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잃을 게 없어"…묻지마범죄 공포 먼저 겪은 일본의 경험
사회서 배제된 이들, 되려 사회에 반기
"국가가 묻지마 범죄의 동기 찾아내야"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지난 21일 서울 신림역 인근에서 흉기 난동을 부려 일면식 없는 사람을 살해한 조선(33)이 취재진 앞에서 한 말이다. 최근 불특정 다수에게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르는 '묻지마 범죄'가 잇따르면서 시민 사회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묻지마 범죄는 비단 국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이웃 나라인 일본도 2000년대 초 명확한 동기 없이 다른 사람들을 살해하는 범죄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이들을 두고 '무적의 사람(無敵の人)'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다. 일찍이 사회에서 낙오돼 더는 잃을 게 없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형사 처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을 불행하게 만들고 싶다" 잇따르는 묻지마 범죄
경찰에 따르면 조선은 집 인근 마트에서 흉기 2개를 훔친 뒤, 신림역으로 가 흉기를 휘둘렀다. 그의 범행으로 20대 남성이 숨을 거뒀고 30대 남성 3명도 상처를 입었다. 그는 범행 후 인근 스포츠센터 앞 계단에 앉아있다가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조사에서 그는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라며 "분노에 가득 차 범행했다"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특정인에게 증오심을 품은 게 아니라, 별다른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흉기를 휘둘렀다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범죄 행위는 한국 사회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이를 '이상동기 범죄'로 규정하고 특별팀을 구성해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올해에만 여러 건의 이상동기 범죄가 발생했다. 지난 5월 부산에선 한 30대 남성이 일면식 없는 20대 여성을 폭행한 일명 '돌려차기남' 사건이 벌어졌고, 같은 달 26일에는 정유정(23)이 또래 피해자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져 논란을 빚기도 했다.
日 '무적의 사람'…"잃을 게 없어 범죄도 망설임 없다"
묻지마 범죄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 동기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누구나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고 예측도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묻지마 범죄가 잇따르자 온라인 쇼핑몰에선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호신용품을 찾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런 묻지마 범죄는 비단 한국에서만 화두에 오른 게 아니다. 이웃 나라인 일본도 2000년대 초부터 묻지마 범죄로 몸살을 앓은 바 있다.
희생자 수가 큰 대형 사건도 많다. 2008년 일본 유명 번화가 '아키하바라'에선 한 남성이 트럭으로 횡단보도에 끼어들어 사람들을 친 뒤, 차에서 내려 행인들을 마구 찌르는 사건이 벌어져 7명이 사망했다. 2021년 11월에는 영화 '배트맨' 속 악당 '조커' 복장을 한 남성이 지하철에서 흉기 난동 및 방화를 시도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 사건으로 17명이 부상을 입었다.
체포된 이들이 경찰에 진술한 범행 동기는 대체로 유사했다. "삶에 지쳤다", "행복한 사람을 보면 죽이고 싶다" 등이다. 이들 대부분은 사회에서 고립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런 범죄자를 두고 '무적의 사람'이라는 인터넷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신조어는 일본 최대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2ch(2채널) 설립자이자 인터넷 사업가인 니시무라 히로유키가 처음 고안했다. 그는 무적의 사람에 대해 "사회적으로 잃을 게 아무것도 없어 범죄도 망설임 없이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무적의 사람을 두고 '사회가 인간을 배제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유튜브 방송에서 히로유키는 "일본은 매년 대략 2만명의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한다. 이들은 사회로부터 배제된 이들"이라며 "하지만 사회가 인간을 배제하면, 결국 인간이 사회에 반기를 드는 것은 아닐까. 배제된 인간이 '사회의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서도 '무적의 사람' 재현될까…"젊은 청년들 더 적극적 관리 필요"
일본 '무적의 사람'은 국내 이상동기 범죄자들과도 일부 유사한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도, 정유정도 '사람들이 행복한 게 싫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2021년 경찰청과 한국문화및사회문제심리학회가 주최한 관련 세미나에 따르면, 2017년 이상동기 범죄자를 분석한 결과, 전체 48명 중 31명은 3040 세대였고, 또 35명은 월평균 소득이 아예 없는 이들로 확인됐다.
전문가는 이런 범죄를 두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이 만든 범죄'라고 평가한다. 승재현 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지난 2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조선, 정유정 등은) 또래에 대한 개인적 분노가 쌓여있었다. 열등, 분노, 시기, 질투가 만든 범죄"라고 했다.
또 승 박사는 "개인사라서 조심스럽지만, 정유정과 조씨 모두 '목적지향적 삶'이 없었다"라며 "정유정도 그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다), 조씨도 똑같은 상황이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저는 '묻지마 범죄'는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그 동기를 찾지 못한 것"이라며 "그 공통성을 찾아내면 이 사람들을 찾아내고 어떻게 지원할지 알 수 있다"라며 "국가가 젊은 청년들에 대해 더 적극적인 관리, 혹은 정보에 대한 어떤 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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