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도척만도 못한 세상
공자(孔子)의 친구 유하계(柳下季)에게 도척이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부하 9000명을 거느리고 천하를 횡행하는 도적이었다. 공자는 도척을 회개시키겠다는 마음으로 그를 찾아가 훈계했다.
그랬더니 도척이 이렇게 말했다. “인생이 길어야 백 년이고 짧으면 60년인데, 그나마 아프고 근심하는 시간을 빼면 일생이 얼마나 된다고 주제넘게 남을 훈계하러 다니시오. 어서 돌아가 자신이나 돌보시오.” 그 말을 듣고 공자가 그 집을 나오는데 너무 무안해 말 고삐를 잡으려다 세 번 헛손질했다.
어느 날 도척이 도적질에 대해 강의하는데, 한 제자가 “도적질에도 도(道)가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도척이 이렇게 대답했다. “저 안에 값진 물건이 있는지 없는지를 안다면 성인(聖)의 경지요, 이번 도둑질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안다면 지혜로운(知) 일이요, 먼저 담을 넘어들어가는 것은 용기(勇) 있는 일이요,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은 의리(義) 있는 일이요, 장물을 고루 나누는 것은 어진(仁) 일이다. 그러니 어찌 도적에게 도가 없겠느냐. 그러나 나는 아직 이 다섯 가지 도를 모두 갖춘 도적을 보지 못했다.”(『장자』 재유·도척 편)
세상이 많이 더러워졌다. “모든 재산은 어차피 훔친 것”이라는 프랑스 아나키스트 철학자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1809~1865)의 말이 다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이들 훔치고 있다. 사법부 수장이 입방아에 오르고, 특검이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받고, 대통령 출마 정치인이 검은돈과 연루돼 사법 절차를 밟고 있으니 우리 사회는 그리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사기 범죄가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고 일본의 38배라는 보도를 봤다. 우리야 어차피 도척만도 못한 세상을 살았지만, 후대에 물려줄 유산이 부끄러워 마음이 허허롭다. 정말로 내년 4월 총선에서 잘 뽑아야 할 텐데,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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