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실이 있는데도 못 쉬는 노동자들, 이런 이유가
[박준도]
▲ 노동자의 미래에서 실시한, 서울 디지털 산업단지 휴게실 유무 관련 설문조사 결과 |
ⓒ 박준도 |
2022년 3~4월 서울산단 노동자 139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실태조사에서, 52.0%가 휴게실이 없다고 응답했다. (왼쪽 그림) 사업장 규모별로 보면 2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서울 산단 노동자들 57.7%가 휴게실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8월부터 당장 휴게실 설치가 의무화되는 50인 이상~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서조차, 자신의 사업장엔 휴게실이 없다는 응답률이 52.3%나 된다.
부족한 휴게실 문제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더 직접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른쪽 그림) 서울산단에서는 저임금 노동자든 고임금 노동자든 휴게실 이용 빈도는 비슷하다. 하지만 임금 수준에 따른 휴식 공간은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높은 노동자들은 사업장 내 휴게실 유무와 관계없이 외부공간, 카페 등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저임금 업무공간에서 대기하면서 쉬는 비중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임금 노동자들은 야외, 카페에서 쉰다는 응답률이 38.8%인 반면, 저임금 노동자들은 업무공간에서 쉰다는 비중이 59.2%다.
공용휴게시설은 얼마나 있을까?
서울산단 지식산업센터 내 공동휴게실은 적지 않게 설치되어 있었다. 2022년 8~9월 지식산업센터를 전수조사(162곳 중 134곳이 응답)한 결과 41곳에 공동휴게실이 설치되어 있고, 공동수면실까지 포함하면 42곳에 공동휴게실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식산업센터 전체의 32.1%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 서울산단 지식산업센터 내 공동휴게실 요건 및 이용률 |
ⓒ 박준도 |
하지만 휴게실로서 최소 요건을 만족하는 '휴게실'은 매우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별표 21의 2, 휴게시설 설치·관리기준 (최소 면적, 위치, 냉난방, 환기, 의자 등 필요 비품, 식수, 휴게시설 목적 외용도 사용 금지 등)을 모두 만족하는 공동휴게실은 전체 41곳 중 단 2곳(4.8%)뿐이다. 의자조차 없는 휴게실이 22.0%나 되고, 환기 시설이 없는 곳도 36.6%나 된다. 물을 마실 수 있는 공동휴게실은 9.7%에 불과하다.
공동휴게실 이용률 및 빈도도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가 항상 이용하고 있다고 응답한 곳은 9곳(22.0%)에 그치고 있고, 대부분(56.7%)은 하루에 한두 명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협의회를 매개로 지식산업센터 공동휴게실 활성화해야
2022년 3~4월 조사에서 공동휴게실이 있으면 이용하겠다는 응답률은 86.5%나 되었다. 서울산단의 경우 지식산업센터 내 공동휴게실은 휴게실 부족 문제를 일부나마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하지만 실태조사에서 확인된 것처럼 정작 이용률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이용률이 낮은 것은 무엇보다 공동휴게실이 휴게실로서 요건을 갖추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또 지식산업센터 내 공동휴게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홍보되지 않은 것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실태조사 전까지 노사정 중 어떤 곳에서도 지식산업센터 내 공동휴게실 비중이 30~40%나 될 것이라 예상하지는 못했다. 시설 개선과 비품 설치, 적극적인 홍보 등을 통해 공동휴게실에 대한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서울산단은 중소사업장 비중이 높아 공동휴게실의 필요성이 높은 지역이다. 또 어느 산단보다 공동휴게실을 설치·운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곳이고도 하다. 노사정이 모여 지역사회 협의체를 구성하고 이를 계기로 공동휴게실을 활성화하면, 중소사업장 휴게실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공동휴게실을 산업단지 내 다른 복지사업과 연계하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심리상담센터, 근로자건강센터 분소 등이 대표적이다. 지자체와 산업단지관리공단, 그리고 노사가 공동으로 머리를 맞대면 휴게실 부족 문제뿐만 아니라, 작은 사업장의 열악한 복지 문제도 개선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 서울 관악지청과 구로구, 금천구, 산업단지공단 서울본부, 지역 노동조합, 지역 사용자 단체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원청 대기업과 지역 선도기업이 참여하는 공동휴게실은 원청·대기업이 참여하는 공동근로복지기금을 활성화하는 것에도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고, 중소사업장의 '산업안전관리자' 운영에도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공동휴게실 활성화를 매개로 지역 협의기구를 구성하고, 일하기 좋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를 만들기 위한 지역사회 협의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2022년 12월 고용노동부 서울 관악지청과 민주노총 서울본부 남부지역지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에서 노사정 모두가 공감을 표명한 바 있다. 지역 협의기구를 공식화하자. 공동휴게실 지원방안을 구체화하고, 지역복지, 안전보건 전문가를 초대해 지역 협의기구를 발전시킬 방안도 찾자. 이를 통해 더 많은 노동자가 더 잘 쉴 수 있도록 만들자.
*본 기사는 박준도, 2022, 노동자의 미래, 「2022 서울디지털산업단지 휴게실·복지 실태조사 분석결과」 및 노동자의 미래,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지식산업센터 휴게시설 실태조사 분석」 내용을 종합,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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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준도 님은 노동자의 미래 정책기획팀장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7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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