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한계 온다"…파업 14일째, 의료진도 "이해 어렵다" [르포]
지난 25일 오후 2시쯤 부산시 서구 아미동 부산대병원. 혈액암을 앓는 80대 노모를 모시고 혈액종양내과 대기실을 찾은 A씨(50대)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기 환자 이름과 진료 순서를 띄워주는 모니터를 연신 보던 A씨는 “평소 2시간 정도 예상하고 내원한다. 오늘은 1시간 지나도록 모니터에 (어머니) 이름조차 뜨지 않아 언제 진료를 받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7년 전 이 병원에서 혈액암 수술을 받은 그의 어머니는 추적 관찰을 위해 2달에 한 번 병원을 찾는다. 하염없이 길어지는 대기 시간에 노모가 미안한 듯 “눈이라도 좀 붙이라”고 했지만, A씨는 말없이 대기 환자 모니터를 응시했다.
파업만큼 길어진 대기시간, 행정 간호사도 현장 뛴다
부산대병원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지 14일째를 맞은 가운데 환자·보호자, 의료진 등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이날 혈액종양내과 외래 환자 대기실에서 만난 간호사 B씨는 밀려드는 환자 응대에 진땀을 쏟고 있었다. 24년 차 간호사인 B씨는 본래 행정 부서에서 근무한다. 하지만 파업이 길어지자 지난 17일부터 의료진에 합류했다.
“다음 주가 버틸수 있는 한계”
혈액종양내과엔 고령 환자가 많다. 입원이 불가능해 홈 펌프(환자가 자택에서 항암 주사를 맞는 장치)를 차고 이틀에 한 번 찾는 노인을 보는 것도 B씨에겐 고통이다. 평소라면 2, 3일간 입원해 항암 주사 등 필요한 처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파업으로 입원하지 못하게 된 환자는 폭염과 소나기성 강우를 뚫고 와야 한다.
파업 전 부산대병원을 찾던 외래 환자는 하루 4700명 수준이었다. 초기 절반까지 떨어졌던 진료율은 이날 80% 수준을 회복했다. B씨처럼 본래 업무를 제쳐놓고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헌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환자와 남은 의료진이 부담을 떠안는 ‘임시 처방’을 유지하는 건 오래 가기 어렵다고 한다. 그는 “지원 근무에 나선 인력도 체력이 한계에 달했다. 다음 주를 넘어가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에 뛰어든 동료들에 대해선 “(파업 취지를) 일부 공감하지만, 완전히 이해하긴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노조는 “불법 의료 판친다” 폭로전
이날 부산대병원지부는 의사 대신 간호사가 처방ㆍ진단하는 등 불법 의료 문제가 부산대병원 내부에 만연하다고 주장했다. 병원 근무 간호사라고 밝힌 발표자들은 흰색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다. 부산대병원 측은 “일부 대리처방 등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다. 국내 다수 대형 병원이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지난 13일 시작한 총파업을 이틀 만에 접었다. 하지만 부산대병원지부는 임금 10.7% 인상, 인력 160여명 충원 등을 주장하며 파업을 계속하고 있다. 또 용역 비정규직 501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한다. 사측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파업 이후 노사는 여러 차례 실무 교섭을 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파업 장기화로 시민 피해가 커질 가능성에 부산시 중재 등 ‘역할론’도 제기됐다. 하지만 부산시 관계자는 “노동청 문의 결과 이번 파업이 합법적인 것이며, 시가 직접 개입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답변을 받았다”며 “진료 공백을 줄이기 위해 인접 대학병원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했다.
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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