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디지털 절벽 온다…공포에 떠는 日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3. 7. 26.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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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론 年 12조엔 손실…뒤늦게 디지털化
‘PayPay’로 ‘삑’ 간편결제…로봇 카페도

지난 7월 12일 오후에 찾은 도쿄 ‘타임스스퀘어’ 시부야역 일대는 활력이 넘쳤다.

이 일대는 도쿄에서 ‘100년 만의 대공사’라 불리는 복합 고밀 개발이 진행 중이다. 대형 복합 개발은 시부야 풍경을 바꿔놨다.

‘일본의 실리콘밸리’를 뜻하는 비트밸리(Bit Valley)라 불렸던 때의 위상을 회복 중이다.

실제 2000년 초반 IT 버블 붕괴 당시 롯폰기힐스 등으로 떠났던 대표 IT 기업 상당수가 시부야로 다시 돌아왔다. 2019년 시부야에 다시 둥지를 튼 구글재팬이 대표적이다.

만남의 장소로 각광받는 역 앞 광장의 충견 ‘하치코’ 동상을 중심으로 인근 빌딩을 구석구석 보노라면 시부야 인상은 180도 달라진다.

‘도큐 플라자 시부야’ 5층에는 소프트뱅크로보틱스(SoftBank Robotics)에서 운영하는 로봇 카페 ‘Pepper PARLOR’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로봇을 기획한 소프트뱅크로보틱스의 하스미 카즈타카 이사는 “AI가 탑재된 페퍼(Pepper)는 메뉴 주문 시에 이용자의 성별, 연령, 그날의 컨디션을 분석해 추천해주는 기능도 있다”고 자랑했다.

디지털 전환 절실한 日

기술 혁신으로 생산성↑

“복잡화·노후화·블랙박스화(폐쇄적 보안 전략)한 기존 시스템이 잔존할 경우, 2025년까지 예상되는 IT 인력의 은퇴, 지원 종료 등에 따른 경제 손실은 2025년 이후 연간 최대 12조엔(현재의 약 3배·한화 약 110조원)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사용자 기업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데이터를 활용할 수 없어 디지털 전환(DX)을 실현할 수 없으며, 디지털 경쟁의 패자가 될 우려가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2018년 9월에 만든 ‘IT 시스템 ‘2025년 절벽’의 극복과 DX의 본격적인 전개’ 보고서에 담긴 문장이다. ‘2025년 절벽’이 다가오고 있음을 강조하는 제목부터 위기감이 감돈다. 보고서 곳곳에는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일본 정부의 절박함이 묻어났다. 총 57페이지에 달하는 문건에는 현재 일본의 디지털 전환 현황과 각 부문별 과제,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지 않았을 경우 영향 등을 총망라했다. 경제산업성은 3년 뒤 2021년 8월 이 보고서를 업데이트한 ‘디지털 전환 리포트 2.1’을 냈다.

이후 일본 정부는 2021년 ‘디지털청’을 설립하고 범정부적으로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각 지자체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디지털 행정 서비스 개선과 AI·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 기술을 서비스에 접목하는 ‘DX 실증실험(PoC) 사업’에 한창이다. 코트라(KOTRA)는 일본의 DX 시장 투자 규모가 2019년 7900억엔에서 2030년 3조4000억엔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 정부가 디지털 전환에 절박한 배경은 이렇다. 일본 제조업 기업 상당수는 해외 생산 기지 구축이 이미 완료됐다. 해외 생산 기지 구축이 완결된 상황에서 일본 기업 유턴을 기대하는 것은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일본 자국 내 신규 설비 투자를 확대할 유인을 만들지 않고는 엔저로 상징되는 금융 정책도 힘을 갖기 힘들다. 본원 통화를 아무리 늘려도 신규 투자가 늘지 않는다면 금융 정책 효과는 반감된다.

2018년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폴 로머 미국 뉴욕대 교수가 주장한 ‘내생적 성장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은 일본 경제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내생적 성장이론’은 기술을 성장을 위한 주요 자원으로 규정하고 기술과 혁신을 통해 잠재성장률 개선을 달성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폴 로머 교수는 여러 논문과 저술 등을 통해 일본 등 선진국의 경제 정책에 대해 “금리 등 통화 정책으로 단기 성장을 높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기술 수준을 높이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사회가 ‘디지털 절벽’의 두려움에 떨며 디지털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은 일본 주요 IT 기업이 밀집해 있는 시부야의 새 랜드마크 ‘스크램블 스퀘어’ 42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배준희 기자)
금융 부문서 디지털 전환 두각

제조 기업도 디지털 플랫폼 속속

일본의 주요 산업별 디지털화를 보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금융이다. 일본정보시스템유저협회의 2020년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업무 프로세스와 상품·서비스 개발의 디지털화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 비중 기준 금융업이 37.5%로 가장 높았다.

실제 일본에서는 현금 기반 결제 시스템에서 캐시리스(Cashless·비현금 결제) 시스템으로 변화 조짐이 뚜렷했다. 도쿄 현지 패밀리마트·세븐일레븐·로손 등 주요 편의점에서는 신용카드 결제는 물론, QR코드나 근거리무선통신(NFC), 애플페이 등으로 대부분 결제가 가능했다. 점원이 물건 바코드를 인식하면 손님이 카운터 외부 디스플레이에서 원하는 결제 방식을 선택하는 식이다. 신주쿠를 비롯 유동인구가 많은 상점에서도 스마트폰이 생성한 바코드나 QR코드를 인식하는 CPM(고객 제시) 결제를 지원한다.

