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죽의 11연승, 전설 만들고 있는 이승엽 감독
[이준목 기자]
선수 시절 전설의 '국민타자'가 감독으로서도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승엽 감독이 이끄는 두산은 7월 2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서 8-5로 승리하며 파죽의 11연승을 내달렸다.
▲ 25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8-5로 승리해 11연승을 달성한 두산 이승엽 감독이 전풍 사장에게 꽃을 받고 있다. |
ⓒ 연합뉴스 |
두산의 창단 최다연승 신기록
11연승은 두산의 창단 최다연승 신기록이다. 1982년 프로 원년부터 오랜 역사를 이어온 두산은 한국시리즈 우승 6회, 정규리그 우승 4회를 차지한 명문구단이고 김인식, 김경문, 김태형 등 여러 명장들을 배출했지만 지금까지 이승엽 감독의 연승 기록에 도달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종전기록은 김태형 전 감독이 팀을 지휘하던 2018년 6월 6~16일 달성한 10연승이었고, 두산은 올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이승엽 감독 체제에서 5년 1개월 만에 구단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또한 이승엽 감독은 '신임 감독 데뷔 최다연승' 기록도 수립했다. 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이었던 제리 로이스터 전 감독이 2008년 롯데에서 11연승을 달성한 것과 타이기록이며, 국내 사령탑으로 한정하면 신기록이다. 1997년 천보성 LG 감독, 1999년 이희수 한화 감독, 2000년 이광은 LG 감독 등 3명이 부임 첫해 10연승 기록을 달성한 바 있다. 이중에서 이전에 지도자 경력이 없는 순수한 '초보 감독'은 오직 이승엽 뿐이라는데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승엽은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야구의 전설이다. 한일 통산 626홈런, KBO리그 단일시즌 최다홈런(2003년 56개), 5회의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와 홈런왕,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선수 시절의 이승엽은 숱한 영광을 남기며 '국민타자'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가 지난 겨울 두산 베어스의 지휘봉을 잡고 지도자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는, 많은 이들이 놀라워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선수시절 친정팀인 삼성 라이온즈가 아니라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었던 두산으로 갔다는 점. 심지어 지도자 경력이 전무한 이승엽이 코치도 거치지 않고 감독으로 직행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승엽 감독은 은퇴 이후 야구해설과 야구재단- 방송활동 등에 전념하며 야구계에 계속 몸담아오기는 했지만 현장보다는 주로 외부에서 활동을 이어왔다. 지도자 경험은 두산 부임 직전 야구예능 JTBC <최강야구>에 은퇴 선수들로 구성된 이벤트성팀인 '최강 몬스터즈'의 감독을 반년간 역임한게 고작이었다. 한마디로 선수 시절의 명성은 높지만 지도자로서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프로스포츠를 통틀어보면 이승엽처럼 이전에 지도자 경력 없이 감독으로 데뷔한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대부분 극심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성공사례도 드물었다. 프로야구 감독직은 다른 종목에 비하여 선수단의 규모가 훨씬 크고 감독의 권한과 책임이 막중한 자리다.
두산의 전력 역시 물음표가 붙어 있었다. 왕조의 전성기를 지나 어느덧 세대교체의 시기를 맞이한 두산은, 이승엽 감독이 맡기 직전 2022시즌 9위에 그쳤다. 올시즌 FA 양의지의 복귀라는 호재도 있었지만 주축 선수들이 줄줄이 이적하거나 은퇴하면서 5강권도 쉽지 않으리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예상이었다.
실제로 두산을 제외한 9개 구단 감독은 2023시즌 프로야구 미디어데이에서 아무도 두산을 가을야구 후보로 꼽지않았다. 자칫 올시즌 성과가 좋지 않으면 모두 초보 감독의 책임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이승엽 감독이 '스타 선수는 성공한 감독이 될수 없다'는 스포츠계 속설의 또다른 제물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승엽 감독은 삼성 시절 함께 했던 김한수 전 감독을 수석코치로 영입해 부족한 경험을 보완했다. 또한 경험 많은 베테랑 선수들과 적극적이고 격의없는 소통으로 신뢰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선수시절 한국과 일본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지도자들을 만났던 이승엽 감독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도자의 언행과 태도가 선수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승엽 감독의 리더십 원천
감독 이승엽의 리더십은 '믿음과 뚝심'으로 요약된다. 두산의 전성기를 이끈 전임 김태형 감독이 냉철하고 실리적인 모습으로 선수들을 휘어잡는 스타일이라면, 이승엽 감독은 시간을를 두고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면서 최대한 참재력을 끌어내는 스타일에 가깝다.
이승엽 감독은 시즌 초반에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선수들에게 적극적으로 경기운영을 위임하는가 하면, 전성기가 지난 베테랑이나 부진한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압박을 주지않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줬다. 초보 감독으로서 결코 쉽지 않은 여유와 배짱이었다.
물론 시즌 초반에는 작전 구사나 투수교체 타이밍 등에서 미숙한 모습으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승엽 감독의 장기적인 안목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침묵하던 외국인 타자 로하스가 점점 살아나기 시작했고, 정수빈-김재호-장원준 등 하락세에 있다고 평가받던 베테랑 선수들이 승부처에서 중요한 순간에 자기 몫을 해주며 이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다. 이 감독 역시 필요할 때는 외국인 선수 교체나 선수 기용에서 단호한 면모를 보이면서 시행착오를 딛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해 나갔다.
7월 들어 투타 밸런스가 완성된 두산은 단 한번도 경기에지지 않으며 돌풍을 이어갔다. 44승 1무 36패로 승률을 .550까지 끌어올린 두산은 3위를 굳히며 중위권 경쟁에서 이제는 선두권을 위협하는 '태풍의 눈'로 급부상했다. 양강으로 꼽힌 2위 SSG(47승 1무 33패)에 3게임차, 1위 LG(49승 2무 32패)를 4.5게임차로 추격하고 있다.
감독으로서 거둔 11연승 역시 모두 이승엽 감독 혼자서 이뤄낸 성과는 아니다. 하지만 이제껏 어떤 명장들도 해내지 못한 업적을 이승엽 감독이 이뤄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전설의 국민타자는 이제 명장이 되기 위해 한걸음씩 착실히 나아가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수많은 목숨 앗아가는데,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 '보고서 없이 종점 변경' 인정한 원희룡 "사과는 이해찬·이재명이 먼저"
- '너희만 힘든 것 아닌데 왜 난리냐'는 이들에게
- 제주지사 사퇴 후 벌어진 기이한 일... 지역이 무슨 '출장소'인가
- "주변서 망할 거라 했는데" 상 받은 PD가 추천한 꿀벌 영상
- 완성된 그림에 떨어진 잉크... 이게 어반스케치의 매력
- 검사 윤석열은 왜 고깃값 97만원을 두번에 나눠 결제했나
- "나 학부모다, 성교육 책 빼라" 악성 민원 시달리는 공공도서관
- 거짓정보를 극복하는 최고 재능은 '지적 겸손'
- "왜 사실 확인이 안 된 내용을 기사화합니까" 어느 유족의 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