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실 확인이 안 된 내용을 기사화합니까" 어느 유족의 물음

하성태 2023. 7. 26. 13: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초등 교사 사망 사건에도, 건설노조원 분신 사건에도... 끊이지 않는 '왜곡 보도' 논란

[하성태 기자]

 서울 S초등학교 A교사의 사촌 B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
ⓒ 블로그 갈무리
 
"당신을 고소하겠습니다. 모든 법적 처벌을 받게 하겠습니다. 선처하지 않겠습니다(...). 똑바로 대답해주세요. 누가 죄인입니까?"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서울 S초등학교 A교사의 사촌 B씨가 강경한 톤으로 기자에게 물었다. 25일 <누가 죄인인가?>라는 본인 블로그 글을 통해서였다. 지난 24일 유족들은 A씨의 일기장 내용 중 일부를 공개했다. A교사의 유족이 법적 조치를 예고한 기자는 지난 20일 <서초구 초등교사 일기장 내용 입수... 2월에도 극단 선택 시도 정황> 기사를 단독 보도한 <뉴데일리 경제> 기자였다.

<뉴데일리 경제>는 해당 기사에서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교사 A씨가 지난 2월에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정황이 드러났다"며 "업무 스트레스와 연인 관계 등으로 우울증을 앓아 왔고 병원 치료까지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해당 보도를 통해 A교사의 사생활과 병원기록 등을 무차별적으로 공개했고, A교사의 사망 원인을 사적 관계와 개인적인 일로 추측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 일기장 입수 경위나 유족의 동의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일부 언론도 <뉴데일리 경제> 기사를 받아썼다. 이후 해당 기사 속 일기장 내용의 진위나 보도 경위를 따지는 비난 여론이 적지 않게 일었다.
 
 20일 보도된 <서초구 초등교사 일기장 내용 입수... 2월에도 극단 선택 시도 정황> 기사
ⓒ 뉴데일리 갈무리
 
<뉴데일리 경제> 기사가 보도된 20일 오후, 교사노조연맹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 A교사의 외삼촌이 유족 대표로 참석했다. 그는 "흔히 말하는 학부모의 갑질이 됐든 악성 민원이 됐든,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가 됐든 그것이 이번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본다"며 "우려스러운 것은 개인적인 일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적인 공간인 학교에서 이뤄진 것인데 다른 문제로 치부하면 학교 현장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뉴데일리 경제>의 해당 기사가 한국기자협회 등이 마련한 "자살보도 윤리강령'이나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의 내용 중, 자살보도 시 "흥미를 유발하거나 속보 및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거나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는 기준을 위배했다는 비판이 나올만 했다.

이처럼 안타까운 죽음을 둘러싸고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진상을 왜곡한 또 다른 보도가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지난 5월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본부 3지대장이었던 고 양회동씨 '분신 방조'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 기사였다. 최근 해당 보도와 관련된 새로운 정황이 확인됐다. 

유족들 분노케한 <뉴데일리 경제>, <조선일보> 기사 

"당시 상황을 본 다수의 목격자에 따르면, A씨는 양씨의 분신 준비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단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고, 어떠한 제지의 몸짓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극단 선택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다가갔을 때 오히려 자극해 충동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을 A씨가 우려했을 가능성은 있다."

지난 5월 16일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라는 제목으로 나온 <조선일보> 기사다. 당시 <조선일보>는 같은 달 1일 "건설노조 탄압 중단"을 주장하며 분신한 양씨 사망과 관련해 "자기 몸에 시너를 뿌리는 양씨의 약 2m 앞에서, 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부지부장이자 양씨의 상급자인 A씨가 가만히 선채로 양씨를 지켜봤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이른바 '분신 방조' 의혹 보도였다.

