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茶 이야기’] 차금(茶金) | ‘동방미인’은 어떻게 ‘동방미인’이 되었나

김소연 매경이코노미 기자(sky6592@mk.co.kr) 2023. 7. 2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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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ental Beauty’ 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는지? 이 단어를 아는 당신은 차 ‘쫌’ 아시는 분이다.

대만을 대표하는 차 ‘동방미인’에 관한 대만 드라마가 요즘 화제다. 왓챠와 웨이브에서 방영 중인 12회짜리 드라마 <차금>이다. <차금>의 영어 제목은 ‘Gold Leaf’. ‘찻잎이 곧 금’이던 시대를 의미한다.

차금의 시대 배경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대만에서 물러간 이후 중국 본토에서 제2차 국공합작이 깨지면서 장개석정권이 대만으로 들어온 시기다. 이후 1960년대 초까지 혼란한 대만 사회에서 좋은 차를 만들고 수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茶의 神’으로 불리는, 대만 차 업체 ‘르광’의 사장 장푸지와 그의 딸 장이신이 주인공이다. 장푸지는 데릴사위를 데려와 차업을 물려주려하지만, 장이신은 아버지 뜻대로가 아닌 자기 선택에 의해 결혼을 거부하고 차업을 이어받아 대만 차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주역이 된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이 정도. 장이신이 좌충우돌 여러 여러움을 겪어가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진정한 茶의 神으로 성장한다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차 회사를 운영하는 만큼 자연스레 대만의 차 역사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현재 우롱차의 대표적 생산 국가인 대만 차의 위상은 1도 찾아볼 수 없다.

그 시절 대만은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엄청났던 홍차를 주로 만들어 수출했다. 당시 전 세계 시장의 무려 80%를 홍차가 차지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15%는 녹차, 나머지 5% 시장을 이런저런 차가 차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대만도 주로 홍차를 만들었다. 그러나 인도 아쌈차를 위시해 인도가 홍차 생산지의 주역으로 올라서면서 대만 차 수출 공장들은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그렇다고 차를 만들지 않을 수는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홍차에 뒤이어 다음으로 커다란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녹차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때 장이신은 “홍차도 녹차도 아닌, 대만이 원래 만들던 우롱차로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싶다”는 꿈을 밝힌다. 다른 이들은 실컷 비웃는다.

“전 세계 시장의 80%는 홍차이고 15%는 녹차인데, 2%도 안 되는 우롱차 시장을 노리자는 건가요?” 하면서.

그런 비웃음을 뒤로하고 장이신은 대만 우롱차의 대표주자인 동방미인을 들고 세계박람회에 참가한다. 세계박람회에서 호평을 받은 동방미인은 1등상을 받고 그렇게 대만차의 ‘글로리’가 시작된다. 지금 우롱차는 전 세계 시장의 17%를 차지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실제 역사에서는 1960년 영국에서 열린 세계음식박람회에서 동방미인이 2등상을 받는다)

‘동방미인’의 원래 이름은 ‘팽풍차’다. ‘팽풍’은 ‘허풍’이라는 뜻이다.
이후 대만 우롱차가 조금씩 존재감을 알리고 인기를 끌면서 대만은 차를 좀 더 잘 수출하기 위한 다양한 기계와 방법을 고안해낸다. 대만에서는 차를 압병하지 않는다. 보이차는 보통 357g 무게의 동그란 모양으로 만드는데, 이런 모양의 차를 병차라 한다. 병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잎으로 만든 차에 증기를 씌우고 압력을 가해 동그랗게 모양을 만든 후 위에서 눌러줘야 한다. 이 과정을 ‘압병한다’고 부른다. 대만차는 압병하는 대신 찻잎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다. 이런 차를 산차(흩어진 차)라 부른다.
“세계 시장의 80% 홍차·15% 녹차… 우롱차 2% 미만”
‘동방미인’ 앞세워 현재 우롱차 세계 시장 17% 차지
산차는 병차에 비해 부피가 클 수밖에 없다. 대량으로 수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별로 좋은 조건이 아닌 셈. 대만 사람들은 산차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 산차를 동글동글하게 말았고(이를 포유라 부른다) 1992년에는 포유하는 기계인 ‘포유기’도 만들어낸다. 포유기를 통해 작고 동글동글하게 말려진 차는 알루미늄박 봉투에 넣어 밀봉된다. 이렇게 포장하면 오랜 기간 배를 타고 운반되는 과정에서도 차가 변질될 우려가 없어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만차는 전 세계로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우롱차 점유율 17%라는 영광스러운 결과물까지 이끌어낸다.

