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폭탄’된 빈집… 전국 13만채, 철거는 7%도 안 돼

심희정,권민지 2023. 7. 2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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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명령 안 따라도 강제이행금 없어
서울 시내의 한 빈 집 앞에 쓰다 버려진 냉장고와 다 쓴 연탄 더미가 쌓여있다. 국민일보DB


기록적 폭우로 안 그래도 취약한 빈집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광주와 인천 등에서는 빈집이 폭우로 무너지는 등 재해에 취약한 실태가 그대로 드러났다. 하지만 빈집 관리는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전국 빈집 13만2052호 중 철거된 빈집은 8444호로 6.4%에 그쳤다. 붕괴 위험이 있는 빈집의 철거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 때 부과되는 이행강제금도 없었다. 농촌 빈집은 이행강제금 부과 규정도 없어 철거 명령 이행률이 20%에 불과했다.

26일 국토교통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빈집은 13만2052호로 집계됐다. 이 중 농촌이 6만6024호로 가장 많았고, 도시 4만2356호, 어촌이 2만3672호였다. 빈집 관리는 소재지에 따라 도시는 국토부가, 농어촌 지역은 농식품부와 해수부가 관리한다. 문제는 빈집 관련 법이 부처마다 달라 관리 체계가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도시 빈집은 철거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을 매길 수 있고, 빈집 대량 정비를 위한 집단 대출도 가능하다. 하지만 농어촌은 이행강제금 규정도 없고, 집단 대출도 불가능하다.

국토부는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소규모주택정비법)에 따라 빈집을 관리한다. 이 법에 따르면 1년 이상 거주 또는 사용하지 않는 주택이 관리 대상으로, 1~4등급으로 분류된다. 1등급(활용대상)과 2등급(관리대상)은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빈집으로 정비를 통해 활용하도록 유도한다. 3등급(집중관리 대상)과 4등급(우선정비 대상)은 철거나 안전조치 대상이다.

정비 대상으로 안전 관리가 필요한 3, 4등급 빈집은 철거 대상이지만 도시 지역에서 철거된 빈집은 이 중 2%에 불과한 상태다. 도시 빈집 4만2356호 중 927호만 철거된 것이다. 지역별로 전북 245호, 부산 134호, 전남 88호, 충남 78호 등이었다. 철거되지 않은 빈집은 재해에 속수무책이다. 지난 24일에는 광주 동구 충장로의 빈 상가건물이 폭우 영향으로 무너졌고, 지난 13일 인천 미추홀구에서도 빈 빌라가 무너졌다.

도시에 철거된 빈집이 적은 것은 이행강제금 부과 규정이 있는데도 지방자치단체가 부과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철거 명령을 미이행하면 이행강제금이 부과되지만, 지난해 도시 지역 빈집에 이행강제금이 부과된 경우는 단 1건도 없었다. 60일 이내에 조치 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소유자에게 1년에 2회까지 조치 명령이 이행될 때까지 반복 부과할 수 있지만 규정이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도시 지역은 정비를 통해 활용하는 방식으로 빈집을 관리 중”이라며 “지자체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빈집 철거를 강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농어촌 지역은 이행강제금 부과 근거조차 없다.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안전사고나 범죄 발생 우려 등이 있는 ‘특정빈집’에 대해 지자체장이 철거·개축·수리 등의 조치 명령을 할 수 있지만, 제재 수단이 없는 탓이다. 지난해 1~11월 특정빈집에 대한 조치 명령 92건 중 빈집 소유자가 조치 명령에 따라 철거한 건수는 19건으로, 이행률이 20.7%에 그쳤다. 농식품부는 지난 3월 조치 명령 미이행에 대한 이행강제금 부과, 행정 대집행 등 제재 규정을 담은 농어촌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농해수위는 법안 검토보고서에서 “빈집 소유주가 조치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문제 상황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이행강제금의 근거를 신설하는 것은 필요한 입법 조치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빈집 철거나 정비 등 관리가 어려운 이유로는 빈집 특성상 소유주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꼽힌다. 지자체가 철거나 정비를 제안하면 본인이 소유주가 아니라고 잡아떼는 일도 있다. 이 때문에 지자체에서도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거나 철거 명령을 내리기 어려워 관리가 어렵다고 호소한다. 철거 명령이나 이행강제금 부과 주체가 지자체장인 만큼 중앙부처가 이를 관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특히 도시보다 노후한 농촌 지역의 빈집 정비가 시급한 만큼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농식품부는 2027년까지 농촌 빈집을 절반으로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주택개량융자금을 개편해 마을 단위 빈집 정비에 대한 집단 대출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손볼 방침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촌 빈집을 대량으로 정비하려면 집단 대출이 가능해야 한다. 도시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대출이 가능한데, 농촌은 대출 대상 규제가 있어 집단 대출이 불가능하다”며 “예산 당국과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 빈집은 철거보다 정비 중심으로 관리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해 전국 도시 빈집 278호를 정비했다. 인천 106호, 부산 86호 등 대도시 인근 빈집을 재정비해 공공주택 등으로 활용하는 식이다. 서울시는 최근 은평구 구산동에 있는 빈집을 활용해 지은 주택을 매입했고, 이를 청년임대주택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8~9월 중에는 전국 빈집정보 플랫폼(빈집정보알림e)도 선보인다. 당초 6월까지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었지만 데이터 수집 문제로 일정이 지연됐다. 빈집정보 플랫폼에서는 전국의 빈집 현황, 시·군별 현황 등 기본적인 빈집 정보를 제공하고, 향후에는 부동산 플랫폼과 연계해 빈집 거래가 활성화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정부는 빈집의 기준과 평가 항목을 통일해 지자체에 전국 빈집실태조사 통합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세종=심희정 권민지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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