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캐릭터탐구㊸] 종로다방 논개마담 고옥분 탄생비화(ft. ‘밀수’ 고민시)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 제작 ㈜외유내강, 제공·배급 ㈜NEW) 속 가상 도시 군천에는 종로다방이 있다. 서울도 아닌데 이름도 야심 차게 ‘종로’다. 종로다방에는 간판명보다 더 야심 있고 더 당찬 마담이 있다. 고옥분이다.
배우 고민시가 감독 류승완의 예상을 빗나간 디렉팅, 배우 김혜수(조춘자 역)와 염정아(엄진숙 역)를 비롯해 김재화(돼지엄마 역) 박준면(양금네 역) 박경혜(똑순이 역) 주보비(억척이 역)로 이뤄진 ‘해녀 어벤져스’의 끝없는 칭찬과 예쁨을 독차지하며 탄생시킨 인물이다.
고옥분은 마치 군천처럼 묘하고, 헷갈린다. 군천은 경상도인가, 전라도인가. 전혀 다른 특성의 두 지역이 접하는 남해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풍광. 군천은 도시인가 어촌인가. 어촌의 순박함과 도시의 상스러움이 공존하는 그곳.
고 마담도 마찬가지다. 어려서 물장사 바닥에 몸을 들인 뒤 억척스럽게 살아남아 엽차 나르던 종업원에서 마담까지 ‘등극’했다. 여자 좋아하는 장도리(박정민 분)와의 연심 줄다리기에 세관 이장춘 계장의 특혜까지 얻어내 이룬 자수성가다.
어떻게 차지한 내 다방인데, 내 것만 챙기는 여우처럼 보이지만 해녀 6인방에 대한 심정적 의리가 깊다. 그 바탕에는 화려한 외모부터 당찬 카리스마까지 ‘똑 닮고 싶은’ 조춘자에 대한 동경이 있다. 닳고 닳았을 것 같은데 지킬 건 지키고, 지키기만 할 것 같은데 절체절명의 순간엔 ‘모두를 위해’ 적장의 목을 끌어안고 내 목숨도 던질 줄 아는 논개 같은 대의명분도 지녔다.
미인계로 공문서 빼낼 만큼 제법 듬직한 배포는 조춘자와 비슷하지만, 외모는 영 딴판이다. 조춘자가 서양 바비인형을 연상시키는 헤어와 의상이라면, 고옥분의 외양은 ‘한식’이다. 동양적이라고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고 마담의 캐릭터처럼 묘해서다.
우선 한 줄기 눈썹이 인상적이다. 조선시대 미인도의 반달눈썹처럼 가느다란 건 같은데 모양이 힘차게 나는 갈매기의 날개 한 쌍이다. 한복을 입은 건 같은데 옷감이 공단(인조 실크)이고 색감은 은갈치다. 무늬로 놓아진 자수가 큼직하지 않으나 지극히 평범하지 않다. 인생에 아주 특별한 날, 약혼식에 입으면 어울릴 것 같은 한복을 다방 내근복으로 입고 있다. 제 머리를 잘라 붙였다는 구렛나루는 고 마담의 요염미를 강조시킨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 40~50년 전만 해도 신혼여행에 한복을 입고 가는 신부가 드물지 않았다. 제주도는 꿈의 여행지, 동해나 남해로 유독 바람 부는 바닷가로 신혼여행을 가던 그 시절, 남자에게 진심 주지 않는 고옥분은 웨딩드레스를 대신해도 될 듯한 한복을 입고 군천 바닥 사내들을 후린다.
다방 마담이면서, 때로는 마타하리면서, 어느 순간엔 논개가 되는 고옥분. 배우 고민시는 연약함에서 대담함, 야비함에서 따뜻함을 동시에 지닌 인물을 차지게 표현했다. 때로는 권 상사(조인성 분)와 장도리, 장도리와 이 계장의 폭주로 긴박하게 굴러가는 ‘밀수’의 틈바구니에서 한숨 돌리는 재미를 주기도 하고, 어느 순간엔 ‘해녀 어벤져스’의 제7 요원이 되어 활약한다.
마담 고옥분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기존 영화, 드라마, 게임 따위에서 등장인물이나 설정을 가져와 새로 이야기를 만들어 낸 작품)가 나와도 될 정도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26일 서울 북촌로 카페에서 만난 고민시는 이에 대해 발군의 입담으로 명확하게 설명했다.
배우 고민시는 평소 영화를 보다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인물이나 배우의 표현법을 발견하면 메모하고 기억해 두었다가 향후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적용할 점이 있다고 생각될 때 차용한다. 주변 인물들에게서 힌트를 얻을 때도 있고, 자신이 살아온 경험에서 단서를 찾을 때도 있다고.
배우 염정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잘하는 사실적 연기, 김혜수로 대표되는 고전적 극적 연기, 자신의 연기 방향성을 특정하기보다는 임하는 작품과 캐릭터에 맞추는데 이번 ‘밀수’ 고 마담을 표현하는 데엔 극적인 연기를 지향했단다.
고옥분이 다층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였다면, 류승완 감독의 예상치 못한 디렉팅의 덕이 컸다며 ‘까르르’ 웃었다.
일테면 “고 배우, 우리 욕을 좀 해볼까요?”라고 류 감독이 특명을 주면, 고민시는 매우 당황해서 잠시 주춤하다가도 ‘에라, 죽기 살기다’ 하는 마음으로 거친 욕을 뱉었고, 혼신을 다한 연기는 ‘같이 죽자 씨발새끼야 상’으로 이어졌다. 류 감독이 A4 용지에 정식으로 상 이름과 상을 주는 이유를 적어 ‘수여’했다며, 영화가 흥행하면 SNS에 공개하겠다고 약조했다.
‘밀수’의 고옥분, 종로다방 고 마담이 누가 해도 빛났을 캐릭터였을까. 고민시는 인터뷰 마지막까지 해녀 6인방과의 행복했던 촬영기간, 그것을 가능하게 한 감독 류승완의 ‘패밀리즘(가족주의)’ 현장의 힘을 강조했다.
카리스마를 갖췄으되 일상에서는 아기 같은 김혜수, 아기 김혜수를 엄마처럼 잘 챙기는 동시에 자신을 ‘아가’라 부르는 김혜수의 딸처럼 살갑고 귀엽게 행동하는 염정아, 사람 좋고 연기 좋은 김재화 박준면 박경혜 등과 항상 ‘웃음바다’를 이루며 같이 밥 먹고 촬영 끝나도 퇴근하지 않고 모두의 촬영을 지켜봤던 그 순간들을 행복한 미소로 추억했다.
고 마담의 캐릭터보다 더 묘한 건, 현장의 찰떡 호흡과 행복한 공기는 영화 구석구석에 담긴다는 것이다. 영화 ‘밀수’를 보고 나올 때 웃음이 난다면 그 기운을 분유 받은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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