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병 종처럼 부려먹어” 육군 사단지휘부 ‘갑질’ 의혹
사적 모임서도 특별대우…육군 “엄정조치”
경기도에 있는 한 육군 사단 지휘부가 군 복지시설로 운영되는 식당에서 메뉴판에 없는 특별 메뉴인 ‘16첩 반상’을 수차례 요구하고 자녀 상견례, 종교 모임 등 사적 모임을 가지며 마치 개인 식당처럼 운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군인권센터는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육군 A사단 지휘부가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복지 시설인 B회관에서 갑질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B회관은 음식점, 숙박시설 등 장병들을 위해 부대에서 운영하는 편의시설로 부대 밖으로 멀리 나가기 어려운 장병들이 가족, 친지들과 면회·외박을 할 때 주로 쓰인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A사단 전·현사단장 등 사단 지휘부는 부대원들의 복지를 위해 설치된 이 회관에서 메뉴판에 없는 특별 메뉴와 특별 디저트를 자주 요구했다.
특별메뉴로는 16첩 반상 한정식, 홍어삼합, 과메기, 대방어회 등을 주문했고 회관병이 직접 만드는 수제 티라미수 등 특별 디저트를 지시하는가 하면 식기도 다르게 사용하는 등 여러 특혜를 누렸다고 한다.
실제로 B회관에는 사단장·부사단장·참모장·사단 주임원사 등 사단 지휘부가 주최하는 모임을 위해 쓰이는 별도의 VIP룸이 있었다. 사단장이 참석하는 식사 때는 평소와 다르게 사기그릇과 꽃 모양으로 접은 냅킨이 상 위에 올라갔다고 한다.
군인권센터는 “A사단 지휘부가 지난해 10월 18일부터 올해 7월 15일까지 약 9개월간 B회관에서 총 120회 모임을 가졌다”고 지적했다. 메뉴판에 없는 특별메뉴를 주문한 사례는 12회, 수제 티라미수가 포함된 특별 후식을 제공받은 경우는 45회, 일반 손님에게는 주문받지 않는 양식 코스를 주문한 것이 11회에 달했다. 주말에만 판매되는 돈가스를 평일에 주문하거나 달걀 프라이를 구워 달라고 요구한 경우도 각 1회씩 있었다.
지휘부가 사적 용도로 복지회관을 사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복지회관은 현역 군인이나 군무원·예비역 등 이용 자격이 있는 이와 함께 이용할 때만 민간인이 출입할 수 있다. 하지만 전 사단장은 자신은 참석하지 않고 민간인 교회 장로가 주관하는 12명 식사 자리를 자기 명의로 예약하거나 자신이 다니는 교회 신자들을 위해 메뉴에도 없는 16첩 반상 한정식 25인분을 주문한 적도 있었다.
군인권센터는 “복지회관에서 현역 군인이 사적 모임을 갖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특별 대우를 받거나 자신이 믿는 종교 신자들을 위해 자기 이름으로 회관을 사용하며 특별대우를 받게 해주는 것 등은 명백한 부당 사용”이라고 주장했다.
복지회관을 부당하게 사용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B회관에서는 C대학교 학군단 총동문회 회장 및 임원단의 A사단장 격려 방문 만찬이 열렸다. 당시 식사로 모듬회 등 다채로운 음식이 나왔고, 메뉴에 없는 후식과 수제 티라미수도 제공됐다.
특히 수제 티라미수 위에는 C대학교 로고 모양으로 초콜릿 가루가 뿌려졌는데, 이는 모두 회관병들이 직접 주문받아 만든 것이다. 회관병들은 당시 모임에 사용될 소주병에 대학명이 표기된 커버 스티커를 손수 만들어 붙이라는 기상천외한 요구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복지회관에서 일하는 회관병들은 일반 손님뿐만 아니라 지휘부의 ‘황제식사’까지 대접하느라 주68시간 이상 격무에 시달렸다고 한다. 실제로 회관병 2명은 고된 업무에 시달려 슬개골연골연화증 등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B회관은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 오후 1시, 주말 오전 9시에 영업을 개시해 밤 9시에 마감한다. 하지만 회관병들은 영업을 끝낸 뒤에도 설거지·청소 등 뒷정리를 하다 평균 밤 11시나 밤 12시에 퇴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 행사 준비를 해야 하거나 예약이 많은 경우에는 새벽 2시에 퇴근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군 지휘부의 특별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편제에도 없는 병사 8명이 추가로 동원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군인권센터는 “B회관의 회관병 편제는 2명이지만 총 10명이 근무하고 있다”며 “비편제 병력을 8명이나 복지회관에 데려다 놓고 호화로운 사단 지휘부 접대에 쓰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임태훈 센터 소장은 “복지시설 운영에 병사를 데려다 쓴다는 것은 인력 운영 정책의 관점에서도 맞지 않는다”며 “A사단 지휘부는 싼값에 황제 식사를 (접대)받고 자신의 가족, 지인들에게 혜택을 나눴다.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입대한 병사들을 자기 집 종처럼 부려먹었다는 점에서 명백한 부조리이자 갑질”이라고 비판했다.
이외에도 A사단 지휘부는 수해 실종자를 수색하다 숨진 해병대 소속 고(故) 채수근 상병의 장례가 진행 중이던 지난 21일, 전역하는 참모장 송별회를 명목으로 B회관에 모여 술을 마셨다고 한다.
육군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해당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면서 “복지회관 운영에 관해 제기된 사안을 전반적으로 살피고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법과 규정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엄정하게 취하겠다”고 밝혔다.
또 “육군 내 모든 복지회관을 점검하고 회관병의 복무 여건과 근무 환경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살펴볼 것”이라면서 “이번 사안을 모든 복지회관이 취지에 부합하게 운영되는지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덧붙였다.
선예랑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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