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만 힘든 것 아닌데 왜 난리냐'는 이들에게 [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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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형 기자]
▲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앞에서 시민들이 1학년 교사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도의 메시지와 국화꽃을 놓고 있다. |
ⓒ 유성호 |
이번 소식이 내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청년 때부터 가깝게 알던 한 후배의 한숨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배는 1990년대 초 대학 졸업과 동시에 바로 임용되어 30년 넘은 고등학교 교사다.
1년 전 청년 시절 함께 활동하던 단체 후배들과 오랜만에 만나 근황을 나누었는데 그 후배는 대뜸 힘들어서 하루빨리 학교를 그만두고 싶고, 특히 담임을 맡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놀랐다. 내가 알던 젊은 시절 후배는 온화하고 다른 사람 사정 잘 이해하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학교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그때는 '아무리 그래도 교사인데' 하는 생각이 앞섰다.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은 예전 학교를 다 안다. 중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 때도 고학년이 되면 선생님들에게 툭하면 맞았다. 맞아도 많이 맞았고, 맞는 이유나 방법도 골고루 다양했다. 그런데 1980년대 말 즈음부터 공교육을 개혁하려는 교사 운동이 시작되며 군대식 문화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 후 중고등학생 연합단체와 학부모 연대단체가 생겨났다.
당시는 교사든 학생이든 학부모든, 지나친 입시교육에 병든 공교육과 학교문화를 바로 잡자는 비슷한 목표를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교사노동조합 운동은 교사의 실제 권익보다는 지나친 정치색으로, 학부모운동은 하나밖에 없는 내 자식 지켜주기로 비치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년 동안 너무나도 변한 사회와 교육의 현실을 교육 당국과 학교가 반영하지 않았다. 권위주의 시대의 교육은 군사부일체, 상명하복이면 충분했다. 학생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 교사는 학생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 이후 우리 사회는 모든 영역마다 민주화 바람이 불었고 학교 현장에도 예외가 없었다. 노동자로서의 교사의 권익은 물론 학생의 인격과 인권도 존중해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도 이때 비로소 힘을 얻었다.
우리 사회의 변화는 빨랐다. 특히 2010년대 이후 보편적 인권 의식은 모든 분야, 모든 사람에게 더욱 확산되었다. 더구나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내 아이의 특별함'의 요구는 더 커졌다. 그런 와중에 교사는 교과목 전달 기능공 역할을 넘어선 본래 교육자(선생님, 스승)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학생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말다툼조차 교사가 개입하여 훈계하거나 조정하면 안 되고, 정해진 매뉴얼과 시스템대로 넘기지 않으면 학생이든 학부모든 제3자든 누구에게도 고소당할 수 있다. 이 일이 터지기 이전에도 교사들은 '교육'은 없고 '공무원'만 남은 그런 무기력감과 자괴감을 많이 토로해 왔으나 교육 당국은 뜨거운 감자에 손대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교사와 학생, 교권과 학생 인권 중에 누가, 무엇이 더 중요한가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이제라도 희생자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정치권과 교육 당국이 공교육 당사자인 교사, 학생, 그리고 학부모의 입장과 현실을 제대로 수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소처럼 교사가 죽으면 교사 편들다가, 학생이 죽으면 학생 편드는 식으로는 문제를 결코 개선할 수 없다. 근본적이고 책임 있는 논의구조가 필요하다.
각자도생만이 결론처럼 되어버렸다
택배 이야기 연재에서 갑자기 교육을 이야기하는 게 엉뚱하고 주제넘은가? 연재 첫 편에서도 썼듯이 나는 단지 '택배 일이 얼마나 힘든가' 하는 우리 입장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이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공통 과제를 함께 나누려고 한다. 사람 모이는 곳에는 어디나 갈등이 있지만, 특히 사업과 노동의 현장에서는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1980년대 이전에는 나라와 기업 성장을 위해 노동자 권익은 일방적으로 무시되었다. 1980년대 사회 민주화와 함께 노조 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1990년대에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부터는 세계 경제와 한국경제의 변화에 따라 서서히 달라져 갔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구조조정을 거치고, 신자유주의가 세계에 널리 퍼진 후 기업과 노동자 안에서도 심한 격차와 계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서로에 대한 연대의식보다는 모두가 모두에게 피해의식을 느끼며 각자도생만이 결론처럼 되어버렸다. 노조 운동도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늘었다. 나도 오랫동안 사회운동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노조가 사회적 공공선보다는 자신의 기득권 지키기에 연연하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마땅히 비판받아야 하고, 노동운동의 개혁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대통령부터 앞장서서 노조를 공공의 적처럼 규정하며 경제 활성화의 이름 아래 기업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것은 형평성은 물론 한국경제를 위해서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영자의 기업 의욕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신화로 만들면 안 된다.
일부 대기업노조의 잘못된 관행을 모든 노조 또는 모든 노동자의 잣대로 삼으면 안 된다. 그럴수록 사각지대 노동 현실의 당연한 요구까지 함께 침묵을 강요받는다. 수십 년 전에 비해 노동 여건과 임금 조건이 개선된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사각지대도 적지 않다. 그런데 그런 개선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당사자들이 사실에 근거해 계속 요구함으로써 조금씩 발전하는 것이다.
▲ 서울의 한 택배물류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물품을 옮기고 있다. |
ⓒ 연합뉴스 |
코로나 기간 택배 물량이 크게 늘어나 기사들의 과로가 쌓이면서 여기저기 사고와 과로사 소식이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기사 근무조건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본사와 사회 여론 층에서도 사람이 죽어가니 허둥지둥 변화가 일어났다.
결국 작년부터 컨베이어에서 물건을 대신 찾아 각 기사에게 전달해 주는 아르바이트가 배치되었다. 지금은 택배 기사의 아침이 한결 여유롭고 크게 고되지 않게 물품을 정리할 수 있다. 이렇게 힘이 절약되니 오후 배송도 훨씬 여유롭게 해 나간다. 택배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임 기사들에게 그때 얘기를 해주면 많이 놀란다. 당사자인 우리가 말하지 않고 그냥 참고 말았다면 지금도 안타까운 희생자들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택배를 시작하고 현장 노동의 애환을 알게 된 후부터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다른 업종의 노동 현실이 크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근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었던 간호사법 개정의 문제를 여러분은 어찌 생각하는가? 당사자들은 자기 입장을 우선하기 때문에 다소 논란이 있을지라도 간호사는 부족한 인원으로 규정된 업무 외에 과중한 역할을 강요당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정부는 늘 법과 규정을 지키라 하지만, 간호사가 규정대로 일하면 당장 멈추게 될 병원 업무가 한둘이 아니다. 정부와 병원이 먼저 법과 규정을 지켜라.
한국 사회의 노동조건이 예전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히 많다. 약자의 이름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분명 있겠지만, 한국 사회의 강자와 약자 사이의 권력과 여론동원력의 격차는 여전히 말도 안 되게 크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도 어려움 당한 사람들의 사정을 말하면, '너희만 힘든 것 아닌데 왜 난리냐?'라는 반응은 함께 죽자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을'끼리의 슬픈 다툼이다. 장애인들이 버스, 지하철을 잠깐 멈춘 것으로 '너무한 것 아니냐?'고 화를 낼 수 있지만, 그렇게 해야만 장애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잠깐이나마 주목받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편의점 알바와 사장이 싸우는 동안 부동산과 금융 수익만 정신없이 올라가 한국경제를 쥐락펴락 한다. 한국경제를 망치는 진짜 불로소득을 막아 일하는 사장과 노동자 중심의 실물경제를 응원하자. 이심전심이 함께 살길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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