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실손 의료비 청구 전산화, 미룰 일 아니다

2023. 7. 27.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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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호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

2001년 세계 최초로 전자정부법을 제정한 이래로 한국의 행정 서비스는 세계가 놀랄 정도로 디지털화를 주도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유엔 ‘전자정부 발전지수’ 평가에서 2010년 이래로 3회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지금까지 세계 3위권을 계속하여 유지하는 유일한 나라다. 전자정부, 디지털 정부, 그리고 최근에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로 발전하면서 업무의 효율성 및 투명성, 그리고 대국민 서비스의 편리성 및 접근성이 한층 더 강화되고 있다.

「 국회 보험업법 개정 작업 주목
개인정보 유출될 가능성 낮아
의료계보다 국민 편의가 먼저

이처럼 우수한 정보통신기술(ICT)을 정부 서비스와 지속해서 연계하고 개선하듯이 민간 영역 또한 금융 서비스를 중심으로 디지털화·고도화해 이용자의 서비스 편의성과 업무의 효율성을 꾸준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

당면 과제로 약 4000만 명이 가입한 실손보험의 실손 의료비 청구의 전산화를 언급할 수 있다. 이는 지난 6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의결한 보험업법 일부 개정안의 주요 골자다. 그동안 실손 의료비를 청구하려면 가입자가 직접 병원이나 약국을 방문해 종이로 된 영수증을 발급받고 이를 보험사에 직접 제출해야 했다. 이처럼 불편한 과정을 온라인으로 전산화함으로써 소비자의 편익을 제고하겠다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다. 실손 의료비 전산 청구 제도를 구현하기 위한 법률 개정안은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로 촉발된 이래로 14년 만에 국회의 첫 문턱을 넘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그것은 의료계와 보험업계의 첨예한 이해 갈등에서 비롯됐다. 지난 14년간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따른 일상의 변화를 살펴보면 몇 가지 합리적 논거를 재검토해야 한다.

의료계는 실손 의료비 전산 청구 제도를 반대하는 몇 가지 이유를 내세운다. 소비자들의 민감 정보 유출과 집적, 전송 대행 기관으로 특정 공적 기관 선정 문제,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부 증가 등이다. 그런데 과연 실손 의료비 전산화가 시행된다면 의료계가 주장하는 여러 문제가 발생할까. 필자는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우선 의료계가 가장 우려하는 의료 정보의 유출과 집적에 대해 살펴보자. 지금과 2009년은 생활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국민은 스마트폰으로 고도화된 금융서비스를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예·적금과 보험·주식·채권 등 금융상품을 앱을 통해 가입하고 거래한다. 심지어 부동산이나 중고차도 앱으로 거래하지만, 다층적 보안 프로그램 덕분에 개인정보가 유출될 것을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

실손보험 관련 의료기관이 수만 개에 달하기 때문에 전산 청구 업무의 효율성 관점에서 공익적 전송대행 기관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특정 전송 대행 기관의 역할은 소비자의 전자 청구 서류를 전송하는 데 국한된다. 이를 위반하면 보험업법 개정안에 강력한 처벌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다.

지금 유력한 전송 대행 기관으로 언급되는 보험개발원은 금융감독원의 감독 대상이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정보 보안 이슈에 대해서도 민간 업체보다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다만 실손보험의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보완적 역할을 강조한다면 전송 대행 기관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적합할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의료기관들이 이미 데이터 전송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완적 기능보다 독립적 민영 의료보험으로서 실손보험이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보험개발원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실손의료비 청구를 전산화하면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부가 증가할 것이라는 의료계의 주장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 6월 국회 정무위에서 금융위원장이 일관되게 답변한 것처럼 보험업법 개정안은 단지 소비자가 영수증 등을 종이로 받아 보험회사에 제출하던 것을 소비자가 원하면 전자적 형태로 보험사에 전송되도록 하는 것일 뿐 그밖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종이 서류로 불편하게 청구하면 보험금을 지급하고, 전자적 형태로 편하게 청구하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실손 의료비 청구 전산화를 담고 있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를 넘어 본회의에서 신속하게 의결돼야 한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국민 4000만 명의 보험금 청구 편의를 제고하고 실질적 의료비 보장 확대에 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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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호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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