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 논설위원이 간다] 21년간 2000억 적자 양양공항, 아무도 책임 안 진다

주정완 2023. 7. 27.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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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공항’ 악몽 재연된 양양국제공항


주정완 논설위원
대형 국책사업으로 3500억원 넘게 쏟아부은 시설물이 대책 없이 놀고 있다. 지난 21년간 쌓인 운영 적자도 2000억원이 넘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영동권 거점공항이자 강원도 관광의 관문을 표방했던 양양국제공항이다. 이곳을 모기지로 사용하는 항공사인 플라이강원은 두 달 전 전면 운항 중단에 들어갔다. 양양공항에서 유일하게 항공기를 운항하던 플라이강원의 ‘날개’가 꺾이자 공항도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지난 19일 오후 양양공항을 찾아갔다. 공항 진출입로 입구에는 ‘플라이강원 양양↔제주, 대구 정기노선 운항’이란 플래카드가 보였다. 현재는 운항하지 않는 노선인데 플래카드는 철거하지 않았다.

임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공항 2층으로 올라갔다. 조명이 꺼진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는 어두침침했다. 항공사 직원은 흔적도 보이지 않고 한 장짜리 안내문만 있었다. 플라이강원이 지난 5월 20일부터 6월 30일까지 전면 결항한다는 내용이었다. 안내문에 적힌 날짜가 이미 한참 지났는데도 운항은 재개하지 못했다. 고객센터에 전화했더니 녹음된 안내음성만 나올 뿐 통화는 되지 않았다.

「 항공 운항 중단, 공항 개점휴업
텅 빈 청사, 운영비 적자만 쌓여

교통부 “경제성 없다” 결론에도
노태우·YS·DJ 정부, 신공항 강행

플라이강원 경영난에 자본잠식
법정관리 직전 부당 지원 의혹

운항증명 효력 정지, 투자 유치 불투명

플라이강원의 운항 중단으로 개점휴업 중인 양양국제공항 전경. 주정완 기자

공항 대합실 의자는 텅 비어 있었다. 드나드는 사람이 없는 국제선 출국장 입구는 보안요원이 혼자 지키고 있었다. 공항 운영과 관리를 맡은 한국공항공사 양양지사 직원을 제외하면 공항 안을 오가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공항 내부 커피숍과 편의점이 문을 열었지만 일반 이용객은 거의 없어 보였다.

양양공항에서 언제쯤 다시 비행기를 띄울 수 있을지는 현재 알 수 없다. 저비용 항공사(LCC)인 플라이강원은 지난 5월 23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 회사는 투자자들에게 “신규 투자를 유치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경영을 정상화하겠다”고 공시했지만 아직 투자 유치 전망은 불투명하다. 국토교통부는 플라이강원의 운항 중단 기간이 60일을 넘었다는 이유로 항공운항증명(AOC) 효력을 정지했다.

플라이강원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본금을 전액 까먹은 상태(완전 자본잠식)였다. 이 회사는 2019년 11월 항공기 운항을 시작한 이후 줄곧 적자를 면치 못했다. 회계 감사를 맡은 대주회계법인은 감사보고서에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 대해 유의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적었다. 심각한 재무 부실로 인해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망할지 알 수 없다는 의미다.

공항 건설, 입지 등에 정치 개입했나

이용객이 사라진 국내선 출발장. 주정완 기자

양양공항의 역사는 30여 년 전 노태우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서해 남부와 동해안·제주도·부산의 지방 거점 네 곳에 신공항을 세우는 방안을 검토했다. 1990년 6월에는 인천 영종도 일원에 수도권 신공항(인천국제공항)을 건설하는 계획도 발표했다.

국가기록원을 통해 과거 자료를 찾아봤다. ‘동·서해안 신국제공항 개발 타당성 조사 요약보고서(동해안편)’를 확인할 수 있었다. 1990년 1월 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작성한 보고서였다. 예전엔 대외비 문서였지만 이제는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동해안 신공항을 추진해야 한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보고서는 “신공항 후보지는 항공수요를 감안, 경제성 있는 후보지가 없는 것으로 경제성 분석에서 나왔으며 신공항 개발은 경제성이 있을 시기 또는 정책상 필요시까지 개발을 유보하는 것이 타당함”이라고 지적했다.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 주정완 기자

동해안 신공항은 경제성이 없으니 2010년 이후로 미뤘다가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었다. 철도 등 육상교통이 발전하면 동해안 항공수요는 급감할 것이란 게 경제성 없음의 근거였다. 신공항의 대안으로는 기존 강릉공항을 확장하고 속초공항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보고서는 동해안 신공항 후보지로 10곳을 검토했다. 현재 공항이 있는 양양 학포리 일원은 1순위가 아닌 3순위 후보지였다. ▶신공항 후보지와 가까운 낙산사 주변에 소음 발생이 우려되고 ▶철새들이 날아드는 남대천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 대신 강릉과 비교적 가까운 양양 하조대 일원을 1순위 후보지로 제시했다.

