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린 클라크의 문화산책] 알래스카 멘덴홀 빙하, 언제까지 갈까
이달 초 학기가 끝나자마자 아버지의 팔순과 여동생의 50세 생일을 축하하러 고향 알래스카로 돌아갔다. 생일 당일에 맞춰 갈 수가 없었기에 미국의 247번째 생일날 축하 파티를 하기로 정했다. 친척 35명도 크루즈에 합류했다. 자정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붉은색, 오렌지색 불꽃이 바닷물에 반사되고 함성이 산맥을 울렸던 그날, 지구 평균 온도는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불과 하루 전날일 7월 3일에 깨졌던 기록을 다시 갈아치웠다.
이어서 5일, 6일, 7일…, 이후 17일 동안 기록은 계속 깨졌다. 캘리포니아주 일부 지역 기온은 섭씨 50도가 넘고 뜨거운 아스팔트에 신발이 달라붙는 상황에, 상대적으로 서늘한 알래스카가 크루즈 여행 성지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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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뜨거워지는 세계 날씨
내 고향 알래스카도 예외 없어
얇은 얼음조각으로 녹은 빙하
함께 사라지는 원주민의 문화
」
내 고향 마을에서 산맥 반대편에 위치한 주노 아이스필드는 남북으로 140㎞, 동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75㎞에 이르는 3900㎢ 넓이의 빙원이다. 시내에서 차로 20분 걸리는 곳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멘덴홀 빙하가 있다. 이 지역 원주민인 틀링깃족은 ‘아쿠타크싯(Aak’wtaaksit, 작은 호수 뒤편의 빙하)이라고 부른다. 내가 어릴 적 이 빙하는 작은 호수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푸른색 빙상이었다. 1950년대 미국 산림청에서 ‘스타트렉’에 나오는 엔터프라이즈 우주선 같은 초현대식 디자인의 전망대를 건설, 방문객들은 푸른 빙하에서 떨어져 내린 얼음조각이 물에 빠지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빙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이제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빙하는 호수 높이의 얇은 얼음 조각뿐이다.
아버지와 고모, 사촌들,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멘덴홀 빙하를 보러 갔다. 관광객 인파를 따라 들어간 전망대에서 교육용 영상을 보았다. 흥미롭게도 빙하 이야기를 지역 전통예술, 특히 틀링깃족 직조공이자 내 친구인 테리 차스쿠우 틀라 로프카의 작품과 연관지어 소개한 영상이었다. 로프카는 전망대가 건설될 무렵 태어났고 2016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전수받은 ‘낙세인’ 또는 ‘칠캇’이라고 하는 직조기술은 6000년을 이어져 온 기술로서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방식의 직조술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로프카는 빙하 위편의 바위투성이 산자락에 서식하는 산양의 흰 털로 200년 만에 첫 틀링깃족 예복을 만들었다.
로프카가 알래스카대 북부 박물관에 말한 바와 같이, 낙세인 직조법에서 균형미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균형미는 인생과 인생의 이미지를 보유하는 데에 적합한 비유를 지닌다. 나는 과거뿐 아니라 인생을 기록하고 있다. 균형미를 지닌 예술은 지렛목이다. 그것은 미래와 과거 모두에 반영된 균형미를 나타낸다.”
로프카는 전수받은 직조술에 현대의 소재와 기술을 받아들여 21세기의 변화하는 사회적·물리적 환경에 맞게 변형시켰다. 2016년 로프카는 알래스카 사우스이스트대 문예예술지 ‘타이덜 에코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제사회에서 ‘자원’(resource)이라는 단어는 개성 없는 방식으로 가치를 규정한다. 나는 [나의 재료]와 관계를 맺는다. 일단 나와 환경이 맺는 관계를 확인하고 나면 내가 동식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다.” 인용구를 읽으면서 나는 ‘빙하에 대한 관점도 바뀌겠지’ 하고 생각했다.
지난 11일 알래스카 퍼블릭 미디어는 늦여름이면 멘덴홀 빙하를 찾는 관광객 수가 산림청이 허용한 연간 방문객 제한 수치(60만 명)에 도달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크루즈 산업 측에서 예상하는 방문객 수는 165만 명으로, 빙하 환경이나 전망대 시설 모두 수용하기 힘든 과도한 숫자다. 빙하라는 장관을 보기 위해 몇 년간 돈과 연차를 모은 관광객 가운데 많은 수가 실망을 할 예정이고, 다시 기회를 갖기도 어려울 것 같다.
로프카는 사망하기 몇 년 전에 ‘아이스 워커’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이 예복에 그는 북극곰의 위기를 상징하는 반복 패턴과 현대적인 문양을 짜 넣었다. 노란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대칭 패턴 안팎을 파란색 실이 넘나들면서 바닷물로 가득 찬 ‘아이스 워커’의 오랜 발자국을 묘사하는 작품이다.
한국에 돌아와 이 글을 쓰는 동안 폭우가 쏟아지고 강이 불어났다. 한국의 오랜 절기인 복날과 대서(大暑)는 멘덴홀 빙하에 대한 기억까지 녹여내는 듯했다. 멘덴홀 빙하는 한때 알래스카 도시들의 무한한 식수 공급원으로 여겨졌고,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역사와 함께 흐르며, 그곳에 서식하는 동물들은 원주민에게 가죽과 고기를 공급했다. 오락가락하는 세계의 기후를 지탱하는 얼음 지렛목이 더 이상 열기를 버티지 못하게 될 때까지 앞으로 우리에게 몇 번의 생일이 더 남았을까.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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