대만 차는 그 뿌리가 중국 복건성에서 기원한다. 대만이 원래 복건성의 부속섬이었음을 감안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복건성은 중국에서 청차를 주로 만들던 곳이다. 당연히 대만에서도 청차가 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대만에서는 청차 중에서도 청심오룡 같은 오룡차(오룡의 중국어 발음이 우롱이다)를 주로 재배했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 편입되기 이전 대만이 ‘우롱차’라는 이름으로 차를 전 세계에 수출했고, 그렇게 우롱차가 전 세계에 유명해졌다. 훗날 중국이 세계 무대에 나오면서 청차를 수출하려 보니 이미 전 세계에서 우롱차라는 이름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중국은 “원래 청차다”라고 바로잡으려는 대신 우롱차라는 이름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지금까지 청차의 영어 표기가 ‘Blue tea’가 아닌 ‘Oolong tea’다.

대부분 대만차가 중국에서 기원했지만, <차금>의 주인공 쯤 되는 동방미인만은 대만이 원조인, 순수 대만 차다. 배경이 있다.

보통 차는 봄에 만든다. 그런데 동방미인은 6월 중순 이후~7월 초에 여름차를 만든다. 대만 신죽지역의 한 농부가 게으름을 피우다 차밭에 농약 뿌리는 시기를 놓쳤다. 어느 날 밭에 나가보니, 아뿔싸~ 차밭에 웬 연두색 벌레가 잔뜩 끼어 찻잎을 갉아먹고 있는 게 아닌가. 여기저기 벌레 먹힌 찻잎으로 차를 만들 수는 없는 일. 그런데 이상하게도 찻잎에서 뭔가 좋은 향이 났다. 1년 농사를 망치게 생긴 농부는 한숨을 쉬다 일단 그 찻잎으로 차를 만들었다. 꽤 좋은 향과 맛이 났지만 벌레 먹은 찻잎으로 만든 차를 팔 자신이 도무지 없었던 농부는, 자기를 아는 사람이 없는 먼 곳에 차를 팔러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차향이 너무 좋다는 평을 들으면서 평소 그가 팔던 차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차가 모두 팔려나갔다.

함박 웃음꽃을 피우며 돌아온 농부가 이 얘기를 하자 모두들 비웃었다. “허풍이 세다”며 심지어 그 차를 ‘허풍차’라 불렀다. 동방미인의 맨 처음 이름이 그래서 ‘팽풍차(팽풍은 허풍이라는 뜻)’다. 그런데 몇 달 뒤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 “그 향기 좋은 차를 다시 만들어주면 만들어주는 만큼 다 비싼 값에 사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 차농들이 앞다퉈 동방미인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스토리가 전해 내려온다.

그런데 벌레 먹힌 찻잎으로 만든 차가 어떻게 그렇게 기가 막힌 향을 내는 걸까. 동방미인의 비결은 ‘소록엽선’이라 불리는 벌레에 있다. 소록엽선이 찻잎을 갉아먹으면 찻잎은 달달한 향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물질을 대량으로 만들어낸다. 과거에는 그 메커니즘을 몰랐는데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 물질은 바로 소록엽선의 천적인 흰눈썹껑충거미를 불러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점에서 짐작해볼 수 있는 ‘팁’이 하나 있다. 예전엔 벌레가 끼지 않게 하기 위해 농약을 쳤지만, 동방미인은 벌레에 먹혀야 하기 때문에 농약을 치지 않는다. 적어도 제대로 된 동방미인 차는 농약 걱정 없이 편하게 마실 수 있다는 의미다.
‘동방미인’차는 ‘소록엽선(가운데 사진)’이라는 벌레가 먹은 찻잎으로 만든다. 벌레 먹은 잎으로 만들기 때문에 완성된 차의 색상이 얼룩덜룩하다(왼쪽).
중국에서는 ‘귀비(양귀비)우롱’이라는 유사 차도 생산
‘東方美人’ 아닌 ‘東方美仁’이라 이름 붙인 짝퉁차도 많아
처음에 ‘팽풍차’라 불렸던 동방미인은 다양한 이름을 갖고있다. 어린잎으로 만드는 동방미인은 찻잎에 하얀 털이 많이 붙어 있다.‘백호(白毫)’라 불리는 하얀 털은 어린잎의 특징이다. 그래서 ‘백호오룡’이라고도 불린다. 잘 만든 동방미인은 갈색, 녹색, 붉은색, 흰색, 검은색 5가지 색깔의 찻잎이 모두 들어 있다 해서 ‘오색차’라는 이름도 붙었다. 샴페인 향과 맛이 난다 해서 ‘향빈우롱(향빈은 중국어로 샴페인이라는 의미)’이라고도 한다. 워낙 달달한 맛이 난다 해서 ‘蜜(꿀 밀)’ 자를 붙여 ‘밀향오룡’이라고도 부른다.

