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김일성 “수도 서울” 김여정 “대한민국”…정전 70년, 달라진 북한
#1. “조선에서 정전의 달성은 외래 제국주의 련(연)합세력을 타승하여 미제국주의, 리(이)승만 매국도당들을 반대하여 자주와 독립을 수호하는 우리 조국 인민이 3년 간에 걸친 영웅적 투쟁의 결과이며 우리나라와 우리 인민이 쟁취한 위대한 력(역사)사적 승리입니다.”(1953년 7월 27일 김일성 연설)
#2. “오늘 21.00시 우리 조국의 림시(임시) 수도인 평양시에서 124문의 포로써(서) 일제 사격으로 24발의 축포를 울릴 것이다. 우리의 영예로운 조국-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 (53년 7월 28일. 북한군 최고사령관 명령 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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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년까지 북 헌법상 수도는 서울
김여정 담화 ‘남조선’ 대신 호칭
얼어붙은 남북관계 현실 반영
북·중·러 결속 다지기 주력할 듯
」
1953년 7월 27일 유엔이 구성한 국제 연합군과 북한군·중공군이 판문점에서 정전 협정에 서명한 직후, 김일성 당시 내각 수상은 TV에 등장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음날엔 최고사령관 명령을 통해 소련과 중국의 지원에 감사하고, 전쟁 승리를 기념해 평야에서 2976발(124문×24발)의 포를 쏘라는 지시를 이어갔다.
북한이 발행한 『조선중앙년감』1953년 판에는 1375자 분량의 최고사령관 명령서 전문이 실렸다. 해당 문서는 “~한다”와 같은 평서문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습니다”와 같은 경어체가 혼재돼 있어 당시 긴박하게 지시한 흔적을 보였다. 김일성의 언급 중 눈에 띄는 건 평양을 ‘림시수도’라고 한 부분이다. 북한은 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로 정부를 수립했지만, 72년 12월 헌법을 개정할 때까지 서울시를 수도로 삼았다(헌법 103조). 전쟁 전 경계선이었던 38도선 이남 지역을 미수복 지역으로 규정하고, 전 한반도를 공산화하겠다는 ‘국토완정론’의 연장이다. 이는 북한이 6·25 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며 전쟁을 개시한 명분이기도 했다.
담화속 따옴표에 숨은 뜻은
이로부터 70년이 지나 김일성의 손녀이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지난 10일 담화가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미군 정찰기의 비행을 저주하며, 과거 삼가던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담화에 사용했다. 김 위원장의 대변인으로 불리는 그의 입에서 갑자기 ‘대한민국’이라니. 이를 두고 ‘우리민족끼리’를 주창하던 북한이 ‘두 개의 한국(투 코리아) 전략’으로 선회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등장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1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추진했던 금강산 방문계획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대남기구가 아닌 외무성 명의로 발표한 뒤여서 이런 분석은 확산했다.
김여정의 담화를 실은 북한 매체의 표현을 들여다 보면 또 다른 의도도 읽힌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여정의 담화를 전하며 대한민국이라는 단어의 앞과 뒤에 ‘《》’를 표기했다. 한국에서 인용문에 사용하는 문장 부호인 따옴표(“ ”)다. 북한이 발간한 『조선말대사전』은 이를 “남의 말이나 글을 인용하려 하거나 어떤 말마디나 문장을 이른바라는 뜻으로 특별히 구분하여 쓰려고 할 때 쓰는 부호. 《》와 같은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김여정의 《대한민국》은 “이른바 대한민국”이란 의미가 담겨있다. 자신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게 불러준다’는 식의 비아냥이다. 한반도의 봄으로 불리며 남북관계가 좋았던 2018년 8월 15일 조선중앙통신은 ‘대한민국’이라고 쓰면서도 앞과 뒤에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았다. 반면,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는 한국의 국회나 부정적인 시각이 강했던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등을 표기할 땐 빼놓지 않고 이번처럼 인용부호(《》)를 썼다. 결국 김여정의 《대한민국》은 남북관계의 냉각된 현실을 반영하며, 점잖고 건전한 외교관계를 염두했다기보다 한국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 ‘셀프 봉쇄’ 풀까
정부 당국은 정전협정 체결 70주년과 관련한 북한의 행사 가운데 열병식을 주목해 왔다. 김 위원장이 집권 이후 수시로 진행하는 열병식에서 북한이 신형 무기를 공개하며 대내 결속을 유도와 함께 대외 메시지를 발신해 왔기 때문이다. 북한은 때론 영하 20도의 강추위 속에 심야 열병식을 강행하고, 지난 2월 8일 건군절 열병식엔 10살 안팎의 딸을 주석단에 등장시켰다. 특히 열병식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서던 지난 4월부터 해외 인사들을 초청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2020년 1월 코로나19가 창궐한 이후 국경을 꽁꽁 닫는 셀프 봉쇄에 나섰던 북한이 이번 열병식을 계기로 국경을 개방할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북한 당국자들도 암암리에 외부에 방북 준비를 암시했다. 그러나 당초 움직임과 달리 북한이 26일 오후까지 공개한 공식 초청인사는 중국과 러시아 인사가 전부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지만 북한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자신들의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를 특별 취급해 한·미·일 협력에 대응하겠다는 또 다른 정면승부다.
다만, 중국은 북한 정부의 초청으로 리홍중(李鴻忠)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국회 부의장격)이 단장을 맡은 정부 대표단이, 러시아는 북한의 국방성의 초청에 따른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등 군사 대표단이 평양을 찾는 차이가 있다. 북한은 러시아를 언급하며 “전통적인 조로(북·러) 친선관계를 시대적 요구에 맞게 승화 발전시키는 데서 중요한 계기로 될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 국방 장관의 평양 방문은 이례적이다. 혹시 무기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러시아에 북한이 무기를 지원하는 대면 협의 자리가 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공교롭게도 한·미·일 정상은 다음달 18일 미국에서 회담을 하고, 북한의 핵 억제력을 높이기 위한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반면, 북·중·러는 열병식 기간 정치, 외교, 군사 협력을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서로 맞은 편의 당사자들이 그들만의 리그에 나서는 것이다. 70년전 냉전이 시작되던 그날처럼.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분위기를 고려하면 뚱딴지 같지만 양측 모두 전쟁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궁리에 나서는 건 어떨까.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지만, 유사시 직접 피해를 입는 건 한국과 북한이니 말이다.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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