4년 만에 도쿄를 찾았다는 호주 국적의 20대 관광객은 “10만엔 정도를 환전해 현금을 쓴다고 썼지만 절반도 쓰지 못했다”며 “교통권을 끊을 때를 제외하고는 현금이 없어도 불편한 점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모바일 간편결제 페이 시스템의 확산이다. 일본의 결제 시스템을 장악한 페이 시스템은 ‘페이페이(PayPay)’ 앱이다. 도쿄 주요 도심 거의 대부분 가게의 결제 카운터에는 ‘PayPay’라고 써진 스티커가 붙여진 것을 볼 수 있다. 페이페이는 네이버 일본 관계사 라인과 소프트뱅크 자회사 Z홀딩스(야후재팬 운영)가 2021년 3월 통합해 출범시킨 ‘Z홀딩스’에서 운영한다.

일본 제조업에서도 소프트웨어를 통한 부가가치를 키우는 데 주력하는 움직임이 잇따른다. 일본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2020년)가 제조업에 속하는 2만개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디지털 기술 활용 실태에 따르면, 대부분 일본 제조업 기업은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 등의 첨단기술을 활용해 기존 업무를 자동화하는 데 역점을 뒀다. 약 5~8%의 기업은 업무 프로세스 혁신과 새로운 상품, 서비스의 창조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제조 기업 가운데 소프트웨어 기반 디지털 플랫폼 구축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곳도 속속 등장했다. 코마츠제작소(건설기계)의 Smart Construction, 토요타(자동차)의 MSPF, 브릿지스톤(타이어)의 Bridge stone T&D PaaS, 코니카미놀타(정보 기기)의 HitomeQ 케어 서포트, 요코가와전기(계측·제어 기기)의 IA2IA, 화낙(산업용 로봇)의 FIELD System, 후지필름(정밀화학)의 SYNAPSE SAI viewer, DMG모리정기(공작기계)의 ADAMOS, 다이킨공업(공조 기기)의 CRESNECT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가령, 토요타의 MSPF는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을 뜻한다. 자체 데이터센터를 통해 달리는 차량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거대한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토요타는 MSPF를 통해 택시·렌터카·차량 호출 등 각종 업체들에 주행 데이터 정보를 해석·활용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간편결제 서비스 PayPay. (PayPay 제공)
IT 역량 외주화 발목

‘Learning By Doing’ 낯설어

일본의 디지털 전환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일본이 데드라인으로 잡은 ‘2025년 절벽’까지는 불과 2년 남짓 남았다. 회의적인 쪽에서는 일본 기업의 디지털 전환에 본격적으로 불이 타오르기까지 적잖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본다.

스위스 경영대학원 IMD가 발표한 ‘2020년 세계 디지털 경쟁력 랭킹’에서도 일본은 63개국 중 29위로 전년도보다 한 단계 낮아졌다. 이는 2017년 이후 최저 순위다. 특히, 빅데이터랑 AI 활용 부문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런 고민은 일본 정부의 디지털 전략 문건에서도 드러난다. 경제산업성의 ‘디지털 전환 리포트 2.1’에서 꼬집은 일본 기업의 디지털 전환 장애물은 낡은 IT 시스템이다.

대부분 일본 기업은 IT 역량을 조직 스스로 내재화하기보다 IT 서비스 기업에 외주를 맡기는 식으로 분업화했다. 이런 분업 구조 아래 원청 기업은 비용 절감을 추구했고 일감을 수탁받은 IT 서비스 기업은 상대적으로 낮은 리스크 아래 안정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외부 기술 환경이 안정적일 때는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불연속적 기술 변화가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작금의 경영 환경에서는 외주화에 기반한 IT 인프라가 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외주화에 의존해온 원청 기업은 IT 기술 역량을 축적하지 못해 관련 노하우가 빈약하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결국 외주화는 IT 시스템 비대화, 복잡화, 블랙박스화 현상을 초래하고 원청 기업에는 고비용이라는 부메랑으로 돌변해 디지털 혁신에 필요한 설비 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경제산업성도 ‘디지털 전환 리포트 2.1’ 보고서에서 “유저 기업과 IT 서비스 기업 양자는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글로벌 디지털 경쟁의 패자로 전락하는 ‘저위안정(低位安定·낮은 안정성)’ 관계였음이 드러났다”고 결론 내린다.

일본 자동차 제조회사의 한 설계 엔지니어는 “일본은 프로토 타입 하나를 만들 때도 실행하면서 학습하는 ‘Learning By Doing’을 하기보다 완성도 높은 제품을 내놓는 데 주력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만든 적 없는 제품은 양산 직전 아무리 완성도를 높여 만들더라도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던 문제점이 출시 뒤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일본에서는 이를 학습 과정으로 보지 않고 실패로 규정짓는 문화가 아직도 뿌리 깊다”고 진단했다.

민간 싱크탱크인 일본경제연구센터의 미야자키 타카시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는 “IMD 조사에서 AI랑 빅데이터 활용 부문에서 한국의 순위가 높은데, 일본 기업이 본받아야 할 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도쿄 =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9호 (2023.07.26~2023.08.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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