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학" VS "고증 거쳤다"…역사 전쟁 불붙은 '전라도 천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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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전북, 24억 들여 공동 편찬
광주광역시, 전남·북도 등 호남 3개 광역자치단체가 공동으로 편찬한 『전라도 천년사』를 두고 '역사 전쟁'이 한창이다. 일부 시민단체는 "식민사학을 추종했다"고 반발하며 역사서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편찬위원회 측은 "비판적 고증을 거쳤다"고 맞서면서 찬반 논란이 뜨겁다.
편찬위는 26일 전북도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전라도 천년사』에 대한 이의 신청을 지난 4월 24일부터 이달 9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73명으로부터 157건 접수했다"며 "의견 대부분이 마한 존속 시기와 가야사 관련 『일본서기』 지명 사용 등 고대사에 집중됐다"고 밝혔다. 편찬위는 '역사 왜곡' 논란이 일자 의견 수렴에 나섰다. 편찬위 측은 "다음 달 3개 지자체에서 모두 세 차례 공개 학술 토론회를 열어 접수된 의견을 검증하겠다"며 "토론 결과를 반영해 별책을 제작할 방침"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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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34권…전라도 5000년 역사 담아"
이날 바른역사시민연대·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광복회 광주지부 등은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식민사관이 녹아 있는 『전라도 천년사』 34권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대체 『전라도 천년사』는 어떤 책이기에 이렇게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을까.
호남 3개 지자체는 전라도 정도(定都) 1000년을 맞아 "전라도 역사·문화를 알리는 안내서를 통해 상생의 길을 모색하자"며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각각 8억원씩, 24억원을 들여 『전라도 천년사』 편찬 사업을 추진했다. 역사·문화·예술 등 각 분야 전문가 213명이 집필진으로 참여해 지난해 11월 총 34권, 1만3559쪽에 달하는 책을 완성했다.
당초 1000년에서 5000년 역사를 아우르면서 ▶선사·고대 ▶고려 ▶조선 전기 ▶조선 후기 ▶근대 ▶현대 등 시대별로 전라도 역사·문화를 담았다. 김관영 전북지사는 발간사에서 "지역에 대한 정체성과 자긍심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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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일본서기 지명 인용…역사 왜곡"
그러나 광주·전남·전북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전라도오천년사바로잡기500만전라도민연대(이하 도민연대)' 등은 『전라도 천년사』가 일제 식민사관인 '임나(任那)일본부설' 근거로 쓰인 『일본서기』 일부 지명을 인용한 걸 문제 삼았다. 임나일본부설은 4세기 중엽에서 6세기 중엽까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통치했다는 학설이다.
도민연대 측은 "편찬위가 전북 남원을 '기문', 전북 장수와 경북 고령을 '반파', 전남 강진·해남을 '침미다례', 전남 구례·순천을 '사타'라는 임나 지명으로 기술해 전라도민을 일본인 후손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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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위 "일본서기 비판적 활용…역사 복원"
지역 정치권도 잇따라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지난 5월 1일 광주광역시의회를 시작으로 정읍시의회를 비롯한 호남권 일부 지방의회와 국회의원 등이 『전라도 천년사』 재집필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편찬위 측은 "식민사학을 추종한다는 건 문헌적·고고학적 근거가 없는 일방적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편찬위 측은 "임나 지명의 경우 『일본서기』(720년)가 나오기도 전인 서기 400년 광개토왕비문에 이미 기록돼 있고, 중국 기록(660년)과 『삼국사기』에도 사용됐다"며 "한국 학계는 일찍부터 『일본서기』 자료를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비판적으로 활용해 우리 역사를 복원하는 데 참고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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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 서울대 교수 "전문가-비전문가 싸움"
역사학계 안팎에선 "『전라도 천년사』를 둘러싼 논쟁이 학문·논리·팩트가 아니라 대중의 반일 감정을 이용한 여론몰이로 변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역사는) 학문 영역이니 학문적 룰을 따라야 하는데 전문가와 비전문가 간 싸움이 됐다"며 "역사 논쟁이 '국수주의'로 흐르는 건 G7 국가 등 선진국엔 없는 독특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전주·광주광역시=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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