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 벗어나려 잔꾀 부린 조직폭력배 29년 만에 쇠고랑

장선욱 2023. 7. 2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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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밀항시기 거짓말 했다가 들통.
29년 만에 살인죄 드러나 재판 넘겨져.

지난 1994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반대파 폭력조직원을 보복 살해한 나주 영산파 행동대원 2명이 29년 만에 법정에 서게 됐다. 살인사건 공소시효 만료를 노리고 밀항 시기를 거짓 진술했다가 검찰의 끈질긴 수사 끝에 붙잡혀 살인죄로 처벌을 받게 됐다.

검찰은 범행 직후 잠적했다가 중국으로 밀항한 행동대원이 지난해 3월 현지 영사관에 자수한 뒤 귀국한 사실을 파악하고 진위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살인죄 공소시효(형벌권 소멸)를 넘겼다는 것을 내세워 처벌을 피하고자 밀항 시기를 실제보다 13년 늦춰 진술한 사실을 밝혀내 기소했다.

광주지검 반부패강력수사부은 26일 살인·살인미수 혐의로 구속해 재판 중인 영산파 행동대원 서모(55)씨를 밀항단속법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같은 혐의로 수사해온 영산파 행동대장 정동섭(55)씨를 공개 수배했다.

검찰에 따르면 서씨는 1994년 12월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뉴월드호텔 앞에서 1991년 전 영산파 두목을 살해한 광주 신양파 조직원 2명을 보복 살해하고 신양파 다른 조직원 2명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구속기소 돼 지난 19일 첫 재판을 받았다.

서씨와 공개 수배된 정씨 등 2명은 당시 신양파 조직원들이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한다는 사실을 알고 같은 영산파 조직원 10명과 호텔에서 기다리다가 상대 폭력조직원 등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4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후 여러 경로로 검거된 영산파 조직원 10명은 기소돼 각 징역 5년~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달아난 서씨와 정씨는 1995년 1월 기소 중지됐다.

현장에서 몸을 피한 서씨는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잔꾀를 부렸다. 2003년 가을 전북 군산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밀항했다고 지난해 3월 중국 선양의 한국 영사관에 자진 신고하는 과정에서 허위 진술했다.

살인범이 아닌 밀항자로 자신을 위장한 서씨는 귀국 직후 해경에 중국으로 밀항한 시점을 ‘2016년 9월’로 특정했다. 살인죄 혐의가 드러나더라도 형사소송법상 2007년 이전 발생한 살인 범죄의 공소시효가 15년인 점을 감안해 범행 시점 1994년을 기준으로 처벌 기간이 지났다고 주장하려는 속셈이었다.

서씨는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공소시효 시점을 훨씬 넘긴 만큼 살인죄 혐의를 벗어날 것으로 판단했고 해경은 서씨 진술에 의존해 지난해 11월 밀항단속법 위반 혐의로만 서씨를 불구속 송치했다.

불법 밀항 혐의만 적용받은 서씨는 결국 불구속 상태로 입국해 검찰에 넘겨졌다가 풀려나 9개월여 동안 자유스러운 생활을 이어왔다.

하지만 검찰은 1996년 이후 국내 행적이 거의 드러나지 않은 서씨가 허위 각본을 꾸민 것으로 판단하고 전면 재수사를 벌여 서씨의 실제 밀항 시기가 진술보다 13년이나 빠른 2003년이라는 점을 밝혀낸 뒤 지난달 7일 서씨를 나주의 한 식당에서 붙잡았다.

강산이 세 번 가까이 변할 세월인 29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폭력조직 영산파의 살인사건 주범이 정체를 드러내고 검찰의 손에 잡히는 순간이었다.

검찰은 2005년부터 2007년 사이 중국에서 서씨를 봤다는 목격자들의 허위 진술과 공범들의 서씨 밀항 관련 교도소 접견 녹취록 등을 토대로 추궁한 끝에 밀항 시점을 속였다는 서씨의 자백을 받아냈다.

검찰은 서씨가 밀항한 2003년부터 처벌을 피할 목적으로 중국에 체류해 공소시효가 중단됐고,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에 따라 서씨를 처벌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서씨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서도 “처벌을 면하려고 밀항 시점을 거짓말했다”고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치밀한 보완 수사로 서씨의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사실을 파악해 살인을 저지른 주범 서씨를 법의 심판대에 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서씨보다 먼저 중국으로 달아났다가 2012년 입국한 뒤 현재 도피 중인 정씨를 출국 금지 조처하고 지명수배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정씨는 서씨의 검거 소식을 듣고 서울 서초구에 마지막 행정을 남긴 뒤 행방을 감췄다고 밝혔다. 정씨도 뉴월드호텔 보복살인 사건에 사용할 흉기를 준비하고 상대 조직원에게 직접 이를 휘두른 사건 주범으로 꼽힌다.

검찰 조사결과 정씨와 서씨는 중국에서 자주 만나 살인죄 처벌을 어떻게 피할지 수차례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정씨는 영산파 조직원 도움을 받아 생수 회사·안마방·투자회사·건설업체를 운영하며 도피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서씨 등의 27년 치 은행계좌 정보를 확인하고 공범들의 14년 치 교도소 접견 녹취록 등을 정밀 분석하는 등 그동안 행적을 치밀하게 추적했다.

스스로 밀항했다고 진술한 시점 이전인 2005년~2007년 중국에서 서씨를 목격했다는 다수의 진술도 확보해 서씨의 ‘허위 시나리오’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기어코 규명했다.

서씨가 단죄를 벗어나가 위해 주목한 살인죄 공소시효는 2015년 폐지됐다. 서씨는 장기간에 걸친 검찰 전담팀의 수사와 공소시효 폐지에 따라 20대에 저지른 살인에 대한 죗값을 50대 중반의 나이에 치러야 할 처지에 놓였다.

검찰은 범행 당시 영산파 조직원들이 1991년 자신들의 두목이 살해당한 데 앙심을 품고 천인공노할 보복범죄를 저질렀으나 이마저 엉뚱한 폭력조직원을 상대로 한 어처구니없는 살인 행각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영산파 조직원들은 서씨 등의 도피생활 자금을 지원하고 경조사를 챙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 중인 10명에게 조직원들에게 영산파 폭력조직이 영치금과 가족들의 생활비로 10년간 3억2300만원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최순호 광주지검 반부패강력수사부장은 “검·경이 정씨를 전방위 추적하고 있는 만큼 반드시 검거될 것“이라며 “사회악인 폭력조직은 뿌리까지 발본색원해 반드시 저지른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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