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정보를 극복하는 최고 재능은 '지적 겸손'
<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편집자말>
[이정환]
다음 다섯 가지 문장 가운데 '가짜 뉴스'를 골라 보자.
1. 하얏트는 객실에 일회용 생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2. 좌파는 급여를 더 받기 위해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3. 세계 인구 3명 가운데 1명은 비정부기구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
4. 눈 색깔과 지능 사이에는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다.
5. 에볼라 바이러스는 미국의 핵실험이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 케임브리지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잘못된 정보와 양극화 연구를 위해 만든 테스트 'Misinformation Susceptibility Test'(MIST) 갈무리 화면. 총 20개의 질문이 있으며, 뉴스 헤드라인을 보고 진짜 혹은 가짜뉴스를 선택한다. |
ⓒ 민주언론시민연합 |
케임브리지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잘못된 정보와 양극화를 연구하기 위해 만든 테스트 가운데 일부로(전체는 20가지), 하버드대학교 니먼연구소가 소개한 글을 발췌 인용한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라코엔 마텐스(Rakoen Maertens)는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를 공유하는 건 그들이 실제로 그걸 믿기 때문이 아니라 특정 집단에 소속돼 있거나 특정 유명인을 따르거나 특정 문제에 대한 태도가 있고 그러한 태도를 표현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테스트에서는 네 가지 변수를 측정한다. ▲첫째,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를 구별하는 능력 ▲둘째, 진짜 뉴스를 정확하게 식별하는 능력 ▲셋째, 가짜 뉴스를 정확하게 식별하는 능력 ▲넷째, 뉴스를 얼마나 의심하면서 읽느냐 또는 순진하게 그대로 받아들이느냐 등을 판별한다.
▲ 연령에 따른 잘못된 정보 변별력 테스트 결과 18~45세 연령대가 45세 이상 연령대보다 진짜 뉴스와 가짜뉴스를 구별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그래프 출처는 다음과 같다. Maertens, R., Gotz, F.M., Golino, H.F. et al. The Misinformation Susceptibility Test (MIST): A psychometrically validated measure of news veracity discernment. Behav Res (2023) |
ⓒ 이정환 |
미국 사람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에서는 18~45세 연령대가 45세 이상 연령대보다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를 구별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사람은 진짜 뉴스를 거짓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 나이 든 사람들보다 의심이 많고 뉴스를 전반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온라인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일수록 잘못된 정보에 대한 감수성이 더 크고, 진짜 뉴스를 의심하면서 보는 경향도 더 강했다. 물론 이 연구는 한 줄 제목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만약 이미지나 출처가 추가된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뉴스를 어디서 읽느냐에 따라서도 차이가 컸다. AP통신과 공영방송 NPR, 인터넷매체 악시오스, 인터넷신문 허프포스트 독자들이 잘못된 정보의 분별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났고 스냅챗과 트루소셜, 왓츠앱, 틱톡 등 소셜미디어에서 뉴스를 읽는다고 답변한 이용자들이 상대적으로 분별력이 떨어졌다.
좋은 뉴스를 읽어야 덜 속는다
적극적인 열린 사고(actively open-minded thinking)가 잘못된 정보를 판별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세 가지 변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적 겸손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다른 관점에 대한 열린 태도다. 내가 인정하지 않는 다른 사회 집단에 소속된 사람의 말을 기꺼이 경청하는 것이다. 셋째,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믿음을 업데이트하려는 의지와 능력이다. 마텐스는 "비판적 생각과 건강한 회의주의, 열린 마음은 잘못된 정보를 판별하는 데 매우 중요하고 이러한 자질은 서로 상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저널리즘 차원에서도 몇 가지 시사점이 있다. 첫째, 언론인들에게도 지적 겸손이 필요하다. 복잡한 사안을 단순하게 뭉뚱그려서는 안 된다. 극단적인 주장으로 치닫지 않으려면 맥락과 근거를 충실하게 제시하고 독자들이 판단하게 만들면 된다. 둘째, 사람들이 뉴스에 믿음을 잃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진짜 같은 가짜 뉴스를 몇 분 만에 수천 개씩 뽑아낼 수 있는 시대다. 뉴스의 전달 방식과 기사 가치의 우선순위를 완전히 다시 설계해야 한다. 진실 앞에 겸허해야 한다. 언제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멀리 갈 것 없다. 최근 쟁점 가운데 일본 오염수 방류와 서울-양평 고속도로 논란을 돌아보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레거시 언론사들이 눈도 깜박하지 않고 거짓말을 쏟아내는 걸 지켜볼 수 있다. 설령 고속도로 개정안이 원안보다 낫다고 한들 예비 타당성 조사를 갑자기 뒤집은 이유를 설명할 순 없다. 오염수가 당장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는 일부 과학자의 분석이 있지만, 한국 국민이 굳이 여기에 동의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단정적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계속해서 의심하고 비판하고 뒤집어 보고 검증하는 게 언론의 책무고 민주 시민의 책임이다. 설명하지 않고 의혹을 꺾으려 드는 사람들은 진심이라면 지적 겸손을 좀 더 배워야 하고 거짓이라면 공론의 장에서 퇴장하는 게 맞다. 참고로 퀴즈의 정답은 1=사실, 2=거짓, 3=사실, 4=거짓, 5=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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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정환(슬로우뉴스 대표)입니다.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미디어오늘,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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