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초 가게가 스벅처럼 바글바글"…방콕 여행 주의령 떴다
“구석구석에 대마초 가게가 있어요. 스타벅스처럼 바글바글합니다.”
올초 태국 수도 방콕을 방문한 미국 식품 사업가이자 TV진행자인 바네사 도라 라보라토는 지난달 말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태국 정부가 지난해 6월 아시아 최초로 대마를 규제하는 마약류에서 제외하고 판매와 재배를 합법화하면서 생겨난 모습이다.
1년이 지난 현재, 태국 정부의 합법화 조치는 나라 안팎에서 비판을 사고 있다. 특히 관련 규제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채 서둘러 빗장을 풀면서 향락성 소비가 급증하고 청소년의 오남용 사례가 급증해 논란이 되고 있다. 대마를 엄격히 규제하는 다른 아시아국가들은 태국에서 온 관광객 등을 무작위 검사하는 등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경찰과 한국대사관 측은 "본인이 모르고 대마 관련 제품을 섭취·소지하는 경우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관련 업체만 5500곳…대마 함유 상품 성업
26일 '태국의 대마초' 사이트를 확인한 결과 대마 관련 상품을 파는 현지 업체는 약 5500곳에 이르렀다. 대마초 판매점부터 대마가 들어간 차와 과자 등을 파는 카페, 대마 국수 등 대마가 함유된 음식을 파는 식당, 대마 성분이 들어간 물과 치약 등이 있는 편의점과 대형마트 등 일상 곳곳에 대마가 파고든 상황이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태국에선 대마 합법화 이후 1년 동안 100만명 이상이 대마 재배를 신청했다. 당국이 내준 대마 관련 제품을 생산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면허 숫자가 약 110만개에 이른다. 태국 인구(약 6600만명) 중 최대 3% 가량이 대마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관련 시장도 커지고 있다. 태국상공회의소대학교(UTCC)의 연구팀은 태국의 대마 시장 규모가 올해부터 2025년까지 매년 약 15%씩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해 280억 바트(약 1조400억원)에서 3년 후인 2025년엔 430억 바트(약 1조6000억원)로 150억 바트(약 5600억원) 커질 것이란 예상이다.
태국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대마 합법화 카드'를 꺼냈다. 태국은 관광산업의 비중이 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약 20%를 차지할 만큼 높다. 5명 중 1명이 관광업에 종사한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봉쇄되면서 태국을 찾는 외국인이 2019년 3980만명에서 지난 2021년 43만명으로 감소했다. GDP 중 관광산업 비중도 5% 미만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실직자도 늘고 경제도 타격 입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태국 정부는 대마 재배를 장려해 소득을 높이고, 대마 관련 제품 판매로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모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관련 관광 상품도 허용했다. 방콕의 한 5성급 호텔에선 대마를 이용한 마사지와 스파를 받을 수 있고, 한 여행사는 대마 농장, 대마 전문 음식점 등을 방문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내놨다.
지난해 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1115만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2500만명이 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대마 합법화가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 지는 논란이다. 태국을 찾은 50대 호주 관광객은 외신에 "대마초를 목적으로 온 것은 아니지만, 대마가 들어간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경험하는 건 재미있다"고 말했다.
"태국 벗어나는 순간 처벌 대상 "
AP통신은 여름 휴가철인 이달 들어 아시아인들이 대마 관광에 관심을 보인다고 전했다. 방콕 중심가에서 대마초 판매점을 운영하는 한 태국인은 "손님의 70~80%가 외국인이며 주로 일본·중국·말레이시아·필리핀 등의 아시아 국가에서 왔다"고 했다. 한 대마초 판매점은 중국어로 된 안내판을 구비했고, 한국어로 된 간판도 등장했다. AP는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대마 소지와 흡연 시 가혹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면서 "금지된 대마초에 호기심이 있는 아시아인이 오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마를 규제하는 대다수 아시아 국가들은 입국한 자국민 또는 외국인이 태국에서 대마초를 흡연하거나 대마 함유 제품을 섭취한 게 확인되면 형사처벌을 하거나 추방 조치하고 있다. 실제로 국적이 알려지지 않은 한 외국인은 태국에서 중국 상하이로 갔다가 대마초 양성 반응이 나와 중국 당국에 의해 추방됐다. 대마초를 피웠던 태국인 3명이 말레이시아에 입국하려다 검사에서 적발돼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올해부터는 적발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싱가포르 정부는 올해부터 태국에서 귀국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작위 검사를 진행 중이다. 중국 당국도 최근 상하이발 비행기에서 대마초와 대마 음식을 주의하라는 안내를 시작했다.
한국인도 해외에서 대마를 소지하거나 흡입해 국내 입국 때 성분이 검출되면 법에 따라 처벌받게 된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관계자는 “태국에서 호기심으로 대마초를 시도하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대마 함유 식품을 섭취했다고 해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주한태국대사관은 대마를 소지하거나 사용하면 최대 징역 5년, 대마를 밀수하는 경우 최대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대마 인구 6배↑ 어린이 복용 사고도
태국정신과의사협회에 따르면 합법화 이후 대마를 향락용으로 즐기는 사람이 지난 2021년 189만명에서 지난해 1100만명 이상으로 6배 가까이 늘었다. 이 결과 과다 흡입으로 숨지거나 환각에 빠져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이 잇따랐다.
태국 당국은 미성년자와 임산부에 대한 판매를 금지했지만,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마 과자와 음료 등이 출시돼 미성년자들이 대마 성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면서 오남용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에는 어린이 다수가 대마 성분이 과다하게 들어간 쿠키를 먹고 입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태국 정부는 뒤늦게 규제를 강화하는 대마법 개정안을 내놨지만, 지난 5월 총선 이후 총리 선출이 이뤄지지 않는 등 혼란이 장기화하면서 표류하고 있다. 태국 일각에선 대마 합법화 자체를 백지화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미 대마 산업에 뛰어든 태국인들은 규제 강화에 반대하는 상황이라고 알자지라 방송은 전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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