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무엇이 그들의 뇌를 게으르게 만들었나
독고다이. 홍준표 대구시장의 별명이다. 일본어로 ‘특공대’를 뜻한다고 한다. 홍 시장도 은근히 이 별명을 좋아하는 듯하다. 독불장군이라는 비판에 “독불장군은 부하라도 있지, 나는 적진을 단독으로 휘젓는 일당백 용사”라고 맞받아친 적도 있다. 그 별명답게 홍 시장은 정치적 고비를 개인기와 정치감각으로 넘어왔다. 지난 대선 당내 경선에서는 당심(선거인단)에서 패했지만, 민심(여론조사)에서는 앞섰다. 특히 2030 표심에서는 특유의 입심과 소통으로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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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야 정치권의 잇따른 실언 논란
진영 정치에 기댄 안일함 아닌가
‘쉬운 길’ 가지 않겠다는 윤 정부
정치 언어에서도 차별점 보여야
」
그런 홍 시장이 물난리 중 골프로 물의를 빚은 것은 의외다. 골프보다 더 문제였던 것은 ‘그게 무슨 문제냐’는 오만한 태도였다. 당의 징계 절차에 응한다면서도 SNS에 ‘과하지욕’(跨下之辱·가랑이 밑을 기는 치욕)이라는 단어를 올렸다가 삭제했다. 자신이 한고조 유방의 대장군 한신이라도 된다는 말일까. 태도를 탓하기 전에 감각이 의심된다. 몸담은 지역의 정치적 지형이 일방적으로 기우는 곳이 아니었다면 그의 오기가 이렇게 작동했을까. 예민했던 정치 감각이 안온한 둥지 속에서 어느새 무뎌진 걸까.
최근 여야 정치권의 실언이 이어지고 있다. 프로이트는 “실수는 잠재의식의 표출”이라고 했다. 말실수의 한자락만 들치면 말 주인공의 무의식을 짐작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실업급여는 시럽급여”라는 말이다. 그 말이 나온 공청회에서 노동부 직원이 “남자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용센터로) 오시는데, 여자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은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온다. 실업급여 받는 중에 해외여행 가서 선글라스를 사서 즐긴다”고 말했다. 이 말을 받아 여당 정책위원장은 ‘시럽급여’라는 멋진(?) 카피(문안)를 만들었다. 여성·청년·계약직에 대한 편견을 한꺼번에 드러냈다. 실업급여에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다. 재정도 걱정이고, 도덕적 해이 소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개선할 점이 있다면 진지하게 검토해 고쳐나가면 된다. 가벼운 말 한마디로 실업자의 상처를 헤집을 일이 아니다. 사회적 안전망에 기대어 힘들게 고개를 넘는 사람들에게 실업급여가 달콤한 시럽은커녕 쓰디쓴 모멸이 됐다.
양평고속도로 백지화를 “일종의 충격요법”이라고 한 국토부 관계자의 말도 불쾌하다. 양평군민과 국민이 실험 대상인가. 사업재개의 뜻이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무례하기 짝이 없다. 사실 무례함은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느닷없이 백지화 선언을 할 때부터였다. 아무리 야당의 시비가 터무니없다 해도 설명 대신 다짜고짜 싸움을 건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당사자야 정치적 존재감을 뿜뿜 드러냈겠지만, 국민 편익에 기여할 조(兆) 단위 국책 사업이 존재감 과시의 도구가 돼버렸다.
한심한 것은 이런 실수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탄핵 기각으로 복귀하긴 했으나,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경찰이나 소방관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은 헌법재판소로부터도 지적받을 정도로 부적절했다. 그런데도 수해 중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서둘러 귀국한다고 상황을 바꾸기 어렵다”고 했다. 그 며칠 뒤 김영환 충북지사가 “(오송 참사 현장에) 갔다고 해도 상황이 바뀔 것은 없었다”고 똑같은 실언을 했다. 뭐가 빠져도 단단히 빠졌다.
물론 실언이 여당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대통령이 나라를 궁평지하차도로 밀어 넣는다” 식의 막말은 민주당의 전매특허처럼 돼버렸다. ‘핵 폐수’ ‘세슘 우럭’ ‘× 먹을지언정’ 같은 선동의 언어도 서슴지 않는다. 여당으로선 거대 야당의 언어폭력, 가짜뉴스에 ‘공자 같은 말씀’으로만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객관화다. 정치란 결국 언어 행위다. 그것도 개인의 언어가 아니라 미디어에 증폭돼 나타나는 언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들리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정치 언어다.
뇌는 인체 중 가장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장기다. 몸무게의 2%에 불과하지만, 20%의 열량을 사용한다고 한다. 인간이 이성과 논리보다는 편견과 느낌에 더 의존하는 것은 그 방법이 에너지가 덜 들기 때문이다. 정치가 ‘진영 논리’에 기대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도층 설득보다 힘과 노력이 덜 들기 때문이다. 진영 논리는 사람의 뇌를 게으르게 한다. 우리/상대의 이분법 속에 논리 회로는 멈춘다. ‘진영 논리’라곤 했지만, 사실 진영 싸움은 ‘논리의 빈곤’을 걱정하지 않는다. ‘싸움의 빈곤’을 걱정할 뿐이다. 여야의 잦은 실언은 진영 논리에 기대어 쉽고 즉자적인 정치에 몰두하는 ‘게으른 뇌’의 소산은 아닌가.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처럼 ‘쉬운 길’은 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선거에 지더라도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는 나랏빚을 더 늘리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말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비판에 대한 대응 방식은 문 정부의 ‘전 정부 탓’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을 닮는다는 니체의 경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현상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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