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보다 '입'이 화 불렀다…'당원권 정지' 체면구긴 홍준표

김준영, 전민구, 김은지 2023. 7. 2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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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위원장 황정근 변호사)가 26일 ‘수해 골프’ 논란을 일으킨 홍준표 대구시장에게 ‘당원권 정지 10개월’ 중징계를 내렸다. 윤리위 결정으로 광역자치단체장이 당원권 정지 이상의 징계를 받은 건 처음이다. 홍 시장은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아 당원권 정지 자체로 인한 권리 제약은 크지 않다. 하지만 “대선 주자급 ‘빅샷’인 홍 시장 입장에선 정치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은 처분”이란 평가가 나온다.

홍준표 대구시장. 사진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비공개 면담을 하고 나와 기자들에게 발언하는 모습. 뉴시스


윤리위는 이날 오후 5시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전체회의를 열어 1시간 30분가량 회의 끝에 이 같은 처분을 내렸다. 황 위원장은 회의를 마친 뒤 “국민과 함께하고 공감해야 할 집권당 선출직 공직자가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을 하고 급기야 민심에 맞서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민심을 떠나게 하는 해당 행위”라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지난 18일 김기현 대표가 진상조사를 지시한 지 8일 만에, 지난 20일 윤리위가 징계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한 지 6일 만에 초스피드로 진행됐다.

윤리위는 징계 근거로 ‘자연재해 시 골프 등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당 윤리규칙 22조와 ‘해당 행위나 법령 등의 위반으로 민심 이반 등의 문제를 일으켰을 때 징계할 수 있다’는 윤리위 규정 20조를 제시했다. 황 위원장은 “윤리적인 측면에서 엄정한 조치를 취한 것은 정당이든 정치인이든 민심을 얻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헌·당규상 징계 수위는 ▶경고 ▶당원권 정지 ▶탈당 권유 ▶제명 등 4단계로 나뉜다.

이번 징계는 홍 시장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 집중호우로 전국적 피해가 발생한 지난 15일 대구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당내 여론이 들끓진 않았다. 하지만 홍 시장이 “주말에 골프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냐”, “트집 잡혔다고 내가 잘못했다 할 사람이냐”고 정면 대응하면서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사진 홍준표 페이스북 캡처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하자 홍 시장은 지난 19일 대구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개 숙여 사과했지만 이튿날 페이스북에 “과하지욕(袴下之辱)”이란 글을 올리면서 도로 당내 불만을 증폭시켰다. 과하지욕은 중국 전한(前漢) 개국 공신인 한신(韓信)이 출세 전 동네 건달에게 “내 가랑이 밑을 기어라”는 모욕적 언사를 듣고도 그대로 행해 놀림감이 된 것에서 비롯된 말이기 때문이다. 황 위원장도 ‘과하지욕 발언도 징계 수위에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그런 제반 사항이 들어갔다”고 답했다.

징계가 결정되자 홍 시장은 곧바로 페이스북에 “더 이상 이 문제로 갑론을박하지 않았으면 한다. 더 이상 갈등이 증폭되고 재생산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나는 아직 3년이라는 긴 시간이 있다”고 적었다. 다음 지방선거까지 3년이 남았다는 뜻이다.

한나라당과 자유한국당 시절 대표를 두 번 역임하고, 2017년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도 뛰었던 홍 시장은 지난 대선 경선 때 ‘홍카콜라(홍준표+코카콜라)’ 이미지로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런 대선 주자급 홍 시장이 당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으면서 향후 정치 행보는 기로에 섰다. 지도부 소속 친윤계 의원은 “다른 문제도 아니고 수십명의 국민이 목숨을 잃은 수해 때 처신으로 징계를 받아 대중적 체면을 구긴 것”이라며 “차기 대선에 나가더라도 이 문제가 계속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시장은 경남지사 시절인 2015년 7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지며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기까지 1년 8개월 동안 당원권이 정지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기소되면 자동으로 당원권이 정지되는 당헌·당규에 따른 조치였고, 이번엔 윤리위 결정으로 당원권이 제한됐다는 점에서 정치적 타격이 더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욱이 징계 국면에서 당내 우군이 적다는 점도 노출됐다. 통상 징계를 앞두고 당 지도부와 윤리위원들이 관련 언급을 삼가는 게 관례지만 이번엔 “과거 자연재해 때 골프를 치고 제명을 당한 사례가 있다”(유상범 수석대변인)거나 “당의 이미지를 실추하는 해당 행위”(황정근 위원장)라는 말이 공개적으로 연일 나왔다. 홍 시장을 엄호하는 공개 발언은 “중징계는 아니었으면 좋겠다”(하태경 의원)는 정도였다.

황정근 국민의힘 윤리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윤리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당초 당원권 6개월 정지 예측이 우세했지만 10개월 정지로 결정된 것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윤리위 회의에선 ‘1년 정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컸지만 홍 시장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수해 복구에 나선 점이 참작됐다고 한다. 지도부 관계자는 “10개월 정지 처분을 내린 건 적어도 내년 4월 총선 직후까지 입을 닫고 있으란 뜻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영남권의 한 의원도 “홍 시장이 안 그래도 ‘내년 총선에서 대구·경북(TK)은 50%를 물갈이해야 한다’고 말해 불만인 사람이 많았다”며 “이젠 당무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지난해 징계 과정에서 극심한 내홍을 불렀던 이준석 전 대표가 당원권 정지 1년을 받은 것과 비교해 “이준석 전 대표에 비해선 징계 수위를 낮게 해준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치적 타격에도 불구하고 홍 시장 특유의 ‘독고다이’ 스타일로 위기를 극복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홍 시장과 가까운 영남권 의원은 “홍 시장은 대표 시절인 2018년 지방선거 때 당 후보들로부터 ‘우리 지역엔 지원 유세 오지 말라’는 왕따 생활을 겪었고, 2020년 총선 땐 공천 탈락까지 했지만 결국 대선주자급으로 다시 살아났다”며 “이번 징계도 홍 시장이라면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영·전민구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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