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마다 서는 택배기사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을 때

권진현 2023. 7. 2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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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처럼 "죄송하다" 반복하던 직원... '그럴 수 있지' 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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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현 기자]

"뭐고 이게?"

기존에 쓰던 조리도구 웍의 수명이 다 되어 새 것으로 하나 주문했다. 배송을 받고서 보니 포장박스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내용물이라도 괜찮으면 그냥 쓰려했지만, 열어보니 주문한 웍이 아니라 엉뚱한 팬이 들어있었다.  

간혹 이런 일이 발생한다. 후기를 읽어보면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무료 배송, 빠른 배송을 보장하는 데다가 가격도 저렴하니 이런 잘못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택배를 거의 이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인근 집 앞에 놓여 있는 택배물들을 보면 '택배 서비스가 없는 삶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쿠팡을 얘기하면 소위 '로켓배송'을 위한 극한의 노동, 댓글 조작, 환경 이슈 같은 사회적 문제들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택배 자체가 없는 삶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낯설게 느껴진다. 

그녀가 매 층마다 죄송하다 하는 이유 
 
 사진은 서울 종로구에서 배송작업을 하는 한 업체 관계자의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매일 오후 4시 30분은 6살 둘째가 하원하는 시간이다. 5분 전인 4시 25분이 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아들을 기다린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층마다 일정한 속도로 멈추고 내려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걸어서 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인내심을 갖고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띵동~"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그런데 사람 4명과 빼곡하게 채워진 박스들 사이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초록색 카트 위로 천장에 닿을 것처럼 쌓인 종이박스들이 위태로워 보였다. 택배기사가 들고 있는 커다란 백은 자질구레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타기는 했지만 불편했다. 요즘 같이 뜨겁고 습한 날씨에 서로의 몸이 부딪히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박스들이 벽 전체를 가리고 있어서 버튼을 누르기도 힘들었다. 카트가 움직일 때마다 불안하게 흔들리던 박스들은 언제든 쏟아질 것만 같았다. 

더 큰 스트레스는 하강 속도였다. 29층부터 1층에 도착하기까지 엘리베이터는 20번이나 멈춰 섰다. 택배기사는 문이 열릴 때마다 후다닥 나갔다가 집집마다 물건을 놓고 오는 것을 반복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수고로 택배는 배송되고 있다.
ⓒ 픽셀
 
택배기사는 여성이었다. 앞이 보일 것 같지도 않게 푹 눌러쓴 모자너머 보이는 앳된 얼굴. 몸집도 무척 작았다. 배송물량이 가득한 카트와 커다란 백을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한 번의 물량으로 보기에는 택배박스가 너무 많아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언뜻 봐도 일이 서툴어 보였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뛰쳐나가도 시원찮을 판에, 오가면서 몇 번이나 송장을 훑어봤다. 아파트에 살면서 택배기사들을 많이 봤는데, 불편함을 넘어서서 '일을 잘 마칠 수 있을까, 저 분 괜찮을까' 걱정이 드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오가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한 번만 하는 게 아니라 층마다 죄송하다는 말을 두 번씩이나 반복했다. 불편함은 조금씩 익숙해졌지만, 택배기사의 죄송한 표정과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이정도면 없던 잘못도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배박스와도 같은 노동, 노동자

앵무새처럼 계속되는 '죄송합니다' 소리를 들으며 수많은 감정노동자들이 떠올랐다. 고객은 왕이 아닌 데도, 왕처럼 행세하는 고객들을 위해 죄송해야만 하는 사람들. '누군가의 아들, 딸일 수 있습니다' 하는 문구를 비웃는 듯한 폭언과 욕설에 고스란히 노출된 근로자들. '고객만족도 1위 기업' 같은 타이틀은 이들의 피와 땀, 눈물로 완성되어 간다.

굳이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그녀가 그토록 죄송하다고 반복한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첫째, 그녀는 물건을 배송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서 일부 주민에게 불편을 주었다. 둘째, 하필 직장이 업계에서 힘들기로 유명한 '쿠팡'이라는 것이었다. 셋째, 아직 일이 손에 완전히 익지 않았다. 박스 1개를 배송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초단위로 더 쪼갤 수 있을 때까지, 그녀는 더 많은 죄송함을 느껴야 하리라. 

고객은 비용을 지불하고 기업은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한다. 거래가 발생함으로써 고객은 만족을 느끼고 기업은 이윤을 얻는다. 모두가 윈윈 하는 순간이다. 거듭 '죄송합니다'를 말하던 택배기사는 어떨까?

회사 입장에서는, 근무자의 업무수행능력이 부족하면 내치면 그만이다. 매 층마다 덜컹거리며 흔들리던 박스는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그녀의 포지션과도 비슷해 보였다. 어쩌면 그녀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일을 먼저 그만둘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나처럼 한 집안의 가장이라면 쉽게 그만두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당장의 생존을 위해 노동이 강요되는 사람에게 자신을 아끼고 돌아볼 여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처음 느꼈던 불편함은 점차 '어떻게 하면 택배기사가 덜 미안해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글을 통해 배우는 '그럴 수 있지'
 
 다른 사람의 삶을 더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들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 픽사베이
   
최근 온라인 글쓰기와 합평 모임을 하고 있다. 10명이 2주마다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쓰고 각자 합평을 남긴다. 동일한 주제로 글을 쓰지만 결과물은 제각각이다. 다른 이의 글을 읽을수록, 단어와 문장을 넘어 개개인의 삶을 만나게 된다. 다양한 삶을 만나다 보면 평소에 느끼던 불편함들을 '그럴 수 있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일이 서툴렀던 그녀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기는 힘들겠지만, 그 부담을 조금만 내려놔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내가 알지 못했던 다양한 삶에 대해 좀 더 여유로운 태도를 가질 수 있다면, 수많은 죄송하고 불편한 마음들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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