하지만 1990년 10월 정부는 학포리 일원을 동해안 신공항 후보지로 발표했다. “경제성 없다”는 조사 보고서의 결론은 철저히 무시됐다. 이렇게 양양공항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공개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정치적 고려가 개입했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감사원 “차라리 공항 닫아라”

텅 빈 국제선 대합실 의자. 주정완 기자

양양공항이 문을 연 건 2002 한·일 월드컵 개막(5월 말)을 코앞에 둔 2002년 4월이었다. 김영삼 정부에서 공항 건설에 착수하고 김대중 정부에서 완성했다. 총 건설비는 3567억원. 이후 21년간 물가상승을 고려한 현재 가치는 6000억원에 이른다.

양양공항은 시간이 갈수록 자리를 잡기는커녕 정반대로 갔다. 수도권과 강원도를 잇는 도로·철도 등이 좋아질수록 양양공항은 경쟁력을 잃어갔다. 1990년 교통부 보고서가 전망한 대로였다.

개항 첫해에는 연간 이용객 수가 20만 명을 넘었지만 2005년에는 6만 명대로 떨어졌다. 2008년에는 1만 명도 채우지 못했다. 결국 2008년 11월부터 9개월간 첫 번째 전면 운항 중단을 겪었다. 영국 BBC방송은 양양공항을 ‘유령공항’이라고 부르며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공항에 주는 상이 있다면 양양공항은 강력한 도전자”라고 전했다. 2009년 8월 간신히 항공기 운항을 재개했지만 소형 항공사의 18인승짜리가 고작이었다.

감사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5월 한국공항공사에 대한 종합감사를 통해 양양공항에 사실상 ‘사망 선고’를 내렸다. 매년 운영 적자로 아까운 돈만 날리고 있으니 차라리 공항 문을 닫는 편이 낫다는 게 감사원 결론이었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2010년 보고서에서 “근본적으로 공항을 이용할 수 있는 항공수요가 부족하다. 특히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양양공항의 국내선 운항 필요성은 더 낮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4~2015년에는 양양공항을 이용한 국제선 여객 수가 연간 10만 명을 넘기며 ‘반짝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한·중 관계가 좋아지며 중국인의 한국 관광이 붐을 이뤘던 덕분이다. 당시 저렴한 패키지 여행상품으로 양양공항을 이용하는 중국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으로 한·중 관계가 악화하자 양양공항도 다시 침체에 빠졌다.

항공사 ‘먹튀’ 의혹에 공익감사 청구

플라이강원의 부상과 추락은 양양공항의 운명에 결정타가 됐다. 출발은 희망적이었다. 국토부는 2019년 3월 신생 항공사인 플라이강원에 국제항공운송 면허를 발급한다고 밝혔다. 당시 플라이강원은 2022년까지 항공기 아홉 대를 도입해 중국·일본·필리핀 등 국제선 25개 노선에 취항한다는 계획서를 냈다. 다수의 투자자가 1000억원의 투자 의향을 밝혔다는 서류도 국토부에 제출했다. 강원도 산하 강원연구원은 플라이강원의 사업 계획대로 하면 일자리 4만 개 창출과 3조4900억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실상은 전혀 딴판이었다. 지난해 말까지 플라이강원이 도입한 항공기는 세 대뿐이었다. 당초 사업계획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1000억원의 투자 유치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국내 항공시장에서 플라이강원의 점유율은 지난해 1% 미만(국내선 0.94%, 국제선 0.13%)에 그쳤다.

플라이강원이 지난 5월 기습적으로 운항 중단을 발표하자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소비자에게 무책임한 것을 넘어 악질적인 사기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플라이강원이 의도적으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 자기들만 살겠다는 이 상황을 두고 보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그동안 강원도는 플라이강원에 145억원을 지원했지만 결국 헛돈을 쓴 셈이 됐다. 양양군도 20억원을 지원했다. 이 돈은 지원 시기와 목적, 절차적 문제 등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플라이강원이 양양군의 운항장려금(5월 15일)을 받고 불과 사흘 만에 운항 중단(5월 18일)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에선 ‘먹튀’라는 말까지 나온다.

박봉균 양양군의회 군의원은 지난 12일 지역 주민 3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박 군의원은 “예산 심의 과정에서 예산서나 사업계획서도 제대로 제출되지 않았고 관련 조례에서 규정한 기준도 위반해 졸속으로 지원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산 지원을 하더라도 망해가는 회사가 아닌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온 뒤 지원하는 게 맞다. 부실기업에 군민의 혈세를 낭비한 의혹에 대해 감사원이 철저히 밝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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