건설노조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건설노조는 성명을 내고 "조선일보가 인간이길 포기했다"며 "조선일보가 사건을 조작하고 악의적 보도로 유가족과 목격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 건설노조는 "최대한의 법적 조치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가 16일 오전 10시 54분에 발행한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는 제목의 기사.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해당 기사에 대해 같은날 밤 성명을 내고 "고의적으로 사건을 왜곡해 여론을 선동하기 위한 악의적 보도행태"라고 비판했다.
ⓒ 포털뉴스갈무리
 
<조선일보>가 해당 기사에서 의혹을 제기한 주요 근거는 양씨의 분신 과정이 담긴 CCTV 영상이었다. <조선일보>는 영상을 분석하며 분신 목격자가 분신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런 가운데 CCTV 영상의 출처가 논란이 됐다. 건설노조는 24일 성명을 내고, 디지털과학수사연구소 감정 결과 조선일보가 보도한 CCTV 장면이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민원실 CCTV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보도 당시 <조선일보>가 밝힌 영상 출처는 '독자제공'이었다. 누군가 민감한 정보가 담긴 영상을 <조선일보>에 단독으로 제공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금까지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 속 영상 출처 표기를 '독자제공'으로 고수 중이다. 이와 관련, 유족과 건설노조는 지난 5월 22일 해당 기사를 작성한 최훈민 조선일보 기자와 최아무개 편집국 사회부장, 이를 소셜미디어에 인용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 6명을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했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유족과 건설노조는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민원실 CCTV 영상에 대해 증거보존을 신청을 했다. 이어 원본 영상을 확보했고, 지난 6월 20일 법무법인을 통해 <조선일보> 기사의 근거가 된 영상 원본이 강릉지청 민원실 영상임을 명확히 하고자 디지털과학수사연수에 감정분석을 의뢰했다. 

지난 24일 건설노조는 성명을 내고 "기사의 바탕이 된 자료가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CCTV 녹화영상임이 확인됐다"며 "지난 7월 18일 동일 자료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기사 사진은 원본인 감정동영상에서 캡처한 이미지에 인물 구분 표시, 모자이크 효과, 부분적인 색감 변경 등을 적용시킨 것으로 판단된다"며 감정서 내용을 공개했다.

"결과적으로 조선일보 측은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의 CCTV를 "누군가'에게 전달받은 것이 확실해졌다. 해당 CCTV 자료는 당시 양회동 열사와 관련된 수사자료로 수사기관 내부의 비밀이며 당사자의 동의 없이 공개돼서는 안 되는 자료임에도 누군가가 조선일보에 자료를 제공한 "공무상비밀누설'이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된다."

한국 언론의 '비윤리성'을 상징하는 두 장면

A교사의 유족인 B씨는 블로그 글에서 <뉴데일리 경제> 기자에게 이렇게 묻기도 했다.

첫 번째, 일기장 내용은 어떻게 확보하신 겁니까? 누가 준 겁니까?
두 번째, 어떻게 당신이 일기장 이외에 의료기록도 알고 있는 겁니까?
세 번째, 왜 극히 일부 내용만을 이야기하여 일기장 내용 전체를 호도하십니까?
네 번째, 왜 팩트 체크를 안 하시고 기사를 내보내십니까?
다섯 번째, 정신의학과를 가서 상담 받으면 죄인입니까?
마지막 여섯 번째, 왜 당신은 유가족의 동의를 받지 않고 사실 확인이 안 된 내용을 기사화한 겁니까?

A교사의 유족은 이처럼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요목조목 항목별로 <뉴데일리 경제>의 기사 내용에 반박하며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뉴데일리 경제>와 해당 기자는 이러한 유족의 의문에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잘못된 보도에 대한 A교사 유족의 의문은 <조선일보>의 '분신 방조' 의혹 기사에 적용해도 그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뉴데일리 경제>는 사망한 교사 A씨의 일기장 입수 경위를 밝히지 않았고,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지키지 않은 자극적인 보도로 유족 측의 분노를 샀다. <조선일보>는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민원실 CCTV 자료로 추정되는 영상 이미지를 '독자제공'으로 표기했다. <조선일보>는 이 보도를 통해 노동자의 분신 사건을 '분신 방조' 의혹 프레임으로 전환시키고자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23년 현재 한국 언론의 '비윤리성'을 상징하는 두 장면이 아닐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브런치 등에 게재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