올바름) 감수성이 높은 한국 공연계에서는 블랙페이스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2021년 6월 미국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국립극단의 ‘스웨트’는 대표적 사례다. 이 작품에서 인종 문제는 일자리와 함께 양대 주제다. 당시 연출가 안경모는 블랙페이스 대신 극중 인물이 인종에 따른 멸시를 드러내거나 자기모멸을 경험하는 순간 낙인찍듯 피부색을 드러내는 시도를 했다.

블랙페이스를 영리하게 피해간 국립극단의 ‘스웨트’의 한 장면. 국립극단

사실 샘 오취리와 의정부고의 블랙페이스 논란이 나오기까지 한국 공연계에서 흑인 역은 어두운 갈색조로 블랙페이스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60년대 미국 흑백차별 문제를 뚱뚱한 10대 백인 소녀가 TV쇼로 타파한다는 내용의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한국 버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국내에선 2007년, 2009년, 2012년 세 차례 공연에서 흑인 배역 배우들은 짙은 갈색조의 피부색으로 등장했다. 원작에 나온 인종대로 표현함으로써 관객이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지금이라면 인종차별로 여겨지는 블랙페이스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당시에는 그런 인식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뮤지컬 ‘멤피스’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흑백 인종과 상관없이 기존의 피부색을 유지한다. 다만 백인 역 배우의 경우엔 분장이나 머리카락 색깔을 밝게 해서 백인 정체성을 좀 더 드러내고 있다. ‘멤피스’를 연출한 김태형은 “인종적 차이에 대한 시각적 구분보다는 캐릭터들의 특성과 차이에 집중하려 했다”면서 “한국인에게는 인종 문제가 첨예한 갈등으로 느껴지기 어렵기 때문에 캐릭터들의 계급, 당사자성, 음악에 대한 태도 등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신시컴퍼니가 제작한 ‘헤어스프레이’의 한 장면. 신시컴퍼니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방송과 공연 등에서 블랙페이스를 해왔다. 예를 들어 뮤지컬 ‘멤피스’ 일본 버전은 2015년과 2017년 두 차례 공연됐는데, 블랙페이스가 매우 두드러진다. 그러다가 2017년 말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이 웃음을 위해 블랙페이스를 했다가 외국인 시청자의 비판이 쇄도하는가 하면 뉴욕타임스, BBC 등 해외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면서 경각심이 높아졌다. 실례로 제작사 도호는 2019년 ‘헤어스프레이’ 일본 버전 초연(2020)을 앞두고 블랙페이스를 하지 않는다고 발표를 했다. 그리고 ‘헤어스프레이’ 원작자인 작곡가 마크 샤이먼, 대본작가 마크 오도널·토마스 미한, 작사가 스콧 위트먼은 도호를 통해 “전 세계의 모든 커뮤니티가 ‘헤어스프레이’ 대본대로 캐스팅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지만 블랙페이스(설령 악의 없이 조심스럽게 행해지더라도)는 허락할 수 없다. 블랙페이스는 우리 작품이 반대하는 미국 인종에 얽힌 역사의 한 페이지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근 ‘멤피스’ 개막 이후 국내 제작사 쇼노트는 관객 반응을 체크한 결과 블랙페이스를 하지 않은 것에 따른 문제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성훈 쇼노트 대표는 “우리 관객들은 블랙페이스 없이도 서사와 캐릭터 등으로 작품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서 “인종차별에 분노하고 문화적 포용성을 추구하는 성숙한 시민의식 덕분”이라고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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