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요즘 미국 부모의 훈육법 “말 안 들으면 한국으로 유학 보낸다”
“너, 말 안 들으면 한국으로 유학 보낼 거야.”
미국인 부모가 자녀를 훈육할 때 이런 말을 한다는 얘길 전해 듣고 요즘 말로 ‘뼈 맞은’ 기분이었다. 이런 협박(?)이 통하는 이유는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다. 영어유치원과 ‘초등 의대반’으로 대표되는 조기교육 열풍부터, 단순 암기 위주의 수능 시험 탓에 밤늦도록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야 하는 수험생들까지. 몇 가지 사례만 들어줘도 약발이 잘 먹힐 것 같다.
윤석열 정부가 ‘수능 킬러문항’ 배제를 지시하는 등 교육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현장의 반응은 아직 뜨뜻미지근하다. 공교육을 바로 세우고 사교육비를 절감하는 방향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이뤄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린 느낌이다. ‘4세 고시’라고 불리는 영어유치원 레벨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연필도 잡기 힘든 나이에 과외까지 받는 지경이니 말이다.
사교육의 늪에 빠진 한국의 현실을 ‘죄수의 딜레마’에 비유하곤 한다. 공범 모두가 범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풀려날 수 있는데, 누군가 자백하면 자신이 더 큰 형벌을 받게 될 거라는 두려움에 결국 다들 죄를 시인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사교육 광풍이 문제란 걸 알면서도 내 아이만 도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치기 어렵다는 얘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생들이 쓴 학원비·과외비·인터넷강의 수강료 등 사교육비 총액은 26조원으로 역대 최고였다. 1년 새 2조5000억원(10.8%)이 불었다. 단순히 물가가 올라서가 아니다. 학생 수는 532만 명에서 528만 명으로 오히려 줄었는데 사교육 참여율(75.5%→78.3%)은 더 늘어 역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문제는 사교육비 부담에 아이를 덜 낳게 되고, 또 그러다 보니 한 자녀에게 자원을 ‘몰빵’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제대로 된 사교육을 받지 못해서 남보다 몇 배 더 노력해야 했다고 믿기 때문에, 주택담보대출 갚느라 허덕이지만 영어유치원은 보내야겠다는 젊은 세대도 적지 않다. 결과적으로는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 자기만족일 수도 있지만, 누가 이 부모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어차피 사교육이 ‘뉴노멀’이라면, 스스로 자신의 적성을 찾고 역경을 극복하는 방법까지 가르치는 학원이 대성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1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식을 탐구하고 깨우치는 과정이 의미 있는 거라고,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이 행복한지 늘 생각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입’하는 학원이 많아졌으면 한다. 최소한 한국으로 유학, 아니 유배 보낸다는 말은 안 나오도록 말이다.
김경희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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