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이 달라졌다, 가을야구가 보인다

시즌 초반 부진을 씻고 KBO리그 데뷔 첫 10승을 달성한 웨스 벤자민. 벤자민이 이끄는 KT도 후반기 반격에 나섰다. [사진 KT 위즈]

프로야구 KT 위즈가 후반기 도약을 노리고 있다. 골칫거리 신세였던 왼손 투수 웨스 벤자민(30·미국)이 뚜렷한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대반격의 선봉에 섰다.

벤자민은 지난 2월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 스프링캠프에서 시속 150㎞의 강속구를 던졌다. 이강철 KT 감독은 개막이 한 달 넘게 남았는데도 “개막전 선발은 무조건 벤자민”이라며 흐뭇해했다. 지난해 6월 대체 선수로 입단해 KBO리그 적응을 끝냈는데, 구속까지 빨라지니 감독이 큰 기대를 할 만했다.

하지만 이강철 감독의 믿음은 시즌이 개막하자마자 실망으로 바뀌었다. 벤자민은 개막전에서 6이닝 2피안타 1실점(비자책)으로 호투하면서 승리 투수가 됐지만, 그 이후엔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4월 평균자책점은 5.60, 5월 평균자책점은 4.26이나 됐다. 무엇보다 오래 던지는 능력이 떨어졌다. 벤자민이 나올 때마다 타선이 터져준 덕분에 자주 승리를 챙겼지만, 이 감독의 속은 타들어 갔다. 또 다른 외국인 투수 보 슐서마저 부진하고, 부상자가 쏟아지면서 KT는 전반기에 최하위로 추락했다.

그러나 부상 선수들이 돌아오면서 KT는 반등하기 시작했다. 슐서를 내보내고 윌리엄 쿠에바스를 다시 영입했다. 그러면서 선발 투수진도 안정감을 되찾았다. 6월 승률 1위(15승 8패)를 차지하더니 7월에도 두산 다음으로 좋은 승률을 기록 중이다. 25일 수원 LG 트윈스전에선 4-1로 이기며 3개월 만에 가을 야구 마지노선인 5위로 올라섰다.

시즌 초반 부진을 씻고 KBO리그 데뷔 첫 10승을 달성한 웨스 벤자민. 벤자민이 이끄는 KT도 후반기 반격에 나섰다. [사진 KT 위즈]

가장 달라진 선수는 단연 벤자민이다. 지난 5일 LG와의 경기에서 5와 3분의 1이닝 동안 1실점으로 호투하더니 11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선 안우진과 선발 대결을 펼쳐 7과 3분의 2이닝 2실점으로 승리했다. KBO리그에 온 뒤 최다 이닝을 소화했다. 25일 경기에선 8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강철 감독은 벤자민에게 “킵 고잉(Keep going, 이대로 계속 하라)”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최근 불펜 운용이 어려운 상황에 놓였던 KT인데, 벤자민이 길게 던져준 덕분에 투수 운용에 여유가 생겼다.

벤자민이 몰라보게 달라진 것은 투구 자세를 수정하면서 제구력이 좋아진 덕분이다. 벤자민은 “올 시즌을 앞두고 구속을 높이려고 팔 각도를 낮췄는데, 그 영향으로 가운데 몰리는 공이 많아졌다. 제구력을 키우기 위해 지난해처럼 팔 각도를 다시 높였다”고 했다. 구속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컨트롤을 신경 쓴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한국 야구와 문화를 습득하기 위한 벤자민의 자세도 적극적이다. 한국어로 말하는 건 물론 한글 읽는 법까지 공부했다. 한국에서 산 지 1년밖에 안 된 선수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우리말을 잘한다. 벤자민은 “지난해부터 한글은 조금씩 읽을 수 있었는데 시즌이 끝난 뒤 공부를 많이 했다.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는 몰라도 모든 한글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벤자민이 가장 즐겨 쓰는 우리말은 “가자”다. 후반기엔 팀도, 자신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22일 후반기 첫 등판에서 승리를 챙긴 뒤엔 목표가 더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그는 또렷한 발음으로 “우승 차지하자”라고 말했다.

◆두산, 12연승 놓쳤다…롯데에 2-7 패=두산 베어스는 26일 잠실 경기에서 롯데 자이언츠에 2-7로 져 연승 행진을 마감했다. 전날 11연승을 거두면서 2008년 롯데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세웠던 KBO리그 1년 차 감독 최다 연승 기록과 타이를 이뤘던 이승엽 두산 감독은 이날 패배하면서 12연승에는 실패했다. 롯데 새 외국인 투수 애런 윌커슨은 5이닝 6피안타 2실점하고 한국 무대 첫 등판에서 승리를 따냈다.

수원=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