동방미인차가 워낙 유명해지면서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귀비우롱’이라는 일종의 ‘짝퉁차’를 만들어냈다. 물론 향이나 맛에서 따라오지 못한다. (이름이 왜 귀비우롱이냐고? 중국의 미인을 떠올려보시길. 첫손에 꼽히는 미인이 양귀비다. 그래서 ‘귀비우롱’이다.) 심지어 원래 한자인 ‘東方美人’ 대신 ‘東方美仁’이라 이름 붙여 판매하는 짝퉁차도 있다.(‘東方美仁’은 중국 차 파는 매장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고, 또 차를 잘 모르는 많은 관광객이 ‘저렴한 가격에 좋은 차’라는 설명을 듣고 많이 구입한다.)

대만에서 동방미인 산지는 ‘신죽’ ‘묘율’ ‘도원’이 대표적이다. 왼쪽이 ‘신죽’, 가운데가 ‘묘율’ 동방미인. 오른쪽은 중국의 짝퉁차 ‘東方美仁’.
팽풍차라 불렸던 동방미인은 그런데 어떻게 ‘동방미인’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얻게 됐을까. 영국 여왕이 이 차를 마시고 ‘동방의 미인 같은 차’라고 감탄해서 ‘동방미인’ 이름이 붙었다나. 대충 감탄사 조로 “Beautiful” 했을지도. 믿거나 말거나지만 어쨌든 동방의 미인 같은 차 ‘동방미인’은 오늘날 대만을 대표하는 차로 올라섰다.

‘동방미인’이 대만 차를 이끄는 대표상품인 만큼 대만의 동방미인 품질을 유지하고 더 잘 만들기 위한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게다가 대만에서는 차 산업이 반도체에 이은 주요한 산업이다.) 대만에서 많은 차가 시합이라는 의미의 ‘비새’ 과정을 거쳐 등급이 매겨지고 그 등급에 따라 가격이 달려진다. 동방미인도 마찬가지다. 7월 초까지 만들어진 각 다원의 동방미인은 7월 말~8월 초 쯤 비새에서 품질을 겨룬다. 출품된 차 중 2~2.5%가 최고 등급인 ‘두등장’에 선정된다. 8~10%는 이등장, 17%까지 삼등장 라벨을 달 수 있다. 그다음 50%까지에는 ‘우량장’이라 표기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데 우량장을 또 세 등급으로 나눠 매화 1개, 2개, 3개로 구분한다(매화는 대만의 국화). 매화 3개가 제일 높은 등급이고 2개, 1개 순이다. 가격은 철저하게 등급에 따라 달라진다.

최고 등급 두등장도 다 같은 두등장이 아니다. 두등장 중 최고점을 받은 11개 차에 순서대로 특등장부터 두등장 1~10까지 번호가 매겨진다. 그리고 나머지 차는 그냥 뭉뚱그려 두등장이다. 특등장은 물론 두등장 1~10은 주로 러시아와 중국 부호들이 엄청난 가격에 구입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인이 그나마 접근할 수 있는 최고 좋은 차는 나머지 두등장인 셈이다. 대만에서 동방미인의 주요 산지는 신죽, 묘율, 도원 등 세 곳인데 그중 가장 유명한 신죽의 동방미인 두등장 75g의 대만 현지 가격이 50만원 선이다. 그 차가 한국에 들어와 유통 비용 붙고 관세 붙으면 가격이 얼마나 튈지는 독자 여러분 상상에 맡기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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