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노란봉투법의 정치적 용도

2023. 7. 27.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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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노란봉투법은 잘못된 처방에
실패가 예정된 법안… 소모적
정쟁의 불쏘시개가 되는 꼴

가장 큰 책임은 민주당이 져야
노동사회단체 비난 모면하기
위해 끝까지 밀어붙였기 때문

정부 여당 안일한 태도도 문제
불법파업과 가혹한 손해배상
악순환 끊을 대책에 입 다물어

거부권 행사돼도 논란 끝나지
않아… 대통령·정부·국회는
현실적 대안 마련에 나서야

노란봉투법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정치적인’ 성격의 법이다. 법은 새로운 질서 형성의 표준이자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 이런 기준에 비춰볼 때 노란봉투법은 잘못된 처방이자 실패가 예정된 법안이다. 그런데도 다음 달 국회 통과가 예상되는 이유는 이 법안의 정치적 용도 때문이다. 다수 야당은 노동현장의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정치적 셈법에 따라 대통령이 세 번씩이나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할 작정인 것이다. 노란봉투법을 일관되게 비판해 왔던 고용노동부나 국민의힘이 태평한 이유도 대통령의 비토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경제단체의 격렬한 반대만이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터라 거부권 행사의 정치적 부담은 오히려 양곡관리법이나 간호법 때보다 덜할 전망이다.

결국 10년 전 노란봉투의 미담으로 시작해 불법파업 노동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제도적으로 줄여보겠다며 법안이 만들어졌지만 결국 소모적 정쟁의 불쏘시개가 되는 꼴이다. 가장 큰 책임은 더불어민주당이 져야 한다. 그들은 집권 5년 동안 문제 해결을 위해 한 일이 없다. 이번에도 여야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보다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켰다는 명분을 방패 삼아 노동사회단체의 비난을 모면하려는 의도에서 끝까지 밀어붙였다. 손배·가압류 위험을 줄이고 실질적 교섭권 확보를 기대했던 대기업 하청 노조나 택배노조, 화물연대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은 빈손으로 돌아서게 됐다.

대통령만 쳐다보고 있는 정부·여당의 안일한 태도도 문제다. 이들은 노란봉투법이 파업 조장법이라고 비난만 할 뿐 왜 노란봉투 캠페인에 대중들이 호응하고 여론 지지를 받아가며 국회 입법까지 가능했는지, 불법파업과 가혹한 손해배상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정부의 대책은 무엇인지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2014년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47억원 손해배상액을 10만명이 십시일반 모금해 갚아주자는 노란봉투 캠페인이 벌어졌을 때나 작년 9월 대우조선 하청 노조원 5명에 대한 47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비판적 여론이 일 때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었다.

양대 노총도 자신들이 한 일을 되돌아봐야 한다. 노란봉투법은 민주노총 7월 총파업의 명분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정작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작년 대우조선 사태처럼 하청 노조가 불법파업과 극단적 투쟁에 빠져드는 이유는 본사 정규직 노조가 이들을 외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대정신을 발휘해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할 수도 있고 교섭만이라도 함께할 수 있다. 어떤 법적 제약도 없고 회사도 거부할 수 없는 개선책이 있는데도 모든 문제를 사용자 책임으로 돌리고 법으로 해결해 달라는 태도야말로 조직 이기주의의 증거다. 많은 전문가가 노란봉투법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이 논란이 끝나지도 않을 것이다. 당장 민주노총은 11월 총력 투쟁의 슬로건으로, 민주당은 내년 총선 공약으로 반복 재활용할 것이다. 하청과 플랫폼 노동,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는 특수고용직의 노사 갈등을 법제도의 틀 안에서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불법파업과 손해배상 소송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이라는 해법이 잘못됐다면 이 악순환을 끝내기 위한 정부의 대안은 무엇인지 내놓아야 한다. 따라서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내더라도 대통령은 노란봉투법의 대안을 마련하도록 고용부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지시해야 한다.

마침 지난 6월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관련 손해배상 판결에서 근로자별 책임 정도와 임금 수준 등을 따져 배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노동계는 이를 근거로 노란봉투법의 정당성을 말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소위 ‘가혹한 손배소’ 문제는 법원 판결에 맡기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차피 손배소를 법으로 제한하는 데는 많은 무리가 따르기 때문에 판례에 맡기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입법이나 판례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노사정이 그동안 사례를 분석해 ‘가혹한 손배소’를 줄이기 위한 자율행동규범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그래도 남는 문제는 정상적인 노사 교섭이 어려운 노사관계의 회색지대 해소를 위한 법제도 개선이고 이는 온전히 정부에 맡겨진 책무다. 국회도 이를 위한 현실적 대안 마련에 집중하면 좋겠다.

최